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가 삼랑 을보륵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사이 나는 무심결에 하늘 정원의 테라스 뒤편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복도 끄트머리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고, 밖으로 이어지는 문이 열려 있었다. 엉겁결에 나도 모르게 문 밖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저 멀리에서 쿵작대는 음악 소리와 소음이 들렸다. 나는 그곳으로 유영하듯 다가갔다. 그곳에는 일단의 무리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영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모두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그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 망쳤어. 이번 생애에는 억만장자의 아들로 태어나 인생을 실컷 즐기려 했는데 또 가난뱅이 집안에서 태어나서 한 평생 구차하게 살다가 이게 무슨 꼴이람."

"뭐야?  너는 두 번이나 태어났었어? 나는 전생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흐흐흐. 나는 전생에도 부잣집에서 태어났고 다음 생에도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날 건데, 너는 전생이 없다구? 처칠이 한 말 잊었어? 포기하지 마. 절대."

"이건 불공평해. 누구는 전생과 후생이 있는데, 나는 단 한 번으로 생을 마감하고."

"그러면 너도 모짜르트로 태어나지 그랬어. 모짜르트는 조건부로 천국에 올라간다는데, 너희들은 지옥에나 가겠지."

"나는 다음 생에 독재자로 태어났으면 좋겠어. 잘생기고 멋있는 독재자로. "

"그럼 크롬웰 같은 독재자면 되겠군."

"이런 머저리 같은 것들 봤나? 다음 생이 어디 있고, 전생이 어디 있어? 조금 있으면 지옥에 갈 것들이 쓸데없이 뭣들 하는 거야?"

"근데 말야,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게 맞는 말이야? 틀린 말이야?"

"신이 있었다면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음대에 지원할 때 합격하게 했었어야지. 그랬으면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지도 않았을텐데 말야."

"그것보다도 신이 있었으면 아예 지옥이란 걸 만들지 말았어야지, 안그런가?"

"천국을 뒤엎어야 해. 천국의 좋은 것들을 다 빼앗아서 지옥으로 가져오면 되는 거 아냐? 그것들로 지옥을 천국처럼 꾸미면 되는 거야. 안그런가?"

"좋아. 지옥에서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들을 수 있다면 베리 굿이지."

▲ 천지창조

"그래! 좋은 생각이야. 너를 지옥의 두령으로 임명할 테니 한번 추진해 봐."

"그래. 저 친구 한번 밀어주자."

"머저리들 같으니. 지옥에 들어가는 순간 바닥에서 박박 길 것들이 큰소리치기는?"

그들의 낄낄거리는 소리를 듣다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새벽이 오고 있었다. 그들은 그제야 잠을 청하는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나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붉은 망토를 걸친 영이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무엇을 염탐하려고 이곳을 기웃거리고 있는 건가?"

"염탐이라니, 당치도 않네. 하늘정원에서 불빛과 소리를 따라 왔을 뿐이네."

"이들이 누군지는 알고 이러는 건가? 이들은 내일이면 지옥으로 끌려갈 영들이지. 내가 누군지 아는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을 인솔할 임무를 맡은 지옥의 사자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붉은 망토는 악마가 분명하다. 잘못 걸려들은 것같다. 음산한 기운이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붉은 망토를 걸친 악마가 넘겨짚듯이 말을 건넸다.

"그대는 영계에 있어서는 안 되는 자로군. 육신의 냄새가 고약하게 나는데, 어떻게 영계에 오게 된 거지?"

악마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를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악마에게 약점을 잡히면 끝장이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 진땀이 흐르고 있었다. 악마는 재미있다는 듯이 힐끔거리며 나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 때 창백한 얼굴을 한 아름다운 여인이 붉은 망토를 밀치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대가 모짜르트의 초대로 영계에 온 분인가요?"

"그렇습니다만."

"모짜르트에게 속지 마세요. 지긋지긋한 사람 같으니."

"누구시길래 모짜르트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가요?"

"들어서 아실텐데요. 저는 지상에 살 때 모짜르트의 아내였던 콘스탄체랍니다."

콘스탄체가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을까?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진다.

"모짜르트의 편지 속 12자리 숫자는 더 이상 해석해주지 마세요."

"모짜르트가 그대에게 충실하지 못한 건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으로 인한 벌칙을 200년 동안 받았으니 별 문제가 없는 거 아닌가요?"

내가 왜 모짜르트를 변명하고 있는 건지, 아니 왜 변명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 편지 속의 숫자는 나를 그만큼 사랑해서가 아니었구요. 언니인 알로이지아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거였어요. 나도 감쪽같이 속았지 뭐에요."

콘스탄체의 하소연을 듣다보니 모짜르트가 나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다는 삼랑 을보륵의 말이 떠올랐다. 모짜르트는 알로이지아에 대한 첫사랑을 잊지 못하였으며 현실적인 대안으로 동생인 콘스탄체와 결혼을 하였다. 하지만 알로이지아와 남몰래 밀회를 즐겼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몰랐다. 콘스탄체도 영계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니 말이다.

코스탄체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어떤 부드러운 영이 나의 소매를 끌었다. 이 자는 또 누구인가? 의아해하는 나에게 부드러운 영이 말했다. 

"저는 영계에서 그대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천사입니다. 이제 그만 하늘 정원으로 돌아가시지요."

천사의 끌림으로 순식간에 하늘 정원 테라스에 도착했다. 삼랑 을보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고 모짜르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짜르트는 내가 다음에 만날 천계의 인물에 대해 설명할 준비를 마친 채 나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계속>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