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실험실에 새 식구가 등장했다. 이름은 오스카(Oscar), 직책은 ‘Bio-informatician (바이오인포마티션)’, 컴퓨터 프로그래머다. ‘Bio-informatician’은 생소한 직종이다. 생물 분야에서 데이터 생산이 대량 일어나면서 생겼다. 이 직종은 특정 분석 툴, 통계 그리고 코딩을 이용하여 데이터를 다양하게 분석한다. 생물학자는 이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바이오인포마티션과 상담을 하면서 또 다른 분석방법을 찾기도 하고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나가기도 한다. 때문에 ‘Bio-informatician’은 생물학 연구에서 필수 직종이다.

오스카는 멕시코에서 태어나 자랐다. 미국 Texas에 있는 유명 연구기관인 MD Anderson에서 박사후과정을 했다. 박사후과정 중 같은 기관에서 비슷한 분야를 전공하는 중국 여학생과 사랑에 빠져 약혼했다. 중국 여학생은 중국정부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었다. 중국정부는 장학금을 주는 대신 조건을 하나 달았다. 졸업 즉시 중국으로 돌아와 정부기관에서 2년 동안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약혼녀는 중국으로 돌아갔다.

오스카는 둘의 미래를 위해 미국 영주권 취득을 알아보았다. 인색한 이민정책을 펴는 트럼프 정권에서는 영주권 취득이 어렵단 걸 알게 되었다. 반면에 캐나다 총리 저스틴 트뤼도는 이민자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펴고 있었다. 특히 전문 인력에겐 영주권을 쉽게 주었다. 이런 연유로 오스카는 캐나다 이민을 결심했고, 3개월 만에 캐나다 영주권을 받았다. 공동연구를 통해 오스카를 알고 있던 보스 스테판은 그의 영주권 취득 소식을 듣고 바로 인터뷰를 신청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 부끄러워하며 실험실에 들어오던 오스카 모습이 생생하다. 인터뷰가 끝나기도 전에 스테판은 오스카에게 당장 같이 일할 것을 제안했고, 그는 흔쾌히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스카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 상위 1%라 할 만큼 독특한 존재다. 멕시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검은 콧수염, 짙은 눈썹의 까무잡잡한 얼굴을 상상했다. 이와 반대로 그는 얼굴이 하얗다 못해 뱀파이어처럼 창백하고, 머리칼과 눈썹 색도 엷은 갈색이다. 자세는 눈에 띄게 꼿꼿했으며, 1970년대에 많이 입었을 색 바랜 펑퍼짐한 청바지에 칼라티를 청바지 안에 꼼꼼히 넣고 다녔다. 나와 나이가 비슷하지만, 내 또래 남자에게선 볼 수 없는 패션이었다.

처음 인사를 나눌 때가 생각난다.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어색함에 쩔쩔맸다. 다 같이 밥을 먹을 때도 상대방 얼굴을 잘 쳐다보지 못하고 애꿎은 식탁에 시선을 고정하고 우리가 묻는 질문에만 답했다. 그랬다. 그는 엄청나게 내향적인 전형적인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시간이 지나도 커피타임엔 거의 참석치 않았다. 처음엔 우리 여성 동료들과 점심을 같이 먹었지만 일주일 지나자 점심시간에 혼자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왔다. 우리가 불편한 것 같았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오스카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는 실험실에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나와 함께 광범위한 데이터 분석에 착수했다. 처음엔 내 연구목적이나 방향성을 이해하기 위해 내 도움이 필요했지만, 연구목적을 이해한 오스카는 본격적으로 컴퓨터 코드를 이용하며 데이터 분석을 진행했다. 분석 방법 중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친절하고, 알기 쉽게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일상생활에선 말이 없고 부끄러움이 많지만, 본인이 하는 일을 설명할 때면 눈을 반짝이며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컴퓨터 분석에도 매우 빠르게 처리했다. 다른 Bioinformatician이 일주일 걸려 분석할 것을 하루 만에 분석하여 실험실 전원을 놀라게 했다. 이 덕에 내 프로젝트는 하루가 다르게 쭉쭉 진행되었고, 내 프로젝트 외에도 프로젝트 3개를 더 맡아 마치 요리하듯 풀어나갔다. 프로젝트가 많아 매일 늦게까지 남아있는 오스카를 보고 짠한 마음이 들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면, 수줍게 웃으며 힘들지 않으며 많은 걸 배우고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어 감사하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스카는 알면 알수록 마치 세상에 갓 태어난 사람처럼 순수했다. 나이가 들면 흔히 보이는 얍삽함, 거만함, 무례함 그리고 이기적인 면들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깍듯이 예의를 갖추었고, 누가 어떤 아이디어를 말해도 무조건 “Oh, that’s good”이라며 항상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존중을 표했다. 내가 분석을 빠르게 해줘서 고맙다고 얘기하면 오히려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해줘서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이런 청정산소 같은 순수함 때문에 그는 실험실 전원의 마음을 녹였고 모두가 오스카를 챙겨주고 따듯하게 대해주었다.

신년이 되면서 오스카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중국에 있는 약혼녀가 몬트리올에 2주 동안 놀러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건이 터지면서 대중교통 그리고 비행기는 더더욱 자제해야 한다는 약혼녀 부모님과 중국 정부의 의견에 여행을 포기하게 되었다. 약혼자와 1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는 오스카는 풀이 죽어 평소에 보이던 긍정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한번은 화요일 랩미팅에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늦게 출근한 적이 없고, 미팅에 늦은 적이 없어 다들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했다. 랩미팅이 끝나고 오스카에게 가보니 그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랩미팅 날짜를 착각했다고 미안해했다.

그날 얼이 빠져 있는 오스카가 안쓰러워 실험을 끝내고 오후 늦게 그를 찾아갔다.

“오스카, 괜찮아? 약혼녀가 못 와서 많이 속상하지?”

“응.. 맞아.. 조금 슬프네. 그래서 그런지 정신이 없었나봐. 랩미팅도 잊고.. 발표자한테 너무나 미안해. 내가 정신을 차려야겠어.”

“괜찮아. 발표자한테 아까 미안하다고 했잖아. 우린 네가 갑자기 안 와서 무슨 일 있나 걱정했어. 아무 일 아닌 게 다행이지”

“그런가.. 그럼 다행이다. 그래도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게 용납되지 않아. 그런 일이 진짜 없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까 갑자기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네.”

“우리 초등학교에 정말로 인기 좋은 선생님이 계셨어. 모르는 것이 없고, 친절하고, 수업도 잘 진행하셨지. 모두 다 천재라고 말했고 존경했어. 근데 이 선생님이 어느 날 그러시는 거야. ‘난 너희가 나를 천재라고 생각하거나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애들이 합창으로 ‘왜요’라고 물었지. 선생님이 웃으시면서 그러시더라고, ‘너희들이 나를 천재로 생각하면 내가 하나만 실수해도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고 그리고 나를 다시 평가 하게 될 거야’라고. “

나는 이 이야기가 왜 생각이 났냐며 되물었다.

“왜냐하면 우리 실험실에선 다들 내가 천재라고 하는데.. 나는 사실 그게 너무나 두려워. 나는 내 일이 좋은 거고 내 일을 천재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 주위에서 다들 나를 특별하게 천재라고 얘기할 때 엄청나게 부담이 돼. 왠지 실수하지 말아야 할 거 같고, 완벽하게 해야 될 거 같거든. 이번에 랩미팅에 늦었을 때 사람들이 나에 대해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걱정했어..”

오스카가 이렇게 얘기했을 때 너무나 놀랐다. 나도 종종 그에게

“아! 넌 너무 똑똑해! 어떻게 그렇게 일을 빨리 하고 정확히 판단할 수 있어?”

라고 얘기했는데 그런 말들이 그에게 부담이 된지 몰랐기 때문이다.

“오스카, 네가 그렇게 부담을 느끼는지 몰랐어. 우리 실험실 인원 모두 너와 일하는 분야가 다르다 보니까 네가 코딩을 하고 분석하는 것을 보면 마치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서 천재라고 말한 것 같아. 그 말에 너무 부담 갖지 마. 다들 너를 신뢰하고 좋아해서 하는 말인 걸. 실수는 우리 실험실원 모두 밥 먹듯 하잖아? 하지만 누구도 서로를 평가하지 않아. 실수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한 단계로 생각하거든. 네가 오히려 너무 완벽해서 로봇인줄 알았는데 시간을 착각한 걸 보고 너도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오히려 정겹던데?“

라고 웃으며 위로하였다. 오스카 얼굴이 한결 밝아지며 말을 이었다.

“맞아. 그래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다행이다. 내 약혼녀가 못 올 거라 생각지도 못했는데 못 온다니까 정신이 없고 조금 생각이 많아진 거 같아.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비행기를 타지 않은 게 잘 한 거 같아.”

“그래 맞아. 아쉽지만 나중에 또 놀러 오면 되는 거고, 아니면 네가 놀러가도 되는 거고!”

그가 갑자기 다짐하는 듯 표정을 지으며 얘기를 꺼내었다

“응응. 맞아. 이제 조금 있으면 캐나다에 와서 완전히 같이 살 수 있거든. 그때 같이 살 곳을 모색해 보려고. “

“아 그래? 너무나 잘됐다. 약혼녀도 몬트리올에서 일하는 것을 알아보는 거야?”

“음.. 너도 알다시피 박사후과정은 임시직종이고 자주 여기저기 옮겨야 하잖아. 몬트리올 말고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아. 내 약혼녀에게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 대해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오히려 한곳에 있으면 지루하니까 옮겨 다니는 게 좋다며 적극 지지해주었어. “

“아.. 그랬구나. 약혼녀도 너도 너무나 멋있다! 보통 사람들은 한곳에 정착하고 안정적인 걸 좋아하는데, 약혼녀는 모험심이 강하고 너를 응원해 주네! 너도 계속해서 도전하기를 망설이지 않고... 너무 보기 좋다”

“응, 맞아. 이솝우화에서 개를 부러워한 늑대 이야기 알아?”

내가 모른다고 얘기했더니 그는 우화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밝은 달이 둥실 떠오른 깜깜한 밤, 먹이를 구하러 온 늑대와 산책 중인 개가 만났다. 늑대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비쩍 말랐고, 개는 통통하게 살찐데다 털에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늑대 : 나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해 이렇게 말랐는데 너는 어디서 뭘 먹고 사니?

개 : 나는 먹이를 찾아다니지 않아. 아늑한 집에서 먹이를 주는 주인님이 있으니까. 나는 집에 살면서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집을 지킨단다.

개의 말에 늑대는 개가 부러워서 말했다.

늑대 : 그래? 그렇다면 나도 네 주인님께 데려가 줘. 도둑쯤은 거뜬하게 막을 수 있어.

개 : 내가 주인님께 잘 말해 볼게. 같이 가자.

둘이 주인집으로 가던 중, 늑대가 개 목에 생긴 상처를 보게 되었다.

늑대 : 네 목에 상처는 왜 생긴 거야?

개 : 목줄을 차서 생긴 상처야,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하니까 주인님은 낮에 내 목에 목줄을 채워.

그러자 늑대가 돌아서며 하는 말.

늑대 : 나는 그냥 산으로 돌아갈 거야, 비록 춥고 배고프고 찬비를 맞으면서 자더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지금 이대로가 더 좋아.

이야기를 들은 나는 한동안 멍해졌다. 우화라 별생각 없이 들었는데 너무나 깊은 뜻이 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캐나다에서 박사과정을 하기로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 당시 갖고 있던 편안하고 따듯한 삶을 포기하기 싫어서였다. 하지만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직장을 매일 다니는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 답은 분명했다. 캐나다에 가서 모험을 해보자는 거였다.

오스카에게 우화 속 늑대가 마치 내 모습 같다며, 현재 나는 가난한 학생 즉 배고픈 늑대지만 자유로워 행복하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본인도 현재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며, 앞으로 더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다양한 기관에서 일하고 싶다 했다.

▲ 호랑이 보스 스테판 교수님(왼쪽에서 두번째)께서 Oscar(오른쪽에서 첫번째)를 위로해주기 위해 한턱 쏘셨다. 스테판 교수님은 알고 보면 따듯한 마음씨를 가진 보스다.

이야기를 나눈 후 오스카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보였다. 아무리 내향적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해도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고 누구에게 위로받고 싶을 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나는 종종 그를 찾아가 아무 말이나 던지곤 한다. 그는 말이 없기에 주로 내가 말을 많이 하지만, 나의 헛소리에 웃으며 반응하는 걸 보면서, 잠시 사람들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느낌이 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스카처럼 순수하고 열정적인 보석을 품지 못한 미국이 참으로 어리석다 싶다. 캐나다는 이런 인재를 알아보고 바로 받아주었다. 캐나다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된다.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서 오스카가 앞으로 캐나다뿐 아니라 세계에서 승승장구하는 연구원이 되길 응원한다.

오스카!! 화이팅~~~

*늑대 우화는 나무위키에서 퍼와 조금 수정했습니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이지산 주주통신원  elmo_party@hot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