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일찍 잠이 깨였다. 아이패드에 올라온 여러가지 글들을 검색하고 여기저기 댓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7시가 넘었다.

오전 8시, 폰의 벨 소리가 울린다. 누구의 전화일까? "동생, 밥 먹었어? 밥 잘 챙겨 먹고 옷 깔끔이 입고 다녀..." 누님의 전화다. 90이 다된 누님이 80을 훨씬 넘은 동생을 걱정해 한 전화다.

내가 아내를 보내고 혼자 된 뒤 누님은 아침마다 이렇게 전화를 거신다. "누이야, 그래 고마워요. 누이는 조반 했어요?" "그럼, 벌써 먹고 절에 가려해. 동생, 어디 나갈 때 옷 깔끔히 차려 입고 나가!"

누이도 몇 년 전에 매부를 보내고 지금 혼자 살고 계시다. 독실한 불교 신자로 보살행을 수행하고 계시는 대보살이시다. 고암 스님으로부터 자재각(自在覺)이란 보살명을 받았다.

나는 "동생, 나갈 때 옷 깔끔히 입고 나가!"하시는 누님의 전화를 받을 때 마다 곰곰히 생각해 봤다. 사실 난 그동안 옷차림이며 몸단장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물론 거기에는 털털한 나의 성격에도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아내가 늘 챙겨 줬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누구 보다 잘 아는 누님은 내가 걱정 됐던 것이다. 혹시라도 "아이구!! 저사람 혼자되더니 초라해졌네. ㅉㅉ..."할까 봐 걱정을 하는 것이다. 동생을 아끼는 마음에서다.

누님의 이 말씀을 듣고 난 뒤로 부터 난 요즘 나갈 때 옷차림에 매우 신경을 쓴다. 정갈한 옷차림은 물론 가급적 색깔도 노색 보다는 젊은 색을 취한다.

어느 날 빨간 잠바 옷차림에 푸른 색 모자를 쓰고 친구 모임에 나간 일이 있었다. 그때 친구들이 "아니 한송, 요즘 달라졌네. 어디 애인 있는 거 아냐?"하며 한마디 씩 했다. 그 뒤 난 자주 "옷 깔끔히 입고 나가라"하신 누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그리고 또 아내 한솔을 떠 올린다.

그렇다. 내가 만일 옷을 정갈하게 입지 않으면 아내가 없다(홀아비)는 표를 내는 것과 같다. 그건 나에 대한 수치만이 아닌 아내에 대한 모욕이다. 따라서 내가 옷차림을 전보다 더 정갈하고 깔끔하게 하는 것은 아내에 대한 예의이다. 그런 점에서 난 깨우침을 준 누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누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아내 한솔은 평소 옷차림이 화려하지 않았다. 고급 화장품을 쓰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옷차림이 추하다거나 남루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런 점은 남편인 나와 닮은 데가 있다. 허나 남편의 옷차림에 대해선 유독 신경을 썼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나에게 "선생님, 코디 누가 해주세요. 멋있어요."했다. 또한 그는 평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증명사진 밖에 독사진이 거의 없다.

지난 2월 아내가 선종(善終, 죽음)했을 때, 영정(影幀)사진을 찾으려니 마땅한 사진이 없다. 있다 하더라도 그게 모두 근래 사진이라 그걸 영정사진으로 하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때 딸이 "아! 됐다"하며 미국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사진을 받았다.

딸의 이야기에 의하면 몇 년 전에 엄마가 정갈한 옷차림에 몸을 단정히 하고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 줬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 적힌 사진관 전화번호를 찾아 사진관에 전화를 걸어 영정사진을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미리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영정 사진까지 준비한 것이다. 환하게 웃는 그 모습이 당장 뛰어 나올 듯 하다.

 

장례식 때 이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걸어 놨더니 문상객 마다 한마디씩 했다. 한솔 친구들은 "아, 한솔 선생이 웃으며 뛰어나오는 듯해요." 했고, 내 친구들은 "한송, 언제 새장가 갔나? 옛날 부인이 아닌데..." 하며 농까지 걸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아내의 깊은 뜻을 알았다. 영정사진이 남루하면 문상객들로 부터 좋은 인상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누가 될 것이란 걸 알고 미리 죽음을 대비해 영정사진을 찍었다는 것 말이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남편에 대한 생각, 누님의 동생에 대한 생각, 이는 모두가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난 두 여인, 즉 누님과 아내를 존경하며 사랑한다. 또한 그런 누님이 있어 난 행복하다.

따라서 내가 어디 나갈 때, 옷을 정갈하게 입고 깔끔히 나가는 것은 아내에 대한 나의 배려이며 또한 보답이다.

"동생, 나갈 때 옷 깔끔히 하고 나가!" 누님의 말씀이 자꾸만 뇌리에 맴돈다.

김포 하늘빛마을 여안당에서 한송 포옹 적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통신원  jwy-han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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