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당 신화』서평

미당 서정주(1915-2000)는 85세 천수를 누리는 동안 1000편이 넘는 시와 시집 15권을 남겼다. 한국 문단 내 주류는 "미당 없는 문학사를 상상하기 어렵다"고 평가하며 미당을 미화한 적이 있다. 2017년 『미당 서정주 전집』 20권이 완간된 뒤 나온 시인이자 고려대 교수의 평가이다. 실제로 미당의 삶은 아름다운 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삶과 문학이 뒤틀리며 비판의 여지가 너무나 크다.

▲ 2017년 20권으로 완간된 미당 서정주 전집(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사)

늘샘 김상천의 역작 『미당 신화』(사실과 가치, 2019)는 공자, 아리스토텔레스, 호메로스, 다산 정약용 등 당대 지식인들이 보인 문학형식에 주목한다. 문학의 형식으로 왜 시를 옹호하고 소설을 '사갈시하며 부정했는지' 그 긴밀한 연관성을 도입단계에서 소개한 책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미당 서정주의 시 작품이 함축한 이데올로기성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미당은 일제강점기 반민족 친일행위와 해방 후 독재 권력에 영합한 역사적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다. 당연히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당 작품을 비롯한 '주례사 비평'은 한국문단에 만연한 현실이다. 글쓴이 늘샘은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나아가 '미당 신화'가 지속적으로 유포되고 재생산되어 온 한국문단 내 생태계를 통렬히 비판한다.

한 마디로 '미당 신화'가 수십 년 동안 널리 퍼지고 대중화된 데에는 미당의 정신적 후예인 '괴물엘리트'들이 존재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미당 신화』는 한국문단 내 '국민시인' 내지 '시의 영산(靈山)',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추앙받는 미당에 대해 비판적 분석으로 일관하고 있다. 따라서 『미당 신화』는 문단 내 지배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묵직한 문예비평서로서 그 첫 발을 내디딘 기념비적 작품이다.

▲ 『미당신화』 : '미당 신화'이데올로기를 최초로 분석한 문예비평서 (사진 출처: 하성환)

글쓴이 늘샘은 시 작품과 인격을 분리해서 보는 것에 비판적이다. 시인의 시작詩作 행위가 시인의 사회적 행위인 만큼 시인의 삶과 분리해서 작품을 논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시를 비롯한 예술 작품의 이데올로기성에 깊숙이 천착한 시각이다.

실제로 글쓴이 늘샘은 시인을 '인류 최초의 이데올로기 담당자'라고 갈파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장를 인용한다. 그리하여 시 작품이 지닌 이데올로기성을 명징하게 드러내었다 "어느 시대든 예술가들은 도덕이나 철학, 종교의 시종侍從이었다"고 갈파한 니체의 언어를 인용함으로써 권력에 밀착한 당대 시인들이 지배질서와 권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권력을 미화해 왔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서양 최초의 문예이론서 『시학』을 쓴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서사시로서의 비극이 서술형식을 취하지 않고 극적인 드라마 형식을 취했던 것도 그 정치적 지향점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음을 강조한다.

미당 또한 일제 강점기나 해방 후 수십 년 지속된 독재 체제에서 항상 불의한 지배 권력과 밀착돼 있었다. 평생 미당 자신의 삶과 문학이 그러했다. 1917년생 윤동주와 2살 차이임에도 미당은 그 20대 젊은 나이에 적극적으로 친일시를 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20대 윤동주가 아름다운 우리말로 시를 쓰고 피골이 상접한 채, 생체실험으로 죽어갈 그 시기! 20대 청년 미당은 일본어로 일제를 찬양하는 작품을 거리낌 없이 휘갈겼다. 글쓴이 늘샘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그의 문학작품들이 지닌 분열적・기회주의적 성격을 가감 없이 파헤쳤다.

▲ 연세대 교정에 있는 윤동주 시비. 뒤에 보이는 건물이 핀슨홀인데 일제강점기 윤동주가 머물던 기숙사였다 (사진 출처 : 하성환)

실제로 미당이 시인부락의 족장이 되어 어떻게 수십 년 동안 한국문단의 지배 권력자가 되어 '미당 신화'가 사실로 조작되었는지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미당 신화'가 어떻게 확대재생산 되어 유포되었는지 '미당 신화'의 주범 '괴물 엘리트'의 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하여 글쓴이 늘샘은 "시대의 절망이 시적 재주를 낳고 결국엔 노예도덕으로 종결되고 마는 전형적인 사례"로 미당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미당 자신이 지닌 글재주로 권력의 시종侍從이 되어 지배 권력을 미화할 때 그의 시적 기교는 절망을 낳았다.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해방 후 극우반공 파시즘으로 형성된 지배질서 속에서 미당은 '시대를 읽는 서사적 비전'을 상실한 채, '서정시라는 기교적 언어'로 자신을 끝없이 변신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미당의 작품이 그러했다. 요컨대 미당은 시대의 불의에 타협하고 권력에 빌붙은'궁정시인'이다.

그런 면에서 글쓴이 늘샘은 미당을 "민족이라는 이름을 팔아 사복을 채운 야비한 기회주의자"로 규정하고 그 위상을 재정립한다. 『미당 신화』의 출간은 마르크스주의 미학이론에 기초한 선구적인 작품으로 한국문예비평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시간을 내어서라도 반드시 일독을 권하고 싶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hsh70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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