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꿈을 이룬 날, '도라꾸' 타고 훨훨

11월 28일, 노을공원으로 김장을 하러 가는 날이다.

공원 정상에서 일하려면 단단히 걸치라는 아내 말 따라 방한모에 내복까지 입었다. 이런 날, 기상 캐스터는 한파주의보가 내렸다고 호들갑을 떨었나? 콧등에 이는 바람이 오히려 시원하다. 어느 탈북자의 말마따나 입고 있는 옷이 자산이라도 되는 양 한껏 껴입었으니 둔하기가 그지없다. 이른 아침, 보는 이 아무도 없을 텐데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굼뜬 내 모습에 헛웃음이 나온다.

어스름한 아침, 풍산역 입구에서 김밥을 파는 아주머니의 눈만 유난히 형형하다. 몇몇이 뛰어 들어간다. 필시 곧 차가 들어오나 보다. 어쩌면 출발 대기 중인지도 모른다. 덩달아 내달렸다. 아뿔싸, 문산행이다. 가쁜 숨 몰아쉬며 다시 한 번 웃는다.

잠시 뒤 용문행 차가 왔다. 여전히 붐빈다. 전철 안쪽으로 떠밀려서 들어간다. 백팩을 가슴에 안는다. 하릴없이 눈을 감고 오늘 할 일을 떠올려 본다. 익숙한 바큇소리와 성가시게 들리는 안내 방송 말고 간간이 들리는 잔기침소리뿐 절간이 따로 없다. 그런데 난데없이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앞에 선 덩치 큰 장애물들(?)을 헤집고 찾은 진원지에는 제법 건장해 보이는 젊은이가 앉아 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다리를 벌린 채 가방을 꼭 껴안고 있다. 소리도 색처럼 농담과 명암이 있는가. 드르렁슈우 크르렁퓨우~ 익숙한 소리다 보니 차라리 정겹다. 얼마나 고단했으면…. 안쓰럽다. 잠시 명상에 잠겼다가 눈을 뜨니 놀랍다. 그 사내가 금세 눈을 뜨고 핸드폰을 보고 있지 않은가? 저간의 사정을 알지 못한 듯 그는 대체 표정이 없다. 까만 야구모자와 시커먼 마스크 사이 눈빛이 참 해맑고 또롱또롱하다. 그러고 보니 주변 사람 모두 아무런 반응이 없다. 괜히 나만 혼자 지레 놀라고 웃다가 그만저만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 옛날 피난민 대열이 그랬을까?

대곡역에서는 차가 제때 출발하지를 못한다. “출입문 닫겠습니다.”란 안내 방송이 잇따라 세 번이나 들린다. 그렇지 않아도 옴짝달싹하기 힘든데 한꺼번에 몰려드는 통에 버틸 재간이 없다. 용을 쓴들 별수없다. 그저 내 몸을 맡길 뿐이다. 그런데 내게도 이런 횡재가 따르다니 참으로 고맙다. 빈틈 찾아 쏠리다 보니 손잡이 앞에 이르렀다! 이것저것 잴 틈이 어디 있는가? 무작정 움켜잡았다. 다시는 이 행운을 놓지 않겠다는 듯이 손가락 다섯 개로 꽉 거머쥔다. 그런데 안고 있던 가방을 선반에 올려놓은 게 실수다. 그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내’ 손잡이를 낚아챘다. 망칠의 나이에 홀로서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이 아침, 벌써 몇 번째인가? 또 다시 헛웃음을 짓는다.

월드컵경기장역을 나서니 하늘이 청명하다. 초겨울인데 전형적인 쪽빛하늘이다. 오늘 함께할 우리 단원들은 모두 열 분이다. 한 분 빠짐없이 정시에 모였다. 걷는 데 이골이 난 분들이다. 노을공원까지는 40여 분을 걸어야 한다. 아무도 토를 다는 분은 없다. 끼리끼리 재잘대며 걸어가니 소풍가는 초등생이나 다름없다.

길가의 산사나무는 붉은 열매를 자랑하고 철부지 개나리는 꽃을 피웠다. 나뭇잎에도 실핏줄이 있는가? 오색영롱한 화살나무 잎은 더욱 그랬다. 태반은 이미 떨어졌지만 몇 개 남지 않은 이파리들이 형언하기 어려운 색깔로 우리를 반긴다.

난지유아숲체험장 근처에 이르렀을 때 연락이 왔다. 차를 보낼 테니 기다리란다. 뜻밖이다. 지난해까지는 맹꽁이 전동차를 타고 올라갔지만 올해는 예산이 바듯해서 걷는다고 했는데…. 잠시 뒤에 난지천주차장으로 트럭이 들어선다. 2.5 톤이다. 공원 안에서는 트럭을 탈 수가 있다면서 연신 허리를 굽히며 미안해하는 강덕희 샘에게 한 마디 했다.

예전에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어린이날 기념 축제장에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이 뭔지 아는가? 여러 곳의 베이스를 돌면서 스티커 10장을 모아오면 손수레를 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이럇’ 소리를 외치고 아비들은 서울교대 운동장을 한 바퀴씩 도느라고 헉헉거렸다. 요즘 산골에서는 뗏목을 타고 계곡을 오르내리고, 농촌에서는 트랙터를 타고 신작로를 누비는 일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아는가? 우리가 트럭을 타게 될 줄이야 꿈에라도 생각했겠는가? 돈 주고도 못하는 귀한 체험이니 아예 그런 생각을 마시라.

▲ 동심을 떠올리게 한 트럭, 노을공원까지 훨훨 날다.

갑자기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주먹을 불끈 쥐고 떼창을 부르기 시작했다.

“싸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먼저, 재간꾼 최영취 샘이 ‘도라꾸 오라이, 빠꾸’를 연발한다. 그러자 우리말지킴이 오재원 샘이 일인은 원래 드럼(drum) → 도라무, 크림(cream) → 구리무, 스틱(stick) → 스데끼, 샐러드(salad) → 사라다, 버켓(bucket) → 바께쓰 등으로 일본어에는 ‘ㅇ’ 받침을 제외하면 다른 받침이 없다고 하셨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북 장수가 고향인 한규칠 샘이 ‘도라꾸’는 원래 산판의 나무를 실어 나르던 차다, 어렸을 때 도라꾸는 맘대로 얻어 탔다, 궁금해하는 우리들에게

“아, 걔들이 태워 주지 않으면 커다란 바위를 굴려서 산길을 막아버렸지. 그러지 말라고 태워 준 거야.”

무용담 같은 얘기는 꼬리를 문다.
이번에는 박양기 샘이 굵은 바리톤 조로 한 말씀 하신다.

“아, 글쎄 내가 살던 광양 진월면에서는 소풍 갈 때 트럭을 타고 가는데, 잘사는 진상면 얘들은 버스를 타고 갔어. 한번은 선암사로 갔는데 스님들이 다가와 도시락에 든 멸치를 달라고 하는 거야.”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자 강호성 샘이 선암사는 태고종의 총본산으로 대처승을 인정하는 사찰이니 이상할 게 없다고 하신다.

아! 왕복 30리 길을 걸어 신북면 호산절 - 어렸을 땐 그저 호산절이라고 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호산 망월사를 이름 - 로 소풍을 가고, 그보다 더 먼 영암 읍내로 갈 때는 50리 길을 나룻배까지 타고 건너야 했다. 도라꾸는커녕 언감생심 무슨 버스를 타고 다닌단 말인가? 아침에 나가는 버스 한 대가 해질녘에 들어오던 시절이다. 그나마 우리 동네 앞을 지나지 않으니 하루에 두 번 버스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했다.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교통사고가 일어날 수가 없었다. ‘구루마’ 뒤에 매달려 타다가 아저씨한테 들켜 줄행랑을 치다가 고무신 - 말표 검정고무신 -이 벗겨지는 바람에 잡혀서 ‘잡놈’ 소리를 들어야했다. 창피한 말이지만 내가 새내기 선생 시절, 멀미를 하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버스를 타면 얼마나 행복한데 그 좋은 걸 타고 멀미를 하다니…. 차를 타고 조는 사람 역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차창 밖에 보이는 풍광이 얼마나 신기한데…. 하물며 비행기 안에서 자는 이들은 사람도 아니라고 여겼다.

박양기 샘은 화제가 참 다양하다. 이참에는 아람단 얘기로 넘어간다.

“전두환이는 정말 대단한(?) 인간이야. 박정희가 유치한 스카우트를 단번에 앞질렀거든. 웬만한 군부대는 다 가봤을 거야. 대한민국 군부대가 거의 아람단 야영장이었다니까. 그때 아람단 서울연합회장인 친구는 자기 판공비가 연 3천이었대. 그러니까 그 어려운 시절에 자기 교실에 전화기까지 두고 떵떵거린 거지. 그 사람 술 안 먹은 사람 거의 없을걸. 지가 아는 교장•교감 치고 해외 안 나간 이도 없을 거야. 나도 덕분에 대만이랑 일본에 다녀왔거든.”

독재자들의 천성인가? 뭔가 하나씩 남겨놓고 싶은가 보다. 전두환 뒤를 이은 노태우도 청소년단체를 만든다. 이름하여 한국우주소년단으로 미국우주소년단을 본뜬 것이다. 그런데 노태우는 전두환처럼 손이 굵지 못했나 보다. 퇴임할 때 총재더러 들어오라고 해서 청와대로 갔단다. 잔뜩 기대를 하고 갔는데 빈 손으로 악수만 하고 나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은 서울본부마저 없어졌다고 하니 한때 이 단체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만감이 서린다.

▲ 하루 전날 활동가 네 분이 준비한 김장 준비, 노을공원 정상의 모습

드디어 노을공원에 도착했다. 정확히 말하면 노을공원 캠핑장 D구역 10개소이다. 노을공원시민모임이 주관하는 제7 차 노을어울림•김장나눔 행사장이다. 절로 가슴이 탁 트인다. 하늘은 투명한 쪽빛이다. 조리대도 청색비닐로 씌워졌다. 우리가 입은 단체조끼도 청색이다. 우리 단체명도 ‘그린에듀’다. 풀빛과 녹색은 같은 빛깔이다. 하늘빛은 풀빛과 일맥상통한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조짐이 아닌가?

(계속)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박춘근 주주통신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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