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초부터 지금까지 본교에서는 증축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교재원은 건축 기자재를 쌓아 두는 곳으로 전락하고, 보기 좋은 수목도 운동장 귀퉁이로 옮겨심는가 하면, 본관 서쪽에 있던 화단 1개소는 아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본교 남쪽 담장 밖에서는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가 한창인데 그로 인해 본교의 테니스장은 1/4면이 축소되고 남서쪽에 있던 ‘송화의 작은 동산’은 형해마저 불분명한 채 소나무 한 그루가 겨우 명맥을 유지한다고나 할까?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운동장 부지가 줄어들지 모릅니다.(중략)”

이상은 필자가 서울송화초교에 재직하던 2004년 9월, 교육청에 제출한 ‘녹화사업계획서’ 중 일부분이다.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체육관을 짓는다고 운동장이 잘리고,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고 교재원을 없애고 통학로를 확보한다고 화단을 깎아 내다보니 학교의 녹지공간은 무장무장 좁아졌다. 개교 당시 심어졌을 서양측백, 왕벚나무, 칠엽수, 회화나무가 밑동까지 잘렸다. 살아남은 것들도 생장점은 물론 온몸을 난도질하니 쥐 뜯어먹은 자리도 아니고 이게 뭔가. 꽁지 빠진 수탉처럼 흉물스럽다.

 

어디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필요에 따라 없앤다니 어쩔 수 없다 하자. 그러나 은행나무를 죄다 죽여 가면서까지 능소화를 사방팔방 가꿀 이유가 있을까(용산구 관내 Y초)? 아니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놀이터요 어른들의 쉼터로 기능하던 정문 옆의 미루나무를 어느 날 갑자기 없애버려도 좋은가(은평구 관내 S1초)? 서울의 교정에 단 한 그루 존재하던 아름드리 주엽나무! 30년쯤 되어야 꽈배기처럼 비틀어진 콩꼬투리 모양의 열매가 달린다. 열매가 달리면 굵은 줄기에 큼지막한 가시가 생겨 열매를 보호하는 귀한 나무다. 이를 두고 가시가 많아 위험하다고 베어버린 경우는 또 뭔가(은평구 관내 S2초)? 수십 년 동안 등하굣길의 아이들과 교직원을 바라보며 나름 한껏 자긍심을 갖고 오롯이 제자리를 지키던 그 아름드리나무들이, 단 한 사람의 모질이에 의해 흔적 없이 사라져도 암말 없는 세상이다. 차라리 부장회의나 학운위라는 다중처리방식이라면 모를까. 무지한 교장의 만용이다. 여기에 교육청의 무관심도 한몫 한다.

▲ 재질, 크기, 모양, 형식이 서로 다른 수목 푯말들(서울Y1초, 2017)

과문한 탓일까. 학교시설설비기준 어딜 봐도 일반교과교실이나 특별교과실, 관리용 각실, 교원편의실, 기타시설, 권장시설 등 공간 확보 기준뿐이다. 유감스럽게도 학교의 비치 장부에 수목대장은 없다. 교장은 학교에 어떤 나무가 몇 그루 있는지 알지 못하고, 교육장은 학교에 어떤 나무를 몇 그루 심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학교에서 어떤 나무가 몇 그루 사라져도 관심 밖이다. 하물며 교육과정에 나오는 들풀이나 나무를 들여다보는 일은 허드렛일 축에도 끼지 못한다. 내키지 않는다고 주무관한테 낫질을 당하고 교장 한 마디에 톱질을 당하기 일쑤다. 수종도 다양할 리 없지만 이렇듯 학교의 풀과 나무는 헌옷때기 버려지듯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나무마다 달려 있는 푯말 또한 재질•크기•모양이 사뭇 다르다. 손팻말을 포함하여 서너 가지나 된다. 필시 교장이 바뀔 때마다 업자를 달리해서 제작한 것이리라. 개비자를 주목, 만첩백도를 개복숭아, 낙우송을 메타세쿼이아, 백당나무를 불두화, 산철쭉을 철쭉으로 이름마저 틀린 푯말은 수두룩하다.

 

교정을 누비는 생태교란종

꽃밭 가장자리에 심어놓은 회양목은 군데군데 고사하고 살구나무•감나무•백목련•소나무•스트로브잣나무 등 키 큰 교목이 건물 4층 높이까지 자라고 있다. 일제 청산의 상징인 가이즈까향나무 엳아홉 그루가 무슨 호위병마냥 본관 정면에 떡 버티고 있다. 인접한 모과나무•꽃사과•감나무 열매는 여름이 가기도 전에 낙과가 되고 알록달록한 점들이 드러난 이파리는 어딘가 병색이 짙어 보인다.

▲ 교사 뒤쪽 언덕을 점령한 서양등골나물(서울S초, 2018)

손가위를 든 주무관이 회양목을 비롯하여 쥐똥나무•산철쭉•무궁화•주목 등을 일없이 자르고 있다. 심지어 원추리와 실유카까지 가위질을 서슴지 않는다. 심어 가꾸지 않은 사철나무•무궁화•가시오갈피•오동나무•구기자•상수리나무가 군데군데 자리를 잡으니 정신사납기 한량없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나팔꽃•메꽃•유홍초•개망초•달개비•서양민들레•뽀리뱅이•주름조개풀 등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자라고 있다. 한편 온 천지를 누비고 다니는 생태교란종이 교정이라고 피해갈 리는 없다. 서양등골나물, 환삼덩굴, 미국쑥부쟁이, 돼지풀, 가시상치 등이 교정 곳곳에서 위세를 부리고 있다. 생리를 알지 못하는 교장은 꽃이 예쁘다면서 왜 제거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꽃이라도 본 뒤에 제거해 달라고 발을 동동 구른다.

 

물도 없는 생태연못에는 뭍풀만 자라고

모자를 쓴 주무관이 마스크를 하고 약통을 메고 나온다. 보도블록을 따라 일없이 뿌연 약물을 뿌린다. 틈새마다 고개 내민 키 작은 아이들이다. 개미자리•마디풀•비단풀•질경이•점나도나물•별꽃 등을 없애기 위해 약을 치고 있는 것이다. 심어 가꾸지 않은 건 볼썽사나운가? 그래서 사라져도 좋은 존재인가? 백번 양보하더라도 굳이 그 독한 제초제를 뿌려서 깡그리 죽여야 한다? 아닐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교장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교정을 가꾸는 주무관이 대견하다면서 어깨를 다독인다.

교재원을 둘러본다. 분양(?)을 받은 학급마다 상추•쑥갓•치커리•고추•가지•방울토마토 등을 심었다. 제법 가지런하다. 종다양성을 말하기엔 너무 알량한가? 아무리 둘러봐도 대여섯 종이 전부다. 심고 나서 몇 번이나 둘러보았을까? 지속적인 물주기•유인•지지•순지르기•추비•천연방제가 생명인데 제때 따주지 않은 상추, 치커리, 쑥갓은 꽃대궁이 한 자나 솟고 고추와 방울토마토는 원순과 곁순을 구별하기 어렵게 치렁치렁 얽힌 채 휘늘어졌다. 화단이나 교재원이나 숫제 방치하긴 마찬가지다.

생태연못이라고 이름 붙여진 작은 연못에는 방아틀 없는 가짜 물레방아가 보인다. 그나마 물렛살이 두 개나 부러지고 움직이지 않는다. 말라 죽은 부레옥잠과 생이가래가 바람에 나뒹굴고 제멋대로 자란 강아지풀과 명아주 따위가 물 없는 연못을 덮고 있다. 족히 2~3억 원을 들여서 만든 옥상정원은 물론 최근에 조성한 에코스쿨 또한 고사목이 즐비하고 날아든 풀씨와 심어놓은 화초가 얽히고설킨 채 방치되어 있다.

 

죽음으로 항거한 등나무

학교를 예쁘게 꾸며보겠다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교문을 지나 10여 미터쯤 갔을까? 등나무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첫눈에 수령이 줄잡아 70~80 년은 돼 보인다. 그런데 얼마나 허기졌을까? 나중에 생각해 보니 폐교를 예단하고 스스로 식음을 전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간 그 이듬해 2월에 폐교했으니 말이다. 1966년 개교 이래 52년째 등꽃을 피우며 교정을 맑힌 산증인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비록 가죽만 남았지만 위엄이 있고 옹골지다. 십오륙 미터나 뻗은 수백 개의 가지에서는 아직도 녹색이파리가 제법이다. 그런데 내가 엉뚱한가? 자꾸만 케빈 카터(Kevin Carter)의 퓰리처 수상작, ‘수단의 굶주린 소녀’가 떠오른다. 아, 어쩌다가 등껍질만 남았을까? 물 한 방울 받아먹지 못하다가 막상 내가 준 물 한 방울 삼키질 못하는가? 움도 틔우지 못한 가지들이 얼기설기 뒤엉켜 있고, 물관 혈관 다 막혔다. 말라붙은 속살 틈새로 갈비뼈가 앙상하다. 셀 수 없는 피딱지와 거무튀튀한 옹이가 난무하고 개미들만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 가죽만 남은 등나무(Y초등학교, 2017)

몇 개의 사례를 제외하면 특정 학교를 묘사한 것은 아니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수목•화초•들풀•작물•채소 등을 관리하는 전문가는커녕 담당하는 직원도 없다. 그나마 예전에는 별다른 주문이 없어도 이를 담당하던 이들이 있었다. 이른바 청부 - 나중에 급사, 기사, 주무관으로 명칭이 바뀜 – 들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제는 누가 스스로 하지 않는 한 채소나 작물을 기르는 일을 기대하긴 어렵다. 한번은 교장이 주무관에게 낙엽을 쓸자고 했다. 자기는 엄연히 ‘할 일’이 있는데 왜 그런 일을 시키느냐면서 역정을 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릴 듣는 교장은 가히 환장할 노릇인가 보다. 죽이 맞은 교감 입에서는 절로 ‘라떼는 말이야’가 튀어나온다. 마침 그 주무관의 아버지가 그 학교의 보안관이다. 교장은 엉뚱한데다가 화풀이를 해댔다.

“아니 김 선생,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러기에 말입니다. 그 새끼가 대체 누구 말도 듣질 않으니 참...”

교장도 아비도 어쩌질 못한다. 인부를 사서 할 형편도 아니다. 자연보호나 환경정화, 또는 봉사활동을 내세워 아이들을 동원하려니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결국 학교장의 말은 넋두리가 되고 학교 교정은 계절에 따라 풀더미와 낙엽으로 뒤덮이고 만다.

▲ 낙엽은 땅심을 돋우는 영양 공급원이다. 자연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서울M초교, 2019)

 

교재원과 교정은 누가 담당하는가

학교 텃밭만 하더라도 밭 디자인부터 밭 만들기, 작물의 구성 내용, 퇴비 만들기, 토양 만들기, 멀칭, 모종내기, 병해충 방제, 김매기, 지지대세우기, 순지르기, 물주기, 수확 및 채종하기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일손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적절한 식재종의 선택과 식물관리 매뉴얼, 원예 치유 등 연계 활동까지 확장할 경우 교재원은 물론 학교 교정을 아무나 맡을 수는 없다. 게다가 보통 부지런한 이가 아니라면 감당을 못한다. 그런데 학교마다 담당자도 없다. 이런 현실을 과연 교육청이나 서울시에서 모르고 있는 걸까? 추진하는 '학교숲'이나 '에코스쿨'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에 불과하다. 생태감수성이니 자연친화적 녹색교육이니 맑은 쉼터니 하는 말들이 한없이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내가 찾은 학교의 교재원은 체육관과 담장 사이 기다랗다.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니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곳이다. 지줏대를 감은 채 말라죽은 오이와 토마토가 보인다. 필시 지난여름 이후 방치한 거다. 목질화된 고춧대와 가짓대가 그대로 서 있다. 여물지 못한 다래가 그대로 말라붙은 목화도 눈에 띈다. 모퉁이 돌아서니 시든 소국이 화분째 쌓여 있고, 행인들이 버린 온갖 쓰레기가 나뒹군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텅 빈 교재원은 이래저래 을씨년스럽다.

낼모레가 입춘이다. 입춘에 오줌독 깨진다더니만 어찌된 일인지 날마다 봄날이다. 방학 기간, 신종 코로나 탓에 이즈음의 학교는 인적이 드물다. 제대로 된 교재원이라면 볏짚과 낙엽과 톱밥 따위로 이랑을 덮고 마늘•양파•밀•보리•대파•시금치 등이 파릇파릇 올라와야 한다. 누군가는 땅심을 높이기 위해 친환경퇴비장을 만들고 유기질비료를 준비해야 한다. 기온이 떨어지면 수목은 생리기능이 저하되고 휴면기에 접어드니 굵은 가지 등을 강전정해야 한다. 한편 과일나무에 밑거름을 주는 것이 좋다. 물론 강전정을 할 경우에는 시비를 적게 해야 한다. 더 많은 도장지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휴지기를 허용하지 않는 교정이다.

(계속)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박춘근 주주통신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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