연설문을 아무리 잘 쓴들 진심이 전해지지 않으면 의미가 있을까? 일전에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이 공전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하였지만, 사실 대통령이 어떤 글쓰기를 했는가 하는 것보다는 그가 어떤 대통령이었냐가 더욱 중요할 것이다.

글쓰기와 말하기로만 본다면 히틀러의 글쓰기, 히틀러의 말하기야말로 충분한 상품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책이 나온다 해도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존경하고 신뢰하는 대통령이었기에 그분들의 글쓰기가 어떠했는지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같은 저자의 후속 책이었던 ‘회장님의 글쓰기’가 ‘대통령의 글쓰기’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다는 점이 그 방증이다.(여기서 회장님은 대우 김우중 회장이고, 대통령은 고 김대중 대통령님과 고 노무현 대통령님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사태는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보고 수정했다는 증거가 발견된 것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명에 따르면, 국민들에게 어떻게 들려지는지를 알고 싶었다고 한다.

사실 국민과의 소통은 통치자에게 매우 중요한 국정 포인트이다. 국민들의 반응을 미리 알고 싶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반응을 최순실이라는 불법적인 한 사람을 통해서 이해하고자 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만약 그가 국민과 충분한 신뢰관계가 있었다면 그런 비극적인 상황에 다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의 생각과는 다른 길을 무리수를 두며 가려고 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그들은 그때마다 적절히 입에 발린 말로 한 순간 한 순간을 통과하며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이르렀지만, 종국에는 파국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탄핵 직전 대통령 지지율은 4% 이하로 떨어졌다.

노자는 이야기 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믿지 않으니,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불신관계가 쌓인 상황에선 어떤 말을 하더라도 통하지를 않는데, 윗사람은 ‘어떻게 말을 해야 통할까?’라며 쓸데없는 고민만 한다고.

진짜 좋은 나라는 통치자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 나라라는데, 그건 요즘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하자. 그 다음이 통치자를 칭찬하는 나라이며, 그 다음은 통치자를 두려워하는 나라, 그 다음은 통치자를 업신여기는 나라라고 한다.

이러한 3단계를 현실정치에 적용해보면, 각각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시기가 언제였는지, 그 당시의 대통령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헤아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老子 17 章>

 

가장 좋은 왕이란

아랫사람들이 그가 있다는 것을 알 뿐

太上, 下知有之;

그 다음 단계는

아랫사람들이 그를 가깝게 대하고 칭찬을 하고.

其次, 親而譽之;

그 다음 단계는 아랫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며

其次, 畏之;

그 다음 단계는 아랫사람들이 그를 업신여기게 된다.

其次, 侮之.

 

윗사람의 믿음이 충분치가 않으니

아랫사람들의 불신도 생겨나는 것인데

信不足焉, 有不信焉.

걱정이구나! 어떻게 폼나게 말을 할까

이런 것이나 고민하고 있으니.

悠兮, 其貴言.

 

혹여 일이 잘 풀려나간다 해도

功成事遂,

백성들은 모두 내가 본래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라 여길 텐데 말이지.

百姓皆謂我自然.

 

* 원문 번역은 여러 번역본을 참고하면서도 원문이 주는 의미와 이미지에 충실하려 애쓰면서 조정미 나름대로 한 것입니다.

#내_마음대로_읽는_노자_도덕경 #미친척_하고_다시_시작해_봅니다, #왕필이_겨우_스물세살에도_뭘_알긴_알았겠죠

편집 : 하성환 객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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