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생명교육의 터전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서울시 양묘장은 누굴 위한 기관인가

해마다 봄이 오면 꽃을 심는다. 씨를 뿌려서 싹을 내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모종을 사다 심는다. 이런 행사는 사오월에 집중되고 구시월에 되풀이된다. 여느 학교를 불문하고 연례행사처럼 치러진다. 대개 동네 꽃집이나 거래처에 의뢰해서 구매한다. 가격차가 심하다. 예컨대 동네에서는 호야(Hoya) 포트가 3천 원, 서오릉 도매상에서는 2천 원, 거래처에 의뢰하면 3천5백 원쯤 부른다. 그런데 오금동(고양시) 호야농장을 찾아가니 8백 원이다. 굳이 교외 농장이 아니더라도 남서울화훼단지나 인터넷 서핑을 통해 저렴하게 사들일 수 있다. 다만 봄이나 가을 한철 보자고 비싼 돈 들여서 한해살이풀을 사지는 말자. 내한성이 강한 노지 숙근초를 구매하는 것이 지당하다. 아무튼 여느 학교든 해마다 소요 경비가 수십 만 원에서 수백 만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그렇다면 제때에 다양한 화초를 공급하기 위해 교육청이 나서는 것은 어떤가? 이만한 예산 절감효과 방안도 드물 것이다.

▲ 어린이들과 함께 꽃모종을 심고 있다(서울신◯초)

서울시는 양묘장을 운영하고 있다. 즉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에 위치한 사능양묘장 등 수목양묘장 5개소, 경기도 고양시 덕은동에 위치한 꽃양묘장 1개소,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잔디양묘장 1개소에서 수목, 잔디, 꽃묘를 생산하여 공공기관에 유상으로 보급한다. 245종 약 34만 주의 수목을 공급하고, 꽃묘는 62종 160만 본을 생산한다고 한다. 서울시 양묘장에서 서울시 산하기관 및 구청, 일반 공공기관에 저렴하게 보급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교 또한 서울시 공공기관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각 학교도 서울시가 운영하는 수목양묘장이나 꽃양묘장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각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교육청에서 일괄 구입, 각 학교로 보급하면 어떤가. 장기적으로는 교육청이 운영하는 양묘장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흉내만 내고 있는 교육시설관리본부

마찬가지로 교정의 수목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이 필요하다.

가로수 병해충 방제는 산림병해충 방제 규정에 의거하여 시행한다. 가로수 병충해 작업 사전공지도 입간판이나 현수막, 배너 등을 활용한다. 약제를 선정할 때는 저독성, 어독성 3급 위주로 사용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어독성(魚毒性 , Fish toxicity)이란 농약 따위의 약품이 물에 용해되거나 부유하며 어패류에 장해를 주는 성질을 말하는데 대체로 치사량 이하의 농도로 생물체 내에 축적된다고 한다. 또 농약은 총 4급으로 1급인 맹독성, 2급인 고독성, 3급인 보통독성, 4급인 저독성으로 분류한다. 방제작업은 바람이 없거나 약할 때 실시하고, 노즐의 방향이나 바람의 방향에 유의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서울시민을 위한 가로수 병해충 방제 지침이 그러하다면 왜 서울 학생을 위한 교정의 수목은 나 몰라라 하고 있을까.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는 가관일 수밖에.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교장이나 행정실장이 역시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주무관에게 매달리거나 근처 인력사무소에 의뢰한다. 농약을 다루는 병해충 방제공은 별도 직종으로 지정되지 않았는데 소위 막노동꾼 일당이 보통인부는 138천원이고 수목을 다루는 조경공 단가가 179천원이다.(대한건설협회, 2020년 상반기 적용 건설업 임금실태조사 보고서). 문제는 그런 적임자를 구할 수 있는지, 또 그런 예산이 확보되어 있느냐 일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서울시교육청에서 제시한 일용인부 노임 단가다. 급식비를 반영한 생활임금 시급이 10,850원이므로 8시간 기준 86,800원이다(2020 학교회계예산 편성지침). 제대로 된 임금을 지급하려면 별수 없지 않은가. 서류를 가공해서 하루에 이틀 일당을 지급해야 한다.

얼마 전 서울송◯초(강서구 공항대로) 교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정문 옆에 있는 소나무 세 그루가 갑자기 잎이 말라서 나무병원에 문의하니 2백만 원 정도 든다고 했단다. 사진을 받아보니 영락없는 응애 피해다. 죽은 가지 잘라내고 응애약을 치라고 했지만 그게 무슨 도움이 될까? 제대로 전지를 하지 않았을 때 응애 피해가 재발한다. 당연히 아주 시원하게 잘라내야 한다. 수형을 고려하면서 햇빛과 바람이 잘 들도록 세심하게 잘라야 한다. 또 응애 전용 살비제를 7일 간격으로 세 번은 살포해야 한다는데 과연 누가 이를 담당할 것인가? 막막하기만 하다.

이런 수목 피해가 그 학교에서만 발생할까? 담장 너머 도로의 가로수는 온전할까? 혹시 근처의 개화산이나 궁산에서 온 응애는 아닐까? 이 학교의 응애가 가까운 까치산이나 봉제산으로 번지지는 않을까? 서울시에서는 아니 강서구에서는 이 학교가 위리안치된 유배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강서구와 서울시 수목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이 학교 소나무를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학교는 분명 서울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이다.

서울역사박물관 경영지원부 시설과에서 제공한 박물관 주변 소나무 병해충 방제 완료 보고(시설과-6340)에 따르면 소나무 90주를 대상으로 약제 구매 후 자체인력을 활용하여 살충제(가루깍지벌레, 응애 방제) 수간주사를 처방하는 데 든 소요예산은 693천 원이다. 부럽기도 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 학교에서는 방법도 모르지만 활용할 인력도 부족하니 사설업자의 배만 불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자명하다. 교육청이 나서야 한다. 물론 교육청도 손놓고 있지는 않다.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는 교육시설관리본부 기동점검보수반을 운영하여 권역별 긴급·위험 수목에 한하여 가지치기 작업을 지원합니다. 기동점검보수반 운영을 통해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저해가 되는 요소를 개선함으로서 안전사고 미연에 방지하고, 학교시설을 신속하게 개선하여 학교 구성원들이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맞다.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시설관리본부에서는 누수를 비롯하여 타일•홈통•용접•계단•화장실•벽체 등을 보수하는데 수목 관련해서는 긴급 위험 수목, 즉 고사목이나 태풍으로 인한 피해목을 잘라주는 일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일반적인 전정은 보통 1년 전에 누리집을 통해 신청을 받는다. 2월 14일 현재 2020년은 이미 마감된 상태이다. 아무리 빨라도 1년은 기다려야 한다.

전정을 하고 남은 나뭇가지 처리도 골칫거리다. 이는 학교 몫이다. 일반 쓰레기가 아니라 생활폐기물로 취급된다. 그만큼 처리 비용이 만만찮다. 인근 업체에 알아보니 학교에서 실어주는 조건으로 1톤 트럭 분량이 40만원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실어 주지 않으면 따로 집게차를 부르고 인부 삯도 내야 한다.

▲ 초기에 솎아내기 작업을 하지 않아 아름드리 나무를 뒤늦게 간벌하는 모습(서울염◯초)

한편 어느 지방이든 농업기술센터에서는 하루 2~4만원에 나뭇가지 파쇄기를 농가에 빌려준다. 지겟작대기 굵기의 나뭇가지를 파쇄하여 우드칩이나 톱밥으로 만들어 주니 쓰임새도 그만이지만 일손과 경비를 훨씬 줄일 수 있다. 학교는 그럴 형편이 안 된다. 안타깝다. 그러다 보니 잘라진 나뭇단을 교사 뒤쪽에 쌓아두고 있다. 참으로 궁상맞다. 미관상 좋지 않고 갖은 병해충의 온상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쌓아둘 곳이 따로 없으니 전정 자체를 기피하는 곳도 있다. 전정을 하러간 자원봉사자가 머쓱해지는 순간이다. 의지 없는 교육청을 언제까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지자체별로 가로수 전지는 물론 병해충 방제시 학교 교정의 수목을 함께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교정가꾸기는 생명교육이다

울다가 웃다가 뛰다가 넘어지고 드잡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찌그러진 병뚜껑이나 닳아빠진 딱지 한 장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한다. 허저분하다고 함부로 버렸다가는 엄마도 곤욕을 치르기 마련이다. 별스럽지 않은 말에 상처를 받고 하찮은 위로에도 울컥거린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별의별 소릴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팔짱끼고 깔깔거린다. 무슨 제식훈련을 본뜨려는가? 수목원이나 놀이터에서까지 굴비 엮듯 줄 세워서 몰고 다니니 참으로 가관이다. 아이들에게 일사불란이란 없다. 없는 말을 기대하는 건 고리타분한 꼰대들이나 하는 짓이다. 잠시도 가만있질 못한다. 각양각색이다.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것이 저들의 속성이다. 넉살맞은 아이라고 다르랴. 움도 싹도 없다고 울대 세우지 마라. 내가 현직에 있을 때 동료들끼리 하던 말이지만 이 세상에 ‘나’보다 때 묻은 아이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런 아이들이 몸담고 있는 곳이 학교다. 학교 하면 무엇을 먼저 생각하는가? 학교나 학년 교육과정을 떠올릴까? 누구는 학교재정, 교육목표, 특색사업, 학사일정, 평가계획 등을 헤집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경우 교정을 맘껏 누비는 천둥벌거숭이들이 먼저 떠오른다.

▲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가 묻힌 쌍릉과, 제2계비인 인원왕후가 잠든 명릉 앞에서(퇴직 후 필자가 가르치던 대조초 어린이들과 함께)

벌거벗은 나무에서 새움이 돋고 교재원에서는 제철 채소가 자라고 교정 곳곳에서 갖은 들꽃이 피고 진다. 벌과 나비가 덩달아 날아든다. 12월에도 길 잃은 멧노랑나비와 네발나비가 찾아오고 부지런한 꽃등에는 차가운 2월 봄기운이 돌기도 전에 벌써 회양목꽃을 어르고 다닌다.

거듭 말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은 많다. 상대적으로 아이들이 몸담고 누비는 교정을 가꾸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질문이 틀렸다. 누가 교정을 담당하는가? 없다. 담당자가 없다. 하물며 전문가를 요구하는 내 말은 한낱 넋풀이임을 잘 안다. 그렇다면 각 학교를 몇 개의 모둠으로 조직, 관련 전문가들이 관리하도록 위임하는 것은 어떤가? 그 전문가에는 수목의 전지•조경•소독•치료는 물론 작물 재배를 위한 텃밭관리사나 도시농업관리사를 들 수 있다. 급한 대로 서울교육인생이모작지원센터가 주관하는 그린에듀교육지원단, 서울시 사회공헌활동지원사업운영기관, 서울시농업기술센터와 지자체가 주관하는 스쿨팜, 일부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스쿨맥가이버나 우리동네 맥가이버 제도, 주민참여예산제 등을 원용, 확장하는 것이 좋겠다.

나아가 교정에서 이루어지는 생태교육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숲해설가, 생태놀이전문가, 원예치료사 등을 파견하는 것이 좋다. 예산? 애먼 짓이다. 예산은 규모가 아니라 운용의 문제다. 최고경영자의 확고한 의지가 절실한 때이다.

이젠 뉴스 가치도 없어질 정도로 아주 흔한 일이지만 한강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가 등이 굽고 몸통 곳곳에 반점이 돋고 아가미가 벌어지고…. 오염된 물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정이 오염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살펴본 대로 오염된 교정은 이미 학교의 관리 밖에 있다. 국가나 지자체마저 이를 방관하면서 어찌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말할 수 있는가? 누구나 심성이 올곧은 아이들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의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드높이기 위해 인간적인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생태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각종 공식과 법칙을 암기하고 교과서를 경전처럼 가까이 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기적 봉사자의 소회

 

‘마더테레사효과’라는 말이 있다. 남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거나 선한 일을 보기만 해도 인체의 면역기능이 크게 향상되는 것을 말한다. 봉사는 곧 나를 위한 일이다.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지만 할 일이 있다는 것, 나를 필요로 하는 데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다.

▲ 그물망을 타고 자란 장대박, 뱀오이, 여주, 수세미, 작두콩 등을 수확하는 단원들(서울발산초)

퇴직한 지 4년 동안 무지는 방황을 낳고 방황은 삭신의 아픔을 감수해야했다. 그런 이들이 모여 학교를 드나들면서 우리 교정 가꾸기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참으로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반증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를 꿈꾸기 때문이다. 남을 돕는 봉사를 하고 난 뒤에는 거의 모든 경우 심리적 포만감 즉 ‘하이' 상태가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지속된다고 하지 않은가.

 

“솔밭동산 복토, 인도로 흘러내린 토사 처리, 텃밭과 화단 김매기, 무궁화와 명자나무 전지, 담쟁이덩굴 제거, 토마토·아마란스·수수·고추 지지대 보강, 오이줄기 내리기, 곁순 따기, 순치기, 감자 수확, 미국선녀벌레·노린재·진딧물 잡기, 천연약제 제조 및 살포, 화초 이름표 달아주기, 학부모 환경동아리 지도…….”

지난 6월, 밴드에 올라온 팀장들의 보고서에서 발췌한 활동 주제이다. 잇따른 황사와 미세먼지, 오존주의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지땀을 흘리는 얼굴들이 삼삼하다.

▲ 학교 본관 앞 꽃밭에서 5년이 넘도록 화사한 꽃을 자랑하던 양귀비(서울양◯초)

줄기가 굵고 매끈하다. 뽑아내려니 한 번 더 망설여진다. 생물을 전공한 윤영금 선생님과 함께 거듭 확인했다. 화초 양귀비가 아니다. 진짜 양귀비였다! 씨가 퍼져 본관 앞 화단에 지천으로 피어 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양귀비는 압수당하고 교장이 불구속 송치된다고 하자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다.

오래 전, 이 꽃을 심고 퇴직한 분이 개양귀비라고 했단다. 그날 이후 교직원은 물론 학부모 모두 해마다 꽃을 감상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교장, 교감, 원감, 행정실장 할 것 없이 모두 나와 안타까운 나머지 발을 동동거린다. 아까부터 안쓰럽게 바라보던 교감은 미심쩍은 듯 날 바라보다가 안절부절못하고 눈은 허공을 맴돈다.

지난 어버이날 서울양◯초에서 있었던 일이다. 꽃은 교무실 화병에 꽂고 이파리 몇 장은 따서 점심 때 맛보시라고 권해 드렸다. 누가 볼세라 잔해는 모두 교재원 뒤쪽 쓰레기더미 속에 꼭꼭 파묻었다.

 

행안부에서 보내주는 안전 안내 문자가 잇따른다. 오늘도 변함없이 친절하다.

“오늘 10시 서울지역 폭염경보. 물 충분히 마시기, 무더위 쉼터 이용, 실외 작업장 폭염 안전수칙(물, 그늘, 휴식) 지키기 등 안전에 유의 바랍니다.”

‘폭염경보’란 말이 주는 중압감에 맘까지 푹푹 찐다. 어제와 달리 오늘 따라 바람 한 점 없는 날이다. 하지만 그것도 일상이 되고 보니 그저 그렇다. 작업복과 모자, 장갑, 장화, 전지가위, 물을 챙긴다. 선크림을 잔뜩 발라주는 아내를 뒤로 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당차게 집을 나선다.

오늘 배정받은 학교는 서울흑석초. 용산역과 노량진역에서 갈아타고 흑석역에서 내렸다. 2번 출구 나서니 바로 정문이다. 행운이다. 1시간 반 동안 지하철에서 얼마나 시달렸던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충분히 보상을 받은 느낌이다.

교장선생님이 반긴다. 시원하다. 아침부터 냉방기를 가동하고 새참으로 빵까지 준비했구나. 고마운 맘에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창설 당시 학교명과 명수대의 유래까지 설명해 주신다. 상견례를 마친 우리는 작업 도구 일체를 점검하고 학교장과 함께 교정을 돌았다. 교정 곳곳에 묵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연못에는 수생보다 뭍풀이 더 많고 화단가에는 말라 죽은 고추, 토마토, 상추 화분이 줄지어 있다. 온갖 잡풀은 제멋대로 누워 있고 심어 가꾸지 않은 느티, 아까시, 상수리 등이 서로 간섭하며 아무데나 자리를 잡고 있다. 오전 팀은 16명이다. 3조로 나누어 영역과 역할을 정한 뒤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쑥을 비롯해서 새콩, 바랭이, 망초, 돼지풀, 미국쑥부쟁이, 서양등골나물 따위를 제거한다. 줄기번식을 하는 토끼풀이나 키작은 비단풀과 매듭풀은 유난히 손길이 많이 간다. 고사한 회양목과 산철쭉을 뽑고, 베게 심어진 화살나무를 뽑아 이식한다. 개나리와 쥐똥나무, 무궁화를 가지런히 다듬고 소나무와 느티나무 곁가지나 죽은 가지를 잘라낸다. 전정을 한 잔가지 말고도 각종 폐기물이 100 L 들이 쓰레기봉지로 줄잡아 서른 개가 넘는다.

머릿속 모공마다 삐질삐질 땀이 솟고 금세 모자 땀받이를 적신다. 속옷이 사타구니에 들러붙고 줄땀이 겨드랑이에서 팔뚝으로 흐른다. 안경 브릿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은 안경알과 코패드를 가리지 않고 콧잔등을 지나 가슴까지 적신다. 온몸에서 쉰내가 진동하지만 먼지투성이 토시로 훔칠 수밖에 없다. 그 때 담당교사가 쟁반에 내온 냉수 한 잔! 단숨에 들이켜고 얼음까지 달게 깨문다. 폐부까지 찌릿하다.

 

“창고가 뭐냐? 하다못해 옷 갈아입을 방은 있어야지. 땀범벅이 된 얼굴로 교무실을 기웃거리며 냉수 좀 마시자고 손 내미는 얼굴을 상상해 보라.”

지난 10월, 팀장 협의회 때 나온 말이다. 회의를 마치고 숫두룸하게 보였는지 나를 전집으로 이끈다. 이동일 선배다. 그만 도록거리고 어여 한 잔 내라며 다그친다.

“묵묵히 봉사하는 단원은, 쓰다 달다 말없이 자리를 내주는 지하철의 의자요,ㅠ손잡이와 같은 존재야. 아니 그래야 하는 거지. 봉사 대상 학교 담당자에 대한 호불호 재단은 금물! 우리 아이들이 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뛰놀 수 있도록 교정을 맑히면 그뿐. 좌고우면하지 마라. 진정한 봉사는 조건에 눈먼 봉사(盲人)여야 하거든.”

 

철들지 않은 ‘어르신’의 웃픈 나날들

 

그렇다!

평생 교실에서 교과서를 놓고 아이들과 씨름하던 이들이다. 잎만 보고 파, 양파, 달래, 마늘을 구분하긴 쉽지 않다. 토끼풀과 괭이밥, 메꽃과 나팔꽃, 민들레와 씀바귀, 억새와 갈대, 소나무와 잣나무 등을 명쾌하기 구분하는 이가 드물다. 실파가 자라 대파가 되는 것을 모르고, 쪽파가 크면 대파가 되는 줄 안다. 그러니 움파가 겨울에 움 속에서 자란 파요, 베어 낸 줄기에서 다시 줄기가 나온 파라는 걸 어찌 알겠는가. 층층파(삼동파)를 본 사람조차 찾아보기 어려운데 씨앗이 아닌 주아로 번식한다고 하면 호미질하던 손을 내려놓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기 일쑤다.

김익승 선생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초등학교 2학년인 손주가 쓴 일기라며 읊조린다.

“엄마는 좋고, 아빠는 모르고, 이모는 좋고, 할머니도 좋고, 할아버지도 좋다. 엄마는 놀러가게 해서 좋고, 아빠는 모르고, 이모는 재미있어서 좋고, 할머니는 맛난 밥을 해 줘서 좋고, 할아버지는 같이 놀아 줘서 좋다. 그런데 우리 아빠는 왜 모른다고 했냐면 사실은 돌아가셨다.”

촉촉한 눈. 그래도 눈빛은 단호하다.

“착각하지 마. 현직이든 퇴직자든 학교는 선생의 뜻을 펼치는 곳이 아니야.

아이들 꿈을 이루는 곳이지.”

그런저런 아픔 안고 있는 이들이 어디 김 선생 뿐이랴. 망칠을 넘어 망팔에 이른 단원 모두 골병 서너 개쯤은 켜켜이 묻고 산다. 게다가 밀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하는 위인들이다. 아직도 절기를 알지 못하니 철(節)이 들지 않은 이들이다. 아뿔싸, 그렇게 ‘철들지 않은’ 230여 명의 문외한들이 모여 교정을 가꾸고 있는데 하나같이 ‘고마우신 어르신’ 대우를 받고 있다!

텃밭 수확물로 호박죽을 끓여 전직원에게 제공했다는 개◯초를 비롯하여
그린에듀 도움으로 텃밭가꾸기 프로젝트 표창을 받았다는 매◯초,
옥상 텃밭 수확물로 전교생 대상 쌈데이를 실시했다는 연◯초,
개교 후 11년 만에 전정을 실시했다는 은◯초,
당신이 그린 수채화 한 점씩 건네면서 내년에도 꼭 오시라며 교문까지 따라오던 한◯초 교장… 웃픈 현실은 언제나 끝이 날까.

▲ 하늘공원 탐사를 마치고 하늘담은그릇에서 그린에듀교육지원단원들과 함께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박춘근 주주통신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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