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영토의식과 독도관(觀)   

▲ 북한 기념우표에 나타난 독도

 북한은 1970년 초 김일성 교시를 통해 제시된 11년제 의무교육을 1975.9.1.일로 완성되였다고 선언하였고, 1977년 9월에는 ⟪사회주의 교육에 관한 테제⟫발표를 통해 교육사업에서의 새로운 전환을 실시하였으며, 2012년에는 기존의 11년제 의무교육을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으로 개편한다고 발표하였다.

교육이 사람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 하며 지덕체를 겸비한 전면적으로 발전된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북한에서는 ‘영토교육’, 특히 ‘독도 교육’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북한 원천자료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Ⅰ. 우리나라(북한)의 동,서,남,북에 끝은 어디인가?

▲ 북한 지도에 표시된 독도

독도는 조선동해 한가운데 위치한 우리나라의 동쪽 끝에 있는 섬으로, 동경 131〬 52'28", 북위 37〬 14'18"이다. 서쪽 끝은 평안북도 룡천군 비단섬으로 동경 124〬 10'45"이고 남쪽 끝은 제주도의 서남쪽에 위치한 마라도로 북위 33〬 07'40"이며 북쪽 끝은 함경북도 온성군 풍서리 북위 43〬 00'33"이다.


Ⅱ. 독도의 자연 지리적 특징

 ⟪일군들은 우리 나라의 역사와 문화, 지리에 대하여서도 잘 알아야 합니다⟫ - 김정일 지적사항. 

독도는 우리나라 울릉도로부터 90km정도 떨어진 조선동해의 제일 동쪽에 솟아있는 바위산으로 된 섬이다. 바다위에 안개가 없고 하늘이 맑은 날에는 울릉도에서 육안으로도 독도의 산마루가 보인다.

 그러나 독도로부터 제일 가까운 곳이라고 하는 일본의 오끼섬에서는 수평선너머 160km나 떨어진 독도를 맑은 날에도 볼 수 없다. 그런 것으로 하여 일본은 오래 동안 조선동해에 독도라는 섬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서도에 있는 탕건봉과 동도정상과 서도정상은 멀리서도 나란히 솟아 있는 모양이 잘 보여, 독도는 한때 ⟪삼봉도⟫로 불리기도 하였다. 서도에는 하루 200여명이 마실 수 있는 샘물터가 있어 물고기를 잡기위해 오는 어민들의 식수로 이용되고 있다. 

 바위가 많은 바다 밑 지형특성상 찬물줄기와 더운물 줄기가 교차하여 부유생물이 많이 서식하고 있는 독도에는 수산자원이 풍부하다. 독도 주변에는 해저지하자원도 풍부하다. 일본은 독도가 우리나라의 울릉도로부터 멀고, 자기네 나라의 오끼섬에서 가깝다는 인상을 주기 위하여 거짓숫자까지 꾸며서 출판물들에 발표하고 있다. 출판물에 허위 자료들을 발표하는 자체가 국제법을 심히 위반하는 것이다.

Ⅲ.독도는 조선의 영토
 ⟪독도는 본래부터 우리나라 섬입니다. 독도가 무인도이지만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 김정일 지적사항.

 조선동해의 한가운데 있는 독도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으로 되어온 조선의 섬이다. 고구려 사람들은 5세기를 전후하여 동해의 울릉도-독도를 거친 항해길을 따라 일본의 노도반도에 진출하여 그 남쪽의 나가노현과 주변일대에 퍼져 살면서 수천개의 돌각담무덤을 남기고 일본에 자기의 선진문명을 전파하였다. 최근 울릉도에서 고구려 사람들이 쓰던 고배(굽 높은 잔)가 발견된 것은 그 일단을 증명해 주고 있다-⟦⟪독도는 조선민족의 신성한 영토⟫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2010년 60페이지⟧

▲ 북한 기념 주화에 나타난 독도

Ⅳ.일본 사료에 반영된 독도영유권 고찰

 ⟪독도는 본래부터 우리나라 섬입니다. 독도가 예로부터 우리나라 섬 이였다는 것은 구체적인 역사자료가 명백히 실증해주고 있습니다 ⟫ - 김정일 지적사항.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의 고유한 영토인 독도를 차지해보려고 갖은 권모술수를 다해 온 일본측에 독도강탈책동은 그 어느 때보다 노골적으로 감행되고 있다. 2005년 일본 시마네현 의회는 2월 22일을 ⟪다께시마의 날⟫(독도의 날)로 정하는 조례를 통과 시키였고 2008년에는 소,중학교 교과서들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내용을 직접 써넣은 날강도적인 행위를 감행하여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재침 야망을 고취하고 있다.

 독도의 영유권을 고찰할 때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독도가 울릉도보다 훨씬 작으면서 그와 제일 가까이 위치한 그 부속섬인 것으로 그 섬의 영유권이 울릉도 영유권에 포함되여 있다는 것이다(참고: 한국에서 속도(屬島) 이론 이라 함)

  ⟪죽도도해면허⟫는 말 그대로 죽도인 울릉도가 있는 외국바다를 건너갈 수 있는 허가증이다. 따라서 ⟪죽도도해면허⟫는 죽도(울릉도)가 자기 섬이 아니라는 ⟪확인증명서⟫이다.

 그리고 ⟪죽도도해면허⟫를 도꾸가와 막부가 승인하였다는 것은 당시 일본정부가 17세기초 죽도를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섬으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신성한 영토의 물고기 약탈에 이골이 난 두 침략가문은 1661년에 ⟪송도도해면허⟫(송도인 독도가 있는 바다로 나갈 수 있는 허가증)를 신청하여 도꾸가와 막부의 승인을 받게 되었다.

 결국 일본 어업가 들의 ⟪송도도해면허⟫와 그에 대한 막부의 승인 역시 17세기 중엽 민간에서와 일본막부정부도 송도(독도)가 자기 섬이 아니라는 것을 공식 인정한 것으로 된다.

 17세기 일본 사료에는 또한 울릉도, 독도에 대한 조사에 기초하여 편찬된 ⟪은주시청합기⟫와 ⟪삼국통람도설⟫ 등이 있는데 그 영유권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은주시청합기⟫는 이즈모관리 사이또가 이즈모번의 지시로 일본의 서북변방의 섬인 오끼도를 답사하면서 이곳과 그 주변 바다, 섬들을 조사하여 제출한 보고서이다. 여기에 울릉도, 독도자료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은주(오끼도)는 북해가운데 있는데 오끼도라고도 한다. ...무술간(서북방)에 이틀 낮, 하루 밤을 가면 송도(독도)가 있다. 또 하루 거리에 죽도(울릉도)가 있다.... 이 섬은 무인도인데 고려(조선)를 보는 것이 마치 운주(이즈모)에서 오끼를 보는것과 같다. 그런즉 일본의 서북한계를 이 주(은주)로써 한계를 삼는다.⟫ (⟪은주시청합기⟫ 1권, 국대기부) 

 일본의 외무성과 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이 그 이후에도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사실과 1876년 6월에 무또라는 자가 외무성에 ⟪송도개척지의⟫라는 건의서를 냈을 때 외무성이 이것을 기각시킨 실례를 통해서도 잘 알 있다.
 그에 의하면 일본외무성은 1869~1870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부속 섬이라는 것을 태정관도 확인하였으며, 독도가 울릉도와 인접한 섬으로써 일본의 은기도의 부속 섬이 아니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명치정부가 수립된 후 제일 먼저 외무성이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인 이 공문서에도 이처럼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섬이며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 섬이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내무성에서도 논의되고 낙착되였다.

 1877년 3월에 작성된 일본내무성 공문서는 근대적인 지도편찬과 관련하여 시마네현에서 이 섬들을 자기관할 하에 포함시켜야 하는가를 태정관에 제기하였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시마네현 행정당국이 이 문제를 내무성에 제기한데는 17세기말 우리나라의 안용복이 울릉도와 독도는 옛날부터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납득시켰던 적이 있었고, 도꾸가와 막부정부는 이 섬들이 조선의 섬이라고 인정하고 있는데 정부에서도 다른 의견이 없겠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일본내무성은 시마네현당국의 이 질문에 대해 약 5개월간 옛 문건들을 세밀히 조사하고 울릉도, 독도가 조선의 영토였다는 것을 다시금 확정하였으며, 이 문제가 중대한 문제이므로 태정관에 공문서를 제출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에 있는 울릉도와 그 밖에 한 섬에 대한 질문서 : 울릉도에 관한 건이 시마네현으로부터 질문이 와서 조사한 바... 1699년에 이르러 문서왕복이 전부 끝났으며 본방(일본) 무관계하지만 영토문제는 중대한 사건이므로 별지서류를 첨부하여 다시금 질문하는 바이다.⟫

 이 문건에서 지적한 울릉도와 ⟪그밖에 한 섬⟫이 독도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내무성 공문서에 첨부된 별지 서류에서도 ⟪ 그밖에 한 섬⟫이 독도라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 별지서류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기죽도는 일명 죽도라고 칭한다. 은기국의 북쪽 120리에 있다. 둘레가 약 90리이며 산은 험준하고 평지는 적다. 다음에 한 섬이 또 있는데 송도라고 부른다. 넓이는 30정보정도이며 죽도와 한선에 있다. 은기와 80리 정도 떨어져있다. 나무와 대는 드물고 역시 해산물이 많이 난다.⟫ 보는 바와 같이 공문서에 첨부된 별지서류에서까지 ⟪그 밖의 한 섬⟫이 독도라고 명백히 함으로써, 두 섬이 일본과는 전혀 관계없는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명백히 밝혔다.

 1877년 3월 20일 일본정부의 태정관은 내무성이 제기한 이 공문서를 접수하고 검토한 후, 그 사실을 그대로 인정한 기초 우에서 새로운 지시문을 내려 보냈다. 이 지시문에서 태정관은 ⟪질문한 죽도(울릉도)와 그밖에 한 섬에 관한 건에 대해서는 본방(일본)과 관련 없는 것으로 알 것⟫이라는 최종결정을 내렸다. - 첨부 : 태정관 문서

 이 지령문은 3월 29일 내무성에, 4월 9일에는 시마네현에 전달되어 해당한 모든 절차를 완료하였다. 태정관이 내린 이 결정은 시마네현에서 제출한 자료들뿐 아니라 내무성이 원록년간(1688-1703)에 조선과 일본 사이에 오고간 문서들을 약 5개월 간에 걸쳐 조사하고 검토한 후 내린 것 이였다. 

⟪일본반동들은 1905년초에 독도를 일본땅으로 만든다는 이른바 <내각회의> 결정을 조작하여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거짓문서까지 날조해내였습니다⟫ - 김정일 지적사항.
 
Ⅴ. 일본은 왜 다시금 독도 재침을 강화하고 있는가?


 ⟪일본군국주의자들도 미제와 한짝이 되어 우리나라의 통일을 한사코 방해하고 있으며, 식민지통치자의 옛지위를 되찾아보려고 교활하게 책동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지적사항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은 남의 나라 영토 강탈을 노리는 후안무치한 행위로서 일본이 아직도 침략적 본성을 버리지 않고 범죄적 과거전철을 또다시 밝으려 하고 있다는 것을 실증해주고 있다. 독도가 우리나라의 고유영토라는 것은 이미 수많은 역사적 자료들에 의해 고증되었고 세계가 공인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한사코 독도를 저들의 땅이라고 우기다 못해 이제 와서는 역사교과서에 ⟪독도영유권⟫주장을 기술하기까지 하고 있으며, 도덕적으로 저열하고 파렴치하기 그지없는 일본의 더러운 정체가 다시금 여지없이 드러났고, 일본이 감히 역사부정과 왜곡 행위까지 하고 있다.  일본이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이유는, 일제의 ⟪대동아공영권⟫의 옛 꿈을 다시 실현해보려는 어리석은 재침책동인 것이다.

특히 독도는 신성불가침의 우리나라 영토이며 단 한번도 그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일본이 독도를 저들의 영토라 우기며 강탈을 기도하는 것은 자주권에 대한 난폭한 침해 행위일 뿐이다.

일본이 역사교과서에 ⟪독도영유권⟫를 기술하는 것은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주입하여 그들을 재침 야망실현에 써먹으려 비열한 책동이다.

 요즘의 일본현실이 극단적 개인주의, 부르죠아 생활양식, 양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청소년들이 건전한 교육을 받을 수 없다. 때문에 앞날에 대한 비관에 사로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범죄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 되고 있다. 더구나 최근엔 군국주의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세차게 일고 있다. 이런 시기에 청소년들에게 그릇된 인식을 주입시키는 것은 그들을 독도강탈에로 부추기는 노골적인 행위이다.

⟪독도영유권⟫을 더욱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일본의 행위는 일본에서 날로 우심해지고 있는 군사대국화, 해외팽창 책동과 결부시켜 보아야 할 심중한 문제이다.

 군사 대국화의 기본목적은 해외침략이며,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한사코 주창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재침야망을 실현하고, 그를 발판으로 하여 또다시 아시아정복의 길에 본격적으로 뛰여 들려 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일본이 역사교과서에 기술한 책동의 엄중함과 위험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선여성 저널에서는 독도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한 우리나라의 신성불가침의 영토이며, 일본의 무모한 독도강탈과 역사왜곡 책동은 민족적 분노를 금치 못한다면서 끝까지 결전의지를 꺾지 못할 것이며, 독도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한 우리의 땅, 조선의 영토로 영구히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기미가요⟫와 ⟪히노마루⟫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에 대한 침략을 감행하던 시기의 ⟪대일본제국⟫을 상징하는 노래와 깃발이다. 최근에 일본문무과학성은 소학교학생들에게 ⟪기미가요⟫를 부르게 하는 것을 주요교육내용의 하나로 하며, 중학교 학생들에게 일본의 ⟪안전⟫과 ⟪방위⟫, ⟪국제적 공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등 ⟪자위대⟫의 해외 군사 활동의 정당성을 주입하는 교육을 하도록 결정하였다. 소/중학교 학생들의 특징은 순진성이며, 사물현상을 보고 듣는 그대로 감수하는 이들의 심리적특성을 잘 이용하여, 그들에게 손쉽게 군국주의 독소를 갓인시킬 있다는 것이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계략이다. 따라서 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커다란 우려와 경계심을 표시하면서 군국화 실현을 위한 교육을 하지 말것을 경고하고 있다. -조선 여성 2011 제 8호.

Ⅵ. 정리자 의견  

 남과 북의 분단 상황이 74년이 되었다. 이념적으로 분단되었던 전 세계의 분단국가들은 20~30년 사이에 모두 다시 하나가 되었고, 한반도만이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 아직 남아있다. 정치, 이념적으로야 아직도 하나의 코리아를 논하기엔 시기상조이겠지만, 수 천년을 동일한 언어와 문화로 함께 살아온 한민족으로서 사회, 문화차원의 교류는 이제 할만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분단 상태가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남북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있으니,

“독도는 우리(한국/조선) 땅” 이다.

상기에서 북한 원전을 살펴보았듯이 독도는 북한 최고 지도자의 주 관심사이며 노동신문에서도 매년 10회 이상씩 논평을 낼 정도의 주요 사안이다.
그렇다면 우리 땅 독도를 주제로 남과 북이 함께 독도문화제와 학술제를 갖기를 제안한다. 남쪽에 다양한 단체와 지자체들에서 북한 사업으로 다양한 사업을 제안하였지만, 본 발제자가 알고 있는 한, 아직까지는 북한측에 독도를 주제로 남과 북이 함께 학술적 모임이나 행사를 제안한 경우는 없었다.

북한과의 다른 교류 사업에 비해 북한쪽에서도 수용하기 쉬운 주제 일 뿐 아니라, 사업비용도 매우 적은 비용으로도 추진이 가능한 북한교류 사업이 독도에 대한 남북교류사업이다. 사업투자비용보다 얻게 되는 예상 효과로는 국내외 모든 언론의 커다란 주목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선포하는 의미도 크게 부각될 것이다.

남북 교류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들의 의지와 표명임을 감안한다면 남북 독도교류사업은 현재 막혀 있는 남과 북을 하나의 민족, 하나의 코리아로 연결하는 축복의 통로이자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남북 독도 공동사업을 강력히 제안한다.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안재영 주주통신원  dooreah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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