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지 않은 말

<2019. 10. 10.>

일상생활에서 몇 가지 말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말은 내게 일단 불편하다. 들으면, 머릿속에 좋은 그림보다는 기분 나쁜 그림이 스쳐 간다.

첫째, ‘우울’이다. 아무리 밝아 보이는 사람도 우울하지 않은 적은 없을 거다. 각자는 누군가를 만날 때 자신의 우울을 감추려고 겉으로 밝게 보이는 가면(persona)을 쓰는지도 모른다. ‘우울’은 두 글자 모두 닫힌 소리로 들린다. 덩달아 마음도 닫힌다. ‘우울’이라는 소리가 내 몸에 닿으면, 내 체세포가 움츠러드는 느낌이 든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니, 내게서 나오는 소리 ‘우울’은 상대방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다치게 하겠다. 한편, 내가 어떤 날 정말로 우울할 때는 몸을 문지르면서 작은 소리로 말한다. ‘지금, 이 순간, 네가 정말 우울하구나.’ 지금의 마음 상태를 그대로 인정한다. 그러면 기분이 더 가라앉지는 않는다. 그렇다 해도, 내가 한 말은 내게 최면을 걸기에 ‘우울’은 불편한 상상을 자극한다.

둘째, 몰랐을 때는 그랬을지라도 일본말은 쓰지 않으려고 한다. ‘애매하다’는 말을 들으면 홍등가의 풍경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고약한 상상이다. 어떤 상황이 불분명하면 ‘애매하다’고 하거나 ‘애매모호하다’고 말하곤 했다. ‘애매하다’와 ‘모호하다’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려고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별 소용이 없었다. 일본어 사전을 뒤적여보다가 깜짝 놀랐다. ‘애매(曖昧)’의 첫 번째 뜻은 모호(模糊)이고 그 반대말은 명확(明確)이다. 이는 ‘애’와 ‘매’의 음훈이 각각 ‘가릴 애’와 ‘새벽 매’이기에 머리가 끄덕여지는 뜻이다. 문제시되는 두 번째 뜻은 풍기(風紀) 상 불미스러움이다. 애매숙(曖昧宿; あいまいやど, 아아마이야도)은 위장 퇴폐업소로서 찻집·음식점 등으로 위장하고 매춘부를 두고 있는 가게이다. 메이지(明治) 시대의 용어이다. 어떻게 해서 ‘애매’는 그런 뜻을 띄었을까? 曖를 구성하는 글자를 나열하면, {日, 愛}이다. 曖는 해(日)가 중천에 떴는데도 탐욕에 빠져 남을 사랑한다는 뜻이겠다. 昧는 그 구성 요소가 {日, 未}이기에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이다. 따라서 ‘애매’는 대낮에도 새벽녘에도 탐욕을 채우려는 잔치(?)를 벌이는 행위로 풀이된다.

‘애매’ 만큼 고약하지는 않지만, 입에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일본말은 겐세이(牽制), 앙꼬, 하청(下請), 오야지(親父), 단도리(だんどり 등이다. 대신에 각각 간섭, 팥소, 하도급, 책임자, 단속 등을 쓰려고 노력한다.

셋째, ‘~과의’, ‘~와의’는 발음하기도 불편하고 글의 뜻을 모호하게 하는 말이다. 그 적절한 예가 ‘범죄와의 전쟁’이다. 발음하기에 공력이 많이 들어간다. 뜻이 모호하다. 내게는 이렇게 들린다. ‘범죄와 함께 전쟁한다.’ ‘범죄라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 전쟁한다.’ 적어도 범죄자는 전쟁의 상대방이 아니다. 기억하건대, 1990년 10월 13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 내용은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이었다. 그 본보기는 1965년에 미국의 전 대통령 존슨(Lyndon B. Johnson)이 선언한 ‘범죄에 대한 전쟁’(War on Crime)이었다. 전쟁의 대상은 범죄이다. 그렇다면, 적절한 표현은 ‘범죄와의 전쟁’이 아니라 ‘범죄에 대한 전쟁’이다.

‘과의’를 검색어로 하여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다. 우선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 ‘일본이 한국과의 관광 전투에서 패배했다’(Japan losing tourism battle with South Korea amid row, 서울 특파원 보도, 일본 아사히신문 영문판, 2019.10.8.) 둘째, 한국과의 '역사전쟁'에 힘을 쏟겠다는 의도(“ 아베 내각은 ‘바비큐 내각’ ”…일서 측근 중용 개각에 거센 비판, 한겨레, 2019.9.12.). 잘못 이해하면, ‘한국과의 관광 전투나 역사전쟁’은 ‘한국이라는 친구와 함께 제삼자에게 대항하는 관광 전투나 역사전쟁’으로 읽힌다. 내용은 그렇지 않다. 글이 조금은 길어지지만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표현을 바꿔본다.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벌인 관광전투, 한국을 대상으로 일으킨 ‘역사전쟁’. 이렇게 하니, 입말처럼 읽기가 부드럽다

한편 ‘미국 이외 나라들과의 안보 협력, 한국과의 방위협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서술한 대목’(일본 방위백서, ‘독도 충돌 경우 자위대 긴급 발진’ 시사 파문, 한겨레, 2019.9.27.)에 나오는 ‘과의’는 앞 문단의 '~과의'와는 달리 ‘~와 함께’라는 뜻으로 읽어야 자연스럽다. 즉, ‘미국 이외의z라들과 함께하는 안보 협력, 한국과 함께 하는 방위협력’이다.

‘오키나와의 역사·문화·정치 등을 한국과의 교섭·비교섭사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논의를’(한국-오키나와 ‘평화를 위한 데칼코마니’, <한겨레21>, 2017.9.21.). 인용문에 나오는 ‘오키나와의’와 ‘한국과의’는 무슨 뜻인지 아예 모르겠다. ‘와의’나 ‘과의’를 ‘~를 대상으로’, ‘~를 상대로’, ‘~와 함께’ 등으로 바꿔 봐도 뜻이 다가오지 않는다. 그 인용문에 ‘의’가 세 번이나 나온다. 읽기가 매우 불편하다.

듣자마자 불쾌한 그림이 떠오르는 말, 입 놀리기에 수고로운 말, 뜻이 모호한 말은 쓰고 싶지 않다. 우리의 입말,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일상 언어생활에서 더 제대로 사용하고 싶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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