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 편지에 있는 12자리 숫자에 대한 호기심이 고조선시대 조상과의 만남으로 이어질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고조선시대의 조상이 호방한 자세로 묵직한 입을 열었다. 쩌렁쩌렁하고 기개가 넘치는 목소리였다.

"나는 단군왕검의 손자되시는 단군가륵을 모시던 을보륵이라고 하네."

아! 그렇다면 이 분은 삼랑 을보륵이다. 단군가륵시대에 신왕종전지도(神王倧佺之道)를 설파하였으며, 훈민정음의 모태가 되는 가림토 문자를 만든 분이다. 삼랑은 단군시대에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일을 전담하던 관직이다. 삼랑 을보륵과의 일문일답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을보륵의 질문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이었다.

▲ 가림토 문자와 훈민정음

"그대는 참전계경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고조선시대의 옛 조상인 을보륵의 첫 질문이 참전계경일 줄이야! 이를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다행히 참전계경을 읽은 적이 있어 조상 앞에서 망신은 피할 수 있었다. 몰랐다면 차마 부끄러워 머리를 들 수 없었을 것이다.

"고구려 국상이던 을파소가 백운산 동굴에서 기도하다가 천서(天書)를 얻었는데 그것이 바로 참전계경(參佺戒經)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전해져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닐세. 천서(天書)임을 강조하다보니 그렇게 알려진 모양이군. 본래 배달국 시대를 열어 개천(開天)하신 거발한 환웅천황께서 366가지 지혜로 백성들을 가르치던 것을 신지(神誌) 혁덕이 녹두문자로 기록한 바 있었고, 단군시대에 삼랑직을 맡던 내가 단군가륵의 명을 받들어 가림토 문자로 기록을 남겼으나 안타깝게도 후세에 유실된 걸로 알고 있네."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환웅천황이 신시(神市)에서 개천(開天)하고 인간의 366 사(事)를 주재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환웅천황이 개천(開天)하신 날은 B.C. 3898년 10월3일이고, 이는 성경에 나오는 노아홍수(B.C. 2458년)보다 무려 1440년 전의 일이다. 훗날 단군왕검도 배달국시대의 개천일에 맞춰 10월3일에 개국(開國)을 하여 오늘날의 개천절이 되었다. 을보륵은 머나먼 옛 시절을 회상하고 있는 듯 하더니 강직하고 충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후 고구려 시대에 이르러 을파소가 당대에 구전으로 내려오던 참전계를 정리한 문서가 참전계경일세.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유대인의 역사와 계율을 모세가 집약해서 문서화한 것이 오늘날 타나크(구약성경)의 모세오경이 된 것처럼 말일세."

을보륵의 말대로라면 을파소가 모세처럼 조상의 잊혀진 역사와 기록을 되살리는 역할을 한 셈이다. 을파소는 유리왕 때의 대신 을소의 증손자이다. 서압록곡 좌물촌 출신으로 고국천왕이 191년(고국천왕 13)에 국정을 맡길 인재를 구할 때 안류에 의해 추천되어 국상으로 임명된 뛰어난 인물이다. 을보륵의 질문이 이어졌다.

▲ 십계명 판을 들고 있는 모세

"그대는 참전계경이 고조선 시대에 한민족의 경전이었음을 알고 있는가?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내가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을보륵이 답해줄 것을 기대했는데 거꾸로였다.  

"그대는 한민족의 미래를 아는가?"

"알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어찌 미래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한민족이 언젠가 환웅시대나 단군시대의 옛 영화를 회복하리라고 보는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지그시 나를 떠보기라도 하는 걸까. 을보륵의 표정에 여유가 넘친다.

"고조선시대의 한민족 역사를 한 인간의 생애에 비유한다면 누구에 비유할 수 있다고 보는가? 한민족이 우주적인 운율과 조화를 숭상하는 율려의 민족이었으니 음악가에 비유해도 좋을걸세."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인간의 생애와 한 민족의 역사를 대비한다는 게 적절한 걸까. 더구나 고조선시대의 한민족 역사를 표상할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고조선시대까지 한민족의 역사는 모짜르트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네. 모짜르트의 개인적인 일생 말고 그가 음악에 기여한 엄청난 업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일세."

한민족의 역사를 논하는 와중에 갑자기 모짜르트가 등장하다니? 을보륵이 농담을 하고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풀린다. 모짜르트의 영이 왜 하필 한국인인 나에게 다가왔는지 석연찮았는데 연결고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고보니 모짜르트는 36세에 그의 화려한 생애를 마쳤고, 고조선 시대는 18대에 걸친 환웅의 배달국시대 1565년과 47대에 걸친 단군시대 2095년을 합쳐 3,600여년의 역사를 마감했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36년의 인간생애와 3,600년의 역사가 백배수로 대비가 되고 있다. 을보륵은 이것까지 계산하고 말한 걸까.

모짜르트는 '천상의 음악가'로 불린다. 환웅시대와 단군시대는 하늘의 뜻을 받들던 한민족 최고의 시기였다. 모짜르트는 36년의 화려한 생애를 살았지만 자녀들이 후사가 없어 대를 잊지 못했다. 한민족은 배달국 시대부터 마지막 단군인 고열가단군에 이르기까지 3천6백여 년의 역사적 중흥기가 있었지만 후대의 역사와 단절되는 아픔이 있었다. 화려한 생애와 위대한 역사의 대비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 광개토대왕의 요동정벌

"그렇다면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시대 이후 현재까지의 역사와 미래의 역사는 누구의 생애에 비견될 수 있겠습니까? 

한민족의 고조선시대를 모짜르트에 대비했다면 한민족의 미래도 누군가의 생애로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던 것이다.

"베토벤은 어떨까요? 그는 20여 년간 음악적 재능을 크게 발휘하지 못하다가 그 이후 음악의 거장으로 우뚝 솟은 위대한 작곡가이니 말입나다."

모짜르트와 베토벤은 고전파 음악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두 거장이다. 그 두 거장이 한민족의 과거와 미래를 표상한다고 해서 누가 과연 불만을 제기할 것인가. 을보륵이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으며 말한다.

"과거 고조선시대는 모짜르트요, 그 이후부터 현재와 미래는 베토벤이란 말인가? 그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군. 베토벤이라면 한민족의 미래를 표상하고도 남을 걸세. 미래지향적인 그대가 베토벤을 좋아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고 말일세."

을보륵은 이 두 음악의 거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좋은 환경에서 음악을 시작한 천재형 모짜르트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선 노력형 베토벤은 과거와 미래 만큼이나 캐릭터가 다르다. 모짜르트가 천재 음악가라면 베토벤은 위대한 음악가다. 그들이 없는 클라식 뮤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을보륵이 고개를 끄덕이며 친근하게 말을 잇는다.

"역사는 상상력의 산물이기도 하지. 한민족의 미래를 베토벤의 영웅적인 음악세계에 비유한 것은 의미가 있네. 한민족의 향후 2천 년 역사는 그대가 기대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찬란하고 위대한 역사가 될테니 말일세."

<계속>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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