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들꽃 탐사 제4일째인 2005년 7월 28일에는 서파에서 북파 쪽으로 종주를 하면서 들꽃탐사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날이다. 종주라고 하여 서파 쪽에서 천지를 내려다보면서 북파 쪽으로 가는 길은 아니었다. 전혀 사람이 다녔던 적이 없는 초원을 가로질러 가면서 들꽃을 탐사하는 일정이었던 것이다.
(주)동북아식물연구소 백두산 들꽃 탐사단은 이날의 일을 위해 새벽 4시에 기상을 하였다. 어제 올랐던 서파로 오르는 길을 따라 우리를 태운 차가 달렸다. 그 길을 달리다 어제 우리를 태웠던 차가 갈 수 있었던 서파 주차장에 이르기 전 어느 비탈길에 내려 우리는 종주를 시작하였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연길에 사는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젊고 건장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길이 나 있지 않은 비탈진 백두산 초원의 꽃밭을 걸으며 들꽃들을 찾는다는 상상을 해 보라. 그 자체가 큰 모험이고, 신비가 아니겠는가? 우리 탐사단의 단장인 현진오 박사는 말했다.
"지난해에 있었던 백두산 야생화 탐사 때도 종주를 했는데, 그때도 새벽 시간에 나서서 초원길을 헤치면서 걸었는데, 가이드가 길을 잘못 잡아 북파에 도착했을 때는 밤 10시 가까이 되어 무척 고된 행군이었다. 오늘은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말을 듣고 길을 나섰으니 혹시나 길을 잘못 들어 목적지인 장백폭포 밑에 있는 온천마을 숙소까지 제대로 갈 수 있을지 걱정을 하면서 길을 나선 것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해발 2000m가 넘는 비탈진 초원길을 누비면서 가는데, 산의 언덕과 골짜기를 수도 없이 넘었다. 그날따라 가랑비는 부슬부슬 오락가락하고 안개가 밀려왔다 걷히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탐사가 이루어졌다.
백두산 초원은 가도가도 이어지는 그야말로 광활한 들꽃 천국이었다. 화살곰취와 곰취, 껄껄이풀이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남한 지역에서 들꽃 탐사를 여러 곳 다녀보았지만 대암산 용늪 주변에서만 보았던 닻꽃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타래난초, 손바닥난초와 같이 남한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들꽃들이 군락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백두산을 두르고 있는 정상 부근으로 올라가다 보면 비탈길 위에 파란색 꽃을 달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하늘매발톱'이 산비탈을 뒤덮고 있는 모습, 연노랑의 두메양귀비가 안개비에 젖은 물방울을 달고 함초롬히 피어있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렇게 북파 쪽을 향해서 걷고 또 걷다가 북파가 가까워진 곳에 이르러서는 천지 주변 능선 쪽을 향해 올랐다. 역시 천지로 오르는 비탈길은 현무암 대지가 비스듬히 너른 암반을 이루고 있고, 그 사이사이의 작은 골짜기에는 7월인데도 얼음과 눈 무더기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 암반 지대의 바위틈에는 붉은만병초 꽃과 노랑만병초 꽃이 화려한 자태로 안개 틈으로 언듯언듯 다가왔다 밀려가곤 하였다. 붉고 노란 만병초 꽃들이 태곳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채 우리 탐사단을 농락하고 있었다. 가이드도 그 길을 걸으면서 이쪽으로 가다가 길이 아니라고 하면서 되돌아와 다른 방향으로 가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그 안개 속을 뚫고 드디어 북파 쪽 백두산 천지를 감싸고 있는 능선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오후 4~5시쯤 되었다. 서파에서 북파로 향하는 등산객들이 가끔 보였지만 중국 사람들은 거의 보이질 않았다. 이렇게 힘들게 걸어서 우리 백두산 들꽃 탐사단은 석양을 안고 가파른 북파 길을 조심조심 걸어 내려갔다. 저녁 8시 경에 장백폭포 밑에 있는 노천온천이 있는 동네 숙소에 이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