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들 1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일인 3월 5일을 앞두고 충북 옥천 주민들이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일장기를 제호 위에 얹은 조선일보’ 리본 달기 운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실제로 1940년 1월 1일자 조선일보는 1면 제호 위에 일장기를 얹은 신문을 발간한 바 있습니다. 옥천 주민들이 이런 운동에 나선 데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23년 전으로 거슬러 가보겠습니다.  

▲ 명진스님

1997년 12월 50년 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지며 사회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높아졌습니다. 민주주의를 배신한 권언유착을 종식시키기 위한 언론개혁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수구기득권세력은 저항에 나섰고, 그 중심에 조선일보가 있었습니다. 당시 월간 <말>지 기자였던 저는 조선일보 족벌사주 비리의혹을 추적하는 한편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회원들과 협력해 독재찬양, 국가안보상업주의 등 조선일보의 보도행태를 해부하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 조선일보는 한 정치학자의 논문을 문제삼아 사상논쟁을 야기하는 방식으로 저항에 나섰습니다. 반대세력을 ‘빨갱이’로 몰아가는, 과거부터 수없이 반복해온 전형적인 수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1920년 3월 5일 창간부터 1998년 당시까지 조선일보의 역사와 행적에 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일보가 집착하는 색깔논쟁 즉 ‘레드 콤플렉스’의 뿌리에는 ‘친일 콤플렉스’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조선일보는 지금까지 이 반민족적 친일행위에 대해서 시인하거나 사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도리어 해방 후에는 이를 은폐한 채 민족지를 자처하면서 독재찬양의 길을 걸었다. 그런 조선일보가 살아남는 길은 오직 하나-친일파에 맞서 민족정기를 바로잡으려는 민족세력과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진보세력을 ‘반공’의 이름으로 때려잡는 일이었다. 최장집 교수에 대한 사상검증도 크게 보면 그런 친일 콤플렉스의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정지환, <조선일보의 친일행각 “한일합방은 조선의 행복 위한 조약”>, 월간 말 1998년 12월호)

1999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학술단체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 여성민우회, 환경운동연합, 경실련 등 44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조선일보 허위왜곡보도 공동대책위'는 <조선일보를 해부한다>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발간했습니다.(1번 사진 왼쪽 책자) 이 자료집 맨 앞에 실린 글이 바로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고발한 저의 기사였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에 주목한 일군의 사람들이 있었으니, 충북 옥천 주민들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2000년 조선일보 창간 80주년을 맞이하여 옥천 주민들은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조선바보)’을 결성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도 개설했는데 제목이 ‘물총닷컴’이었습니다. 신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이 ‘물’이라는 발상에서 나온 작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집중 고발한 자료집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옥천>을 발간해 주민들에게 배포했습니다.(1번 사진 오른쪽 책자) 이 자료집에는 옥천의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광고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제호 위에 일장기를 달았다고? 나는 조선일보가 항일 민족지라고 배웠는데...이게 사실이라면 조선일보가 최소한 사죄라도 해야 하는 것 아냐? 항일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이군."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고, 일반인들은 사실 잘 알지 못했던,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에 초점을 맞추자 주민들이 진보와 보수를 넘어 적극 호응해주었습니다. 옥천군의회 의원 전원이 조선바보 회원으로 참여했고, 해병대전우회가 옥천언론문화제 행사의 안내원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백전백승의 신기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옥천전투’를 직접 보려고 수많은 언론인과 지식인들이 옥천을 방문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의 상식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시작된 옥천전투는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옥천전투를 주도한 ‘독립군’(조선바보 회원의 애칭) 중 한 명인 오한흥 옥천신문 대표가 나중에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를 맡았는데, 당시 발간한 자료집의 제목이 <신문으로 위장한 범죄집단 조선일보>였습니다.(1번 사진 가운데 책자) 오한흥 대표는 “조선일보 바로보기운동을 하다 보니 조선일보를 친일(親日)이라는 단어로 비판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볼까요?

“친일은 미래지향적 단어입니다. 친(親)은 ‘친하다’, ‘사이좋게 지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사실 친북(親北)도, 친미(親美)도 나쁜 말이 아닙니다. 1945년 이전 일제강점기에 조선일보가 했던 보도행위는 ‘친일행위’가 아니라 ‘반민족 범죄행위’라고 정확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신년호 1면에 천황 부부의 사진을 크게 싣고, 제호 위에 일장기를 달고, 조선일보 폐간 이후 <조광>(월간조선의 전신)을 확대 개편해 ‘한일합방은 조선의 행복을 위한 조약’이라고 보도했던 행위를 ‘반민족 범죄행위’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조선일보가 이런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하지 않고 오히려 항일 민족지 행세를 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일인 3월 5일을 앞두고 옥천 주민들이 ‘일장기를 제호 위에 얹은 조선일보’ 리본 달기 운동을 시작한 이유를 이제 아시겠죠? 오한흥 대표를 필두로 옥천 주민 유재영 씨가 동참했고, 옥천을 방문했던 명진 스님,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양수철 전 뉴스서천 대표도 이 운동에 가세했습니다.

▲ 오한흥 대표, 유재영 옥천 주민,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양수철 전 뉴스서천 대표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정지환 옥천신문 객원기자  lowsaejae@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