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대첩의 영웅, 최진동 최운산 형제의 사진을 찾았다.

지난해 여름 한국외대 역사학과 반병률 교수가 1922년 1월 21일의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를 촬영한 동영상 시사회를 열었다. 그 대회는 여운형, 김규식을 비롯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주장하는 기회로 삼기 위해 국내외에서 대거 참석한 국제 행사였다. 이 대회에 당시 연해주와 북만주의 대표적 인물인 최진동, 최운산 두 분이 참석하셨다. 그러나 그동안 반 교수를 비롯한 학계는 최진동, 최운산 두 분이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참석자 명단에 두 분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대회 참석자들은 무기를 모두 맡겨 놓고 입장을 해야 했는데 최진동 장군이 입구에서 무기를 다 내놓지 않으려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지각했던 일 등 그 대회에서 있었던 에피소드까지 들려주었으나 후손의 증언만으로는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그 내용이 사료로 확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반병률 교수가 작년 여름 러시아에서 여러 자료를 추가로 입수했다. 거기에 최진동 장군의 접수증이 들어있었다. 최운산 장군의 이름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언젠가 또 다른 사료가 나타나리라 기대해야 했다.

▲ 1922년 모스크바 극동민독대회 동영상에 확인한 최운산장군(가운데) 왼쪽이 여운형 선생, 오른쪽 인물은 미확인.

그런데 모스크바의 사진·영상물 보관소에서 당시 동영상이 발견되었다. 영상을 국내로 들여온 반 교수는 최진동, 최운산 두 분을 찾아보라며 나와 동생을 시사회에 초대 했다. 시사회장은 한국외국어대학교 건물에 있는 한 강당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사회장에 들어가니 학계뿐 아니라 독립운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귀한 영상을 본다는 설렘을 안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1922년에 촬영한 동영상의 상태는 아주 양호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 독립운동가들의 모습도 몇 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생전에 최진동, 최운산 두 분의 모습을 뵌 적이 없었다. 두 분 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사진도 남아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움직이는 흑백 필름 속 수백 명의 참석자들 속에서 할아버지들의 얼굴을 구별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영상을 살펴보다가 어느 순간 가슴이 쿵! 하는 한 분을 발견했다. 동영상에 아주 잠깐 등장하는 독립운동가 한 분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과 너무 닮아보였던 것이다. 바로 확인할 수 없었던 나는 그 영상을 다시 보면서 휴대폰으로 화면을 찍어두었다.

▲ 최운산 장군과 아들 최봉우

집에 돌아와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아버지가 30대 후반에 찍은 사진을 찾아 그 분의 얼굴과 비교해보았다. 같은 연령대의 부자지간 사진을 붙여놓자 두 사람이 정말 닮아보였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사진을 보고 같은 생각으로 감탄하게 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검증이 필요했다. 최운산 장군의 막내아들인 삼촌이 아직 살아계시니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위해 늘 집을 떠나계셨던 아버지, 여섯 살에 부모와 헤어진 삼촌은 젊은 아버지의 얼굴을 낯설어 했다. 그런 것 같다는 대답으로는 부족했다. 다시 사진을 화와이의 당고모한테 보냈다. 12살에 서울로 내려온 당고모는 삼촌의 얼굴을 알아보셨다. 얼마나 기뻤는지!

반병률 교수가 러시아에서 찾은 사진 중에 홍범도 장군과 최진동 장군이 1922년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해 레닌으로부터 권총과 모자, 군복을 선물 받고 기념 촬영한 사진이 있었다. 이 사진은 이미 오래 전 공개된 사진었다. 그런데 홍범도 장군의 사진만 알려지고 같이 찍은 인물이 최진동 장군이란 걸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나도 전에 이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사진을 다시 보면서 문득 오른쪽 인물이 최진동 장군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최진동 장군은 눈이 부리부리하셨다는데 사진 속 인물은 눈이 그리 커 보이지 않아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야외에서 촬영한 옛날 사진이란 걸 감안했다. 최진동 장군 사진은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 레닌이 선물한 군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권총을 앞에 걸고 기념촬영한 최진동 장군과 홍범도 장군

나는 이 사진의 인물과 선글라스 낀 얼굴을 비교해보기 시작했다. 최진동 장군도 이 대회에 참석했고 레닌을 만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최진동 장군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진을 확대해서 비교해 볼수록 두 인물이 한 사람일 거라는 확신이 커져갔다. 나는 사진 속의 인물이 아버지가 맞는지 확인해달라는 말과 함께 최진동 장군의 딸인 당고모에게 사진을 보냈다. 그러나 며칠 동안 답이 없었다. 궁금했지만 사진 속 인물이 최진동 장군이 아니라 답을 안 보낸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며칠이 더 흐른 후 카톡으로 짧은 답이 왔다. “내 아버지 최진동” 깜짝 놀랄 일이었다. 평소였으면 당장 전화로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을 텐데 간단하게 문자만 왔다.

얼마 후 당고모와 통화를 하고서야 왜 그렇게 시간이 걸렸는지 궁금증이 풀렸다. 고모는 어릴 때 살았던 도문시 집에 그 사진이 걸려있었다고 했다. 최진동 장군이 모스크바에서 레닌에게 받아온 기념사진이었다. 외조부모를 따라 서울로 내려올 때 어린 딸은 미처 아버지 사진을 챙겨오지 못 했다. 아버지 생각이 날 때마다 그 사진을 두고 온 것이 후회되어 가슴을 쳤다. 그런데 그 사진을 75년 만에 다시 보다니! 당고모는 너무 떨리고 흥분되어 말을 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며칠을 울면서 보내고야 정신을 차리고 나한테 답을 보낸 것이다.

나는 반병률 교수한테 그 사진의 오른쪽 인물이 최진동 장군이라는 사실과 당고모에게 확인한 내용을 전했다. 처음엔 반신반의 하던 반 교수도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레닌에게 선물 받은 군복과 모자를 착용했고, 선물 받은 권총이 잘 보이도록 일부러 앞으로 둘러맨 모습이란 걸 다시 확인하고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이 사진이 당시 최진동 장군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최운산, 최진동 두 분의 얼굴을 모두 확인하게 되었다. 간절하게 원하면 하늘이 문을 열어주신다더니 내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봉오동전투 100주년을 앞두고 두 분이 내게로 다가왔다. 마치 운명처럼.

 

최성주 객원편집위원  immacole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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