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보면 문화 문명은 물이 흐르듯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동양에서는 중국 문화가 우리나라로, 다시 일본으로 전해진 것도 같은 맥락이며 역사적 사실이지요. 특히 일본 문화를 보면 모방을 통한 창조의 귀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한 나라와 그 민족을 이해하는 방법 중에 기후 지리적 풍토와 음식, 언어 문자가 중요하다고 하지요. 한자를 이용한 일본의 문자체계를 보면 일본인들의 이런 민족성을 잘 알 수 있지요.(아래 참조).

우리는 한글을 통해 문맹(文盲)에서는 벗어났지만 한자를 생활에 활용하지 않아서 철학 문맹 현상을 야기했지요.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뜻글자인 한자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소리글자로 창안한 것이지요. 지역과 시대에 따라 그 때 그 때 소리가 달라지는 경향이 있지요.(음운변화). 때문에 그 어원을 찾기가 분명하지 않다는 문제가 항상 따라 다니게 되지요. 그래서 한글만으로는 동양고전과 우리 문화, 학문과 철학을 공부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지요.

▲ 한문 공부하는 아이들(2006.10.24. 한겨레신문)

우리나라 중등학교에서 1주일에 1시간 정도는 한문 시간이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지요. 일상생활에도 한글과 함께 한자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하니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이 있네요. 한자와 한글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국민의식에 뿌리가 되는 철학적 사유에 풍요로움을 가져와야 하겠지요.

1) 불쌍하다 - 불쌍(不雙). 짝이 없다. 그래서 외롭다.

그런데 우리가 짝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은 모두 변하고 사라지는 것들이다. 애인, 연인, 부부, 부모형제, 친구, 도반들...등등 모두 변해서 사라진다. 생명계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정신계는 생주이멸(生住離滅), 우주계는 성주괴공(成住壞空)한다.

그래서 영원한 짝을 만나려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안의 진리를 대변하는 하느님, 하나님, 상제님, 부처님, 알라, 신, 절대자, 창조주. 태극이든... 진리를 만나는 일은 절대 고독으로 가는 길이라 할 수 있다.

2) 두 근 반 세 근 반 - 가슴이 두근두근

‘몹시 놀라거나 불안하여 가슴이 자꾸 뛰다’의 뜻의 ‘두근거리다’의 파생으로 보이며, 아직까지 의미가 확실히 굳어지지 않아 보인다. 어원은 정확하지 않아 보이나 정육점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3) 생기다(生起) - ‘생겨나다. 일어나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인연생기(因緣生起)가 있다. ‘직접 원인(因)과 간접 원인(緣)에 따라 생기고 일어나다’는 뜻이다. 인연법(因緣法), 연기법(緣起 法), 인과법(因果法)이라는 말도 같이 쓰인다.

4) 쬬다 - 데바닷따(Devadatta)라는 산스크리트어가 한자어 ‘조달(調達)’로 음역되고 강한 발음현상(경음화)으로 ‘쬬다’가 되었다고 한다. ‘바보 같은 짓, 멍청한 짓을 하는 자’로 쓰인다.

부처님과 이종 사촌간인 데바닷따는 부처님을 세 번이나 살해하려고 하였다. 모두 실패한 후로는 안 좋은 나날이 지속되었다. 그는 심하게 앓아누웠고 죽기 전에 진실로 참회하면서 부처님을 뵙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의 악업이 방해해서 부처님을 뵙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가야만 했다고 한다. .

5) 식겁하다(食怯) - ‘시껍하다’는 경상도 사투리로 많이 쓰는 말이다. 경남 지역에서는 이 말과 함께 ‘시껍묵다’도 쓴다. ‘시껍하다’나 ‘시껍묵다’는 보통 ‘혼나다’의 뜻으로 쓰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크게 놀라다’, ‘경을 치다’, ‘혼쭐나다’, ‘고생하다’ 등과 같은 좀 더 강렬한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식겁하다(食怯)’의 ‘식겁’은 ‘겁을 먹음’이라는 뜻에서 왔다는 설이다.

또 ‘십겁(十劫)’은 ‘정토교에서, 법장보살이 수행을 완성하여 아미타불이 된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을 이르는 말’이다. ‘십겁(十劫)’이 ‘도저히 셀 수 없는 아주 오랜 세월’이니 그 수에 놀라 혼이 나갈 만도 하다. 그래서 ‘십겁하다’에 ‘혼나다’는 의미가 생겨났고, 또 이것이 경상도에서는 ‘시껍하다’로 실현된 것 이라는 설도 있다.

그리고 사주 명리학에 육친(六親)이 있다. 비견 겁재, 식신 상관, 편재 정재, 편관 정관, 편인 정인이다.(십신). 혈연관계와 사회성을 말하는 이론이다. 상생 관계는 비식재관인이 되고, 상극 관계는 비재인식관의 순서가 된다. 겁재(劫財)는 재물을 극하고, 식(食)은 관(官)을 극한다. 재물과 관운이 극을 당하기 때문에 식겁(食劫)은 좋은 의미가 아니다. ‘시껍하다’는 말이 이것과 관련이 있다는 이설도 있다.

6) 원두막(園頭幕)

참외, 수박 따위를 심은 밭을 지키기 위하여 밭머리나 밭 한가운데 지은 막이고, ‘원두’라는 말은 원래 참외, 오이, 수박, 호박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7) 얌얌(㖱㖱)

아기들에게 음식을 먹일 때 일러 주는 말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로 음역자(音譯字)라 한다.

8) 아름답다 - 아람(나社) + 답다. 나답게 가득차고 빛나고 좋다.

아람 → 아름. 아름다움의 기준은 개성적인 차이에 의해 달라지겠지만, 나 아닌 것을 나답게 여길 때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아래와 같이 ‘안다 → 안음 → 아름’에서 나왔다고 본다.

9) 한 아름 - 한 + 아름. 큰 나. 크게 안으니까 충만하고 좋다.

  ① 한 - 크다. 많다. 빛나다. 위대하다.
  ② 아름 - ‘안다 → 안음 → 아름’에서 나왔다고 본다.

10) 환향녀(還鄕女) -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뜻이다.

‘화냥년’이라 하여 욕으로 쓰여 왔다. 일제 위안부 여성들도 고국 땅에 돌아 와서 박대 받고 다시 쫓겨 다니고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 없었다.

<참고자료 1>

-환향녀(還鄕女)-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인을 환향녀라 부른다. 대부분 정조를 잃은 이들은 바로 귀향하지 못하고 청의 사신들이 묵어가던 홍제원이 있던 서대문 밖에 머물렀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환향녀들로 하여금 냇물에 몸을 씻게 하고 그들의 정절을 회복시켜주었다. 그곳을 널리 구제하였다는 뜻으로 홍제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가족과 친지들은 환향녀들을 받아들이기를 기피하고 천시하였다. 결국 의지할 곳이 없어진 환향녀들은 스스로 청나라로 가거나 서대문 밖에 군지하여 살았으며, 창부가 되어 연명한 경우도 허다하였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절개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 즉, ‘환향녀(還鄕女)’에서 유래한 말이다. 조선시대 환향녀들은 정절을 잃었다는 이유로 남편들로부터 공개적으로 이혼 청구를 받은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남자들이 이혼을 청구할 경우에는 먼저 왕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선조 때 절개를 잃은 여자의 남편들이 집단으로 왕에게 이혼을 청구했다. 그러나 선조는 “이혼을 요청한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절개를 잃은 것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다”고 이혼청구를 거절했다. 선조의 이 같은 방침에도 불구하고 남편들은 모두 첩을 얻어 부인을 멀리했다. 환향녀는 1627년(인조 5년) 정묘호란과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때도 많이 발생했다. 주로 북쪽 지방에 사는 여인들의 피해가 컸다. 특히 의주에서 평양까지는 미인이 많아 벼슬아치나 양반의 처까지도 끌려갔다. 청나라에 끌려간 여자들 중 대부분 돌아올 수 없었으나, 많은 돈을 주고 돌아온 여자들도 ‘환향녀’로 불리면서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병자호란 후 돌아온 여자들도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아야만 했다. 인조도 선조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인조가 제시한 첩 허용을 받아들였으나, 강화도에서 청군에 붙잡혀 끌려간 영의정 장유의 며느리는 실절했다는 이유로 시부모로부터 이혼청구를 당했다.

물론 처음엔 인조의 허락을 받지 못했지만, 장유가 죽은 후 그의 아내 김씨는 환향녀라는 이유로 며느리를 내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시부모에게 불손하다는 이유로 허락을 받아 이혼시켰다. 이처럼 암울한 역사의 산물인 환향녀는 신분사회에서 더 이상 설자리가 없었다(네이버 자료).

환향녀와 일제 위안부의 문제는 위정자와 남성들의 무책임이었다. 제2의 능욕이었다. 그 국민의식은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나 자신도 참회하고 반성 성찰한다. “나라가 망하는 데는 백성들의 책임도 크다(중국 속담)”.

<참고자료 2>

-문자와 일본정신-

구두 신을 때와 슬리퍼 신을 때 걸음걸이가 다르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고 습관이 인품을 결정한다. 말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문자를 쓰느냐에 따라 그 사회가 어떤 마음의 습관을 갖는지 달라진다.

일본의 문자체계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1)‘한자’와 함께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쓴다. 2)히라가나는 한자가 아닌 고유어를 표시하는 데 쓴다. 3)가타카나는 외래어나 의성어·의태어에 쓴다. 세 가지 문자로 말의 출처를 구별하는 사회는 일본밖에 없다.

게다가 한자어를 읽는 방식이 참 고약하다. 한국어에서 ‘石’은 항상 ‘석’이지만, 일본어에서는 때에 따라 ‘세키’로도 읽고(음독), ‘이시’로도 읽는다(훈독). 음과 뜻으로 왔다 갔다 하며 읽는 방식은 일본인들에게 일본 고유어를 그저 한자로 표시할 뿐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여하튼 일본어에 들어 있는 외래 요소는 한자와 가타카나로 ‘반드시’ 표시된다. ‘더우니 장모丈母님이랑 빙수氷水 먹으러 cafe 가자!’라고 써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일본은 이런 식으로 천년을 써왔다. 끊임없이 외부를 확인하고 표시했다. 그만큼 외부와 다른 자신이 고유하게 있고, 자신들에게 외부의 영향에도 굳건히 지켜온 순수 상태가 있다고 확신한다.

근본을 따지는 일은 그래서 위험하다. 근본을 뒤쫓는 태도는 신화적 존재를 만들어 자신들 모두 그곳에서 ‘출발’했고, 그곳이 가장 순수한 상태이자, 궁극적으로 ‘회귀’해야 할 곳이라고 상상하게 만든다. 천황이 그렇고 대화혼(大和魂)이 그렇고 가미카제(神風)가 그렇다. 문자가 일본정신을 만들었다(김진해. 경희대 교수).

[편집자 주] 한겨레 주주인 김상학 선생님은 현재 대학 교육원에서 주역, 노자, 장자, 역학 등을 강의하고 있고, 한민족의 3대경서를 연구하고 있다.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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