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중국 길림성 두만강변에서의 들꽃탐사 이야기
2005년 7월 25일부터 8월 1일까지 7박 8일 간 '백두산 식물탐사'를 다녀온 이야기를 본 지면에 몇 차례 연재하고 있는데, 이번 회차로 연재를 마칠까 한다. 당시 (주)동북아식물연구소에서 주관하는 '백두산 식물탐사'는 연구소 소장인 현진오 박사의 인솔과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연길에 거주하며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유사장이라는 조선족 동포의 도움으로 진행되었다.
7월 30일 우리 백두산 식물탐사단은 새벽녘에 백두산 아래에 있는 도시인 이도백하를 출발하여 두만강의 발원지 '원지'에 도착했다. 그 주변에서 두어 시간 정도 식물 탐사를 한 것은 지난 회차에 본 지면에 소개했다.
그런 다음 원지에서 흐르기 시작하는 두만강을 따라 북한의 무산시가 내려다보이는 토문까지 내려가면서 식물 탐사를 하였다. 토문에 도착해서는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두만강과 무산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 무산시를 내려다보면서 주변 식물을 찾아보았다. 오후 네 시 경에는 길림성의 화룡이라는 곳을 향해 출발해 가면서 중간 중간에 차를 멈추고 식물 탐사는 계속되었다.
이렇게 두만강 주변에서 식물탐사를 마치고 마지막 밤은 연길 시내로 들어가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인천공항을 통하여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원지에서 흐르기 시작하는 두만강 상류는 개울물 수준이었다. 수량은 좀 되었지만 강폭이 2~3m 밖에 되지 않았다. 원지는 중국 국경 안에 있다. 원지를 지나 두만강을 따라 조금 내려갔더니 거기서부터는 계속하여 북한과 국경을 이루면서 흐르고 있었다. 국경지이기 때문에 중국 쪽에는 군인들이 거의 보이질 않는데, 북한 쪽 강변에는 곳곳에 군 초소들이 있고, 가끔 북한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였다. 강변을 지나면서 북한군 초소들이 보일 때는 약간 긴장된 분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식물탐사단은 차를 몰고 토문 쪽을 향해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들꽃으로 뒤덮인 곳에서는 차를 세우고 들꽃들을 찾아 현 박사의 설명을 듣기도 하고, 열심히 그 꽃들을 사진기에 담았다. 도로는 비포장이었지만 강변을 달려서 그런지 곧게 잘 뻗어 있었다. 서너 차례 차에서 내려 주변 들꽃을 살피기도 하고, 주변 풍광을 감상하면서 내려갔다.
두만강변은 잎갈나무와 자작나무 등 백두산 주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강변에는 호랑버들, 키버들, 갯버들 등 각종 버드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여름이라 꼬리조팝나무 꽃들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그런가 하면 물가에 많이 서식하고 있는 산형과 식물들인 구릿대, 개구릿대, 어수리 등이 활짝 피어 있었다.
원지가 해발 12580m라고 하니 그곳에서 발원하여 서서히 흘러내려가는 두만강에서 백두영봉 사이는 넓다란 초원이었다. 가끔가끔 눈에 들어오는 자작나무나 잎갈나무, 가문비나무 등의 숲이 초원의 섬처럼 군데군데 자라 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 넓은 초원에서 각종 들꽃들이 제철을 만난 둣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하늘나리, 날개하늘나라, 털동자꽃, 제비동자꽃, 산각시취, 염주황기, 긴산꼬리풀, 금매화, 큰금매화, 분홍바늘꽃, 용머리, 달구지풀, 닻꽃, 난장이패랭이, 흰제비란, 곤달비, 부채붓꽃, 어수리와 개구릿대 등의 산형과 식물 등 여느 백두산 여느 초원에서 보았던 식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날개하늘나리와 털동자꽃은 다른 곳에서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이곳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꽃 모양도 특이 하지만 주홍색의 진한 꽃 색깔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한 명월 호숫가에서 많이 보았던 제비고깔과 긴산꼬리풀, 물레나물 등이 두만강 주변이 습지가 많아서 그런지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벌써 14년 세월이 흘렀지만 원지와 두만강변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밟히듯 선하다.
이렇게 식물탐사를 하면서 차를 달리다 보니 오후 2시경에 토문이라는 중국과 북한의 국경마을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까지는 원지에서 40~50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인데도, 아직도 강폭은 여전히 10여 미터를 넘지 못할 정도로 좁았다. 생각보다 강이 깊지도 않았다. 그곳 국경마을에 도착해 보니 작은 다리가 놓여있어 중국과 북한을 잇고 있었다. 강 건너 북한 쪽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들도 몇 채 눈에 들어왔다. 강 건너쪽 흙길 도로에는 소 등에 쟁기를 싣고 가는 북한 주민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순간 내 어린 시절 시골에 살 때, 쟁기를 싣고 농사일 다니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식물탐사단은 국경 마을에 있는 토문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시켜먹었다. 한글로 '토문식당'이라고 쓰인 상호가 더욱 정겹게 다가왔다. 점심 메뉴는 두만강에서 잡은 민물고기 매운탕이었다. 그리고 두만강에서 잡은 작은 민물고기를 튀긴 것도 반찬으로 나왔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이라 김치 등 한국 토속 음식들도 반찬으로 함께 곁들여 나와 아주 맛있는 점심을 대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우리 탐사단은 함경북도의 무산시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 위에 올라갔다. 거리에 오르니 무산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내 건너편에는 산 정상이 평평하게 깎여 나가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중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공부했던 '무산 광산'의 모습인 것이다. 그 광산이 80년대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행군 시절 중국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무산시는 동네는 넓은데, 고층 건물 몇 채가 보이고, 나머지는 갈색 기와 등을 얹어 지은 많은 단층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광산도 퇴락하고 평양과 멀리 떨어져 있는 국경도시의 적막감 등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았더니 두만강이 국경을 이루면서 흐르고 있다. 여전히 강폭은 넓지 않아 서울 안양천 정도 넓이라고나 해야 할까? 강 가운데는 작은 하중도와 모래톱 등도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두만강을 건너 중국과 북한을 오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산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은 관목 숲과 억새 등이 어우러진 풀밭 등이 널려있었다. 그곳에서는 시베리아살구, 생열귀나무, 댕강나무와 같이 백두산 다른 지역에서는 보지 못했던 식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시베리아살구는 과거에 남한 지역에서는 자생하지 않는 북방 식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의식 선생이 전국 식물 탐사를 다니면서 충북 단양지역에 서식하는 것을 확인하여 남한 지역에도 자생하는 밝혀진 바 있다. 필자도 전의식 선생이 생존해 있을 때 단양 지역 식물 탐사에 동행해서 시베리아살구를 만났던 기억이 새롭다. 생열귀나무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남한 지역에서도 깊은 산속에서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얼핏 보아서는 마치 바닷가에 서식하는 해당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장미과 식물이다.
이렇게 토문 지역에서 식물을 살핀 다음 화룡을 향해서 가면서 중간에 차를 세우고 개울가 등에서 식물들을 살폈는데, 물봉선, 노랑물봉선, 지느러미엉겅퀴, 달맞이꽃 등 남한지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들이 그곳 논밭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어, 마치 강원도의 어느 시골 동네를 지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우리 일행은 다음 날 연길 시내 관광을 하고 백두산 초원과 정상부와 두만강 유역에서 처음 만났던 들꽃들에 대한 반가움과 희열을 안고 8월 1일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2016년 두만강변 식물탐사를 기획했지만 당시 북중 간의 긴장으로 인하여 그 지역 여행이 통제되지 못하여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백두산과 두만강에서의 식물들은 잔영으로 머릿속에 오래 남아 지금도 또렷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수차례에 걸쳐 백두산 일대에서 2005년과 2016년 식물탐사를 하면서 보았던 '백두산의 들꽃' 소개는 마치겠다. 필자가 이 분야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더더구나 2005년 식물탐사를 갔을 때는 거의 초보 입문 수준이었기 때문에 충분한 탐사와 동정을 통해서 풍부하게 알려드리지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혹시 식물 소개를 하면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과감히 지적해 주시길 당부 드린다. 편집을 위해 원고를 꼼꼼히 챙겨주신 박효삼 편집위원님께는 원고를 꼼꼼히 작성해드리지 못했지만 그 엉성한 원고를 바로잡아주시느라 고생하게 한 점 미안하고, 또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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