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난 행복 육아 6

“진통이 약한데요? 오늘 안에 안 나올 것 같아요.”

태아 감시 장치의 그래프를 본 간호사가 말했다. 집에서 진통 간격을 체크하고 최대한 천천히 온 것이었는데, 아직도 아기는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었을까. 나는 하는 수 없이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러자 간호사는 잠시 눈썹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산모가 이미 예정일을 8일이나 지나서 유도분만 하셔야 할 거에요.”

순간 목구멍으로 찬 냉기가 가슴까지 타고 내려왔다. 나는 떨렸지만 애써 용기를 내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유도분만을 하지 않을 거예요. 촉진제도, 무통주사도 맞지 않을게요.”

나는 출산의 주체로서 그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 간호사는 당혹스런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일단 담당의사와 상의한 후 결정하라며 끝에는 그래도 유도분만을 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쿵.. 쿵.. 쿵…

출산하기까지 나의 심장이 가장 크게 요동쳤던 시간이었다. 담당의사가 와서 진단을 내리기 전까지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는지, 그리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하나님, 제발 진통이 세지게 해주세요. 그래서 오늘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을 수 있게 해주세요.’

세상 어떤 여자가 진통이 세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할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간절했다. 가장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출산을 꿈꾸고 있었고, 진통이 세진다 해도 잘 감내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30여분이 지났을까. 담당의사가 얼굴을 드러냈다. 간호사가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담당의사는 걱정스런 얼굴로 내진을 시작했다.

“어? ○○○가 열렸는데?”

담당의사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의학용어로 간호사에게 말하고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기다려봅시다. 대신 약속 하나만 해줘요. 오늘 안에 안 나오면 내일은 유도분만 하는 걸로. 예정일을 많이 넘기면 태반의 기능이 떨어져서 출산하는 게 힘들 수 있어요. 알겠죠?”

나는 담당의사와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으니 안도했고, 왠지 직감적으로 오늘 아기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는 촉진제 대신 영양제 링거를 꽂아주면서 끝까지 자신이 옳은 판단을 했음을 확인시키듯 말했다.

“제 말이 맞죠? 오늘 안 나오면 유도분만 해야 한다죠?”

간호사들은 내가 일반 산모들과 다른 행보를 하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아 보였다.

 

임신한 여인은 아름다운 꽃나무와 같다. 하지만 추수할 때가 되면 나무를 흔들거나 상처내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게 하면 나무와 열매 모두를 상하게 하리라.
-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중

 

영롱하고 탐스런 열매를 맺기 위해 내리쬐는 햇볕과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듯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나는 병에 걸린 환자와 같이 침대에 누워있고 싶지 않았다.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에 나가 짐볼을 타며 몸을 이완시켰다. 파도가 치듯 진통의 물결이 일 때면, 심호흡을 깊게 하면서 흘려보냈다. 그러는 동안 내 곁엔 쭉 남편이 있었다. 나의 자연주의 출산을 위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함께 한 유일한 조력자였다.

나는 눈을 마주하고 진심으로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강력한 말 한마디로 자연주의 출산에 눈을 뜰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세상 아련한 눈빛으로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좀 아파도 돼’와 같이 표현하면 안 되는 거였다면서. 이제는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출산 중의 나는 외딴 곳에서 혼자 고통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남편, 그리고 뱃속 아기가 하나가 된 듯, 함께 기쁨을 나누고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렇게 짐볼을 타며 남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한 수간호사가 나를 찾아왔다. 소문 듣고 왔다면서. 이미 나는 병원에서 촉진제와 무통주사를 거부한 특이한 산모로 간호사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궁이 6cm가 열렸는데 괜찮으냐고 물으며 보통 이 정도로 진행이 되면 드러누워서 힘들어하기 마련인데 산모는 굉장히 평온해 보인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현재 6cm가 열렸으니 이대로 잘 진행이 된다면 오후 1시쯤 넘어 아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담당 의사를 만난 시각이 오전 8시 30분이었는데, 그로부터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아기를 만날 수 있겠다는 말을 들으니 소진된 에너지가 다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나의 결정을 반기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과, 꿈꾸고 그려온 황홀한 출산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들 속에서 흔들리지 않게 마음을 다잡는 일이, 진통을 견디는 일 못지않게 에너지를 쏟게 했다. 일찍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알게 되었더라면 일반 병원이 아닌 조산원이나 집에서의 출산을 계획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 상 병원에서 출산할 수 밖에 없었기에 그 현실이 나의 이상과 부딪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세 가지 일에 집중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는 일과 아기와 교감하는 일, 그리고 쉼 없이 기도하는 일.

두 번째 담당의사의 내진이 있었다. 자궁문은 많이 열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양수가 터지지 않는다면 인위적으로 양수를 터뜨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양수가 터져야 아이가 위에서 둥둥 떠 있지 않고 빨리 내려올 수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세상은 아기가 엄마의 자궁에서 나오려는 속도에 맞춰 느긋하게 기다려주지 않았다. 또 다시 심장이 쿵쿵대기 시작했다.

 

‘모든 자연 출산에는 나름대로의 목적과 방법이 있다. 어느 누가 나비가 나오도록 번데기를 미리 찢으며, 병아리를 빼기 위해 달걀 껍데기를 부수겠는가?’
-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중

 

미안하지만 재촉하듯, 끊임없이 아기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가야. 조금만 더 힘내서 내려오렴. 잘하고 있어. 엄마가 품에 안아줄게.’

뭐랄까. 출산이 진행되는 내내 아기와 교감하면서 동지애(?) 비슷한 감정이 생겼던 것 같다. 아기는 엄마의 말에 응답하듯 조금씩 세상을 향한 문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오후 1시가 가까워오자 점점 잦은 빈도로 센 진통이 물밀듯 밀려왔다. 간호사는 내게 힘주기 연습을 시키며 마지막까지 내가 유별난 산모인 것을 확인시키듯 말했다.

“아무도 이렇게 기다리지 않아요. 촉진제도 맞지 않고.”

그 말은 결코 나를 격려하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봐라. 촉진제도, 무통주사도 없이 우린 잘해내고 있으니까!’

출산 막바지가 되어 분만실로 자리를 옮겼다. 침대에 누워 진통을 견디고 있을 때 간호사가 마지막 내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곧 자궁에서 뜨거운 물이 흘러내렸고, 간호사가 자연적으로 양수가 터졌다고 소리치며 곧 아기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인위적으로 양수를 터트리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하지만 찰나의 타이밍으로 양수가 저절로 터진 것이다. 감사하게도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아기에게 고맙다고, 그리고 잘하고 있다고 속삭이며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따뜻한 엄마의 바다 속에서 망설이던 아가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세상을 향한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세차게 치기 시작한 진통의 파도에 밀려 나는 그만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극에 달하는 진통에 당황한 나는 순간 몸을 긴장시켰고, 잠깐이었지만 그로 인한 고통에 힘겨웠다. 분만실 안은 아기를 받을 준비로 분주했다. 담당의사가 수고 많았다는 말을 하며 분만대 앞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제 곧 새 생명이 탄생하는 환희의 축제가 시작될 참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있는 힘을 다해 힘을 주었다. 한 번의 힘주기가 지나고 또 한 번의 힘주기가 지났다. 그리고 세 번째 힘주기 끝에 미끄덩하고 무언가 빠져나가며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내 귀에 선명하게 울리는 한 아기의 울음소리. 그것은 바로 나의 아기, 나의 딸의 목소리였다.

그 순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환희’라는 감정의 단어가 내 생애 처음으로 쓰인 순간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딸에게 말했던 약속, 세상에 나오면 꼬옥 안아주겠다던 그 약속을 이루며 내 가슴 위에 올려진 딸의 따뜻한 체온을 조심스럽게 느껴보았다. 딸을 안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여자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품에 안은 나의 딸과 앞으로 함께 할 수많은 여정들 속에서, 어떤 험난한 산을 만난다 해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으로 충만해졌다.

 

▲ 1월 하순에 벌써 고개를 내민 목련 봉우리

 

봄바람에 봉긋 모습을 드러낸 작은 목련 봉우리 같던 나의 딸이 자라난다. 해가 지고 해가 뜨는 속도보다 한 발 앞서 가는 듯,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 한 겹… 두 겹… 찬찬히 더 바라보고 싶은 엄마의 마음처럼, 그렇게 아이는 발 맞춰 자라 주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쉽다. 9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딸아이를 키우며 자주 그때가 떠올랐다. 밤 중 수유에 수시로 깨서 아이를 안을 때도, 막 잠에서 깬 부스스한 얼굴로 나를 향해 방긋 웃는 아이를 볼 때도, 세상이 신기해 이리저리 바쁘게 눈동자를 움직이는 딸의 모습을 볼 때도… 흐릿하지만 찬란한 그 순간이 되살아나 내 가슴을 두드린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하고 귀한 선물로 내게 찾아 온 딸에게, 나도 선물을 하고 싶었다. 엄마로서 딸에게 처음으로 주고 싶었던 선물은 바로 ‘황홀한 출산’이었다.

‘내가 너를 낳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니? 너도 훗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행복하고 황홀하게 아기를 낳을 수 있을 거야. 출산은 여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란다.’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출산 전, 예정일을 넘기고도 나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며 직접 만들어 불러줬던 노래 가사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다함, 세상의 소금>

 

아이야 넌
깊은 바닷속
포근한 물결에 온 몸을 맡기고

 

흔들 흔들
내쉬는 숨결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반짝이네

 

이제는 한 줄기 빛을 봐
널 향해 열린 저 문으로

 

이리와 안아줄게
따뜻하게

 

내 볼과 너의 볼이 맞닿으면
편안해질거야

 

널 위해 기도하는 내가 있어
작지만 넌 결코 약하지 않아
주의 뜻 이뤄 갈
세상의 소금

 

▲ 세상의 소금과 같이 살아가라는 의미의 이름. 다함

 

참고문헌 :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메리 몽간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정은진 주주통신원  juj05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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