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간(BAGAN)은 미얀마의 중부 만달레이 구에 있으며, 최초의 왕조가 자리한 가장 오래된 도시입니다. 874년 핀비야 왕에 의해 수도가 되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바간이 버마족에 의해 최초로 수도로 정해진 시기는 1057년 아나우라타 왕에 의해서입니다. 그 이전에 버마족은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287년 몽골의 침입으로 망할 때까지 불교가 가장 융성한 시기이지요.

이 200여 년 동안 너도나도 불탑을 쌓다 보니 만개가 넘었다고 합니다. 현지인 가이드는 지금도 3,000여 개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 미얀마 최초의 왕조 바간(BAGAN)에 세워진 불탑. 동서남북 지천이다.

탑들 중에는 불상이 안치된 탑들도 있어 누구나 들어가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답니다. 사철 더운 날씨에 먹을 것도 지천이고 더위나 비바람 피할 곳이 여기저기 널려있으니 바간이야말로 지상낙원이 아니었을까요?

▲ 지진과 1,000년의 세월 속에 많은 불탑들이 무너졌다. 사진 중앙 왼쪽 탑도 곧 무너질 듯 기울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관리에 들어갑니다. 기존 주민들을 모두 남쪽으로 이주 시켜 'NEW BAGAN' 이라는 신시가지를 만들고, 유적지가 있는 곳은 'OLD BAGAN' 이라 부르며 문화유산으로 보호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높은 탑에 올라가 아름다운 사진들을 많이 찍었지만 2년(?) 전부터는 탑에 오를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 일행도 하루가 지나니 아직 국적과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익었습니다. 각자가 양곤에 도착한 후 현지인 칭칭(여)이 우리 여행을 도와주는 거의 자유여행이었지요. 2, 3일 전에 미리 도착한 사람도 있고요. 아침을 먹고 바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갔습니다.

미얀마는 개인소득이 1,300불 정도인 160위권의 가난한 나라입니다.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를 버스로 가면 8시간 걸릴지 10시간 걸릴지 모른다고 합니다. 국내선 요금이 국제선 요금보다 더 비싼 곳이 미얀마이고요. 갑자기 노선이 취소되기도 하고 바뀌기도 해서 우리는 4월에 팀을 결성하고, 미리 비행기 자리와 좋은 호텔을 잡아둔 거라고 합니다.

미얀마에 도착하여 만나본 거의 모든 여자와 어린이들 얼굴에는 노란 분칠이 되어 있습니다. 타나카(THANAKA)입니다. 타나카 나무를 한자로는 黃香楝樹(황향련수)라고 하는데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나무라고 합니다. 이걸 숫돌에 물을 뿌리며 갈아 얼굴에 바릅니다.

▲ 말린 타나카 나무토막을 뉘어 숫돌에 갈면 된다. 여행 내내 가장 열심히 타나카를 바른 일행 Jackie. 미국에서 남편 Phillip 과 함께 참여. 한국어 단어를 아주 많이 알고 있음.
▲ 타나카를 바른 모습. 카메라를 들이대니 수줍게 포즈를 취해준다.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는 시간 칭칭이 일행 여자들에게 타나카를 발라주기에 저도 줄을 섰습니다.

▲ 공항에서 함께 타나카를 바른 일행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참가한 Bruce Yang과 James.

자외선 차단 효과도 있으며, 열을 내리고 소염, 진통, 가려움증, 모기 예방 등의 약리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여름에는 40도가 넘기에 땀 흘려 나는 안 좋은 냄새도 제거하고요. 사실 더 중요한 이유는 타나카를 바르지 않으면 게으르다고 평한다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지 않았다는 의미와 같다는 것이지요. 타나카를 바른 남자들도 종종 눈에 띄더군요.

▲ 바간 공항 활주로
▲ 여유롭고 정겨운 공항 청사
▲ 외국인에게는 유적지 요금을 받음. 일인당 원화 2만 원 정도.

바간 공항에 내리니 1990년대 중국 지방 도시 공항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좁고 기다란 활주로엔 동시 이착륙이 불가능하며 램프도 없습니다. 시골 버스터미널 대합실을 연상시키는 공항을 나와 시장을 둘러봤습니다.

▲ 미얀마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Nyaung U 시장을 찾았다.
▲ 한국의 시골 장터와 흡사하다.

올드 바간으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사원 탐방을 하고 THANDE HOTEL로 들어갔습니다.

▲ 규모가 큰 탑은 밖에서는 가려서 촬영하기 힘들다.
▲ 벽돌을 이용하여 탑을 쌓고, 백회를 발라 하얀 탑을 완성한다. 내부에는 회벽 위에 벽화를 그린다. 세월이 흐르며 백회칠은 떨어져 나가고 붉은 벽돌탑으로 변했다.
▲ 경내에서는 탑의 규모가 커서 화면에 잡기 어렵다. 군데군데 남은 백회의 흔적
▲ 탑 내부에 안치된 불상. 초기 인도 불상의 영향으로 머리 정수리가 볼록하고, 코가 유난히 길고 뾰족하다. 회칠도 거의 다 떨어져나갔고, 벽화도 색이 바란 체 극히 일부만 남아있다.

강변 나무 아래 야외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고 고적지의 풍모를 느낄 수 있는 독채 객실에 들어가 각자 개인 시간을 가졌습니다.

▲ 점심과 저녁을 먹었던 옥외 식탁. 저녁노을을 감상하던 운치 넘치는 호텔.
▲ 아침 식사를 한 호텔 옥외 식당 전경
▲ 호텔 객실 일부
▲ 호텔에서 바라보는 석양

바간에 머물며 자료에 없는 최초 왕조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봅니다. 이곳에 최초의 왕조를 세운 버마족은 티베트 지역에서 이주해온 거로만 나옵니다.

올드 바간으로 이주한 이들은 불교를 신봉하였고, 당시 원주민들보다 월등한 문화 즉, 문자와 건축기술을 가졌으며, 강력한 국가를 이루었던 종족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적의 공격을 받아 도망친 경우라기보다 장기적인 계획과 자의적으로 이주하였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티베트 지역(서역)에서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국가로 당나라와 자웅을 결하던 투판(TU FAN, 토번)이라는 나라가 200여 년(618~841년) 존재하였습니다. 791년 불교를 국교로 정했던 이 나라는 한때 당나라에 군사적 우위도 점하지만, 불교 교파 대립과 왕위계승 문제로 멸망하고 맙니다.

석가모니에 의해 전파된 불교가 천년이 넘어가자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우선 중국으로 넘어온 불교는 선을 중시하며 깨달음을 통한 중생구제를 내겁니다. 말이 대승불교이지 이미 강력한 왕권과 융화되고, 몽골 쪽의 라마불교도 초기 불교와는 멀어졌지요.

지역적으로 원시불교의 교리가 강하게 남았던 투판에서는 새로운 불교와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내세나 중생구제보다는 살아생전 번뇌를 끊고 실천을 통하여 이 땅에 불국토를 건설하고자 하는 부류가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시대사조인 중앙집권의 절대왕권 통치를 거부하고 각자의 염원을 발원하여 새로운 이상향을 만들기 위해 찾은 곳이 멀고 먼 남쪽 바간이었을 것입니다.

바간은 거대한 왕궁이나 성이 없습니다. 남아있는 왕궁은 어느 사원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요.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계급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각자 자기의 능력과 염원에 따라 탑을 쌓고 이루어낸 지상낙원, 불국토!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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