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86]

회사를 설립한 첫해, 여름이 오기 전에 두 번? 정도 수출을 더 한 듯합니다. 여름 되면 대만 등산장비 업계가 비수기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았지만,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그 여름은 동짓달 기나긴 밤보다 참으로 길고 길었습니다.

한국은 반대로 봄부터 시작하여 여름이 되면 핫 시즌입니다. 그러다 8월 초순이면 공장들은 출고가 거의 멈추고 바닷물이 차갑게 느껴지는 8월 15일경부터 매장에도 손님이 한산해지는 구조였습니다.

안정적인 내 사업장도 없고 수입도 없던 어려운 시절, 나와 이름 석 자가 한자까지 똑같은 한 사업가가 제안하더군요. 당시 광화문 네거리의 사업장과 고척동 쪽 빈 사무실을 보여주며 자기 회사에 와서 일하라고. 내가 성공할 때까지 자기 사무실을 쓰라며 필요한 경비도 보조해주겠다고.

돈 한 푼이 아쉽던 그 어려운 시절에도 그 자리에서 거절했습니다. 나중에 “재, 내가 키웠어!”라는 소리 듣기 싫다고.

9월이 가기 전에 그토록 간절하게 기다리던 소식이 대만에서 왔습니다. 수출 물량과 종류도 갈수록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다음 해 봄이 되자 작은 오피스텔을 얻어 전세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매월 임대료를 내지 않게 되었지요.

주변에서 사업을 하는 분들이 하나같이 그러더군요. 사업은 자기 돈으로 하지 않는 거라고. 자기 돈으로 사업하다 망하면 길거리에 나 앉는다. 최소한의 자기 돈은 시늉만 하고 남의 돈을 빌리거나 금융권에서 빌려야 한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간도 작고 남의 돈 떼먹고 두 다리 뻗고 잘 강심장도 못 됩니다. 번거로운 것도 싫어하고, 남 눈치 보거나 아쉬운 소리 하는 것도 싫어하니 사업가 자질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요. 따라서 제일 속 편한 것은 내가 번 돈 안에서 쓰고, 고정비는 줄이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능력껏, 내가 벌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 자유는 원하는 데로 살 수 있는 것이겠지만, 원하지 않는 일도 하지 않을 자유가 더 큰 자유라고 생각했지요.

임대료 지출이 없고, 수출 물량은 점점 늘어나자 1년 후에는 좀 더 큰 오피스텔을 매입하여 이전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부산항만으로 가는 화물트럭 한 귀퉁이에 실어 보내던 물량도 어느 순간 컨테이너 하나를 불러 내보내게 되더군요. 3년째 여름은 그렇게 길지도 않았습니다. 伍先生은 거의 매월 한국에 오다시피 하였습니다. 거래처를 방문하여 가격흥정을 하고 물량을 발주합니다. 그리고는 가져온 달러를 주고 갔지요.

그러다 10만 달러를 직접 주고 가거나 송금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20피트 컨테이너로 2~3개 물량이었지요. 당시 사업장이 있던 구로동 주변의 25평 아파트 한 채 값이었습니다. 10만 달러라는 돈의 무게는 나에게 실로 컸습니다.

현금 10만 불을 받은 어느 날 저녁, 이 친구는 식사 후에 차를 마셔버릇해서인지 식후에 종종 맥주 한잔하자고 합니다. 맥주를 홀짝이다 그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너 이 돈이 나에게 얼마나 큰돈인지 아냐? 내가 만약 컨테이너에 돌을 집어넣고 씰(Seal, 봉인)을 채워 보내버린 후 잠적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伍先生,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내가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겠다. 김동호가 오죽하면 그랬을까? 너를 원망하지 않겠다.” 이어서 “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좋게 보여도 신뢰는 0이다. 두 번 세 번 만나고 함께 지내면서 5%, 20%, 50% 이렇게 믿음이 생기고 친구가 된다.”

30여 년 전 이 친구가 했던 이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기에 어디 가자고 부르면 따라나섭니다.

▲ 2014년 나고야 여행중 伍先生과 그 부인
▲ 伍先生이 카메라를 들면, 나와 사진을 찍을 때는 언제나 이 포즈의 伍先生부인.(2014년)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친구는 거의 말이 없습니다. 표정도 딱딱해서 좋은 인상도 안 주는 편이지요. 대부분의 대만 사람들이 복장에 신경을 안 쓰는데 이 친구는 그중에서도 심한 편입니다.

똑같은 의미의 말을 해도 어떤 사람은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게 하는데, 이 대만친구는 상대방이 오히려 열 받게 말을 합니다. 한국에서 친한 친구와 만난 자리, 대뜸 저에게 이 인간 왜 이렇게 건방지냐? 고 하더군요. 아마도 친구인 저를 무시한다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친구의 말과 행동보다는 마음을 읽습니다. 알게 되면 그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상대를 위하는 진심이 느껴지는 그런 친구입니다. 단지 표현을 쑥스러워하는 사람이지요.

伍先生의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이 모두 그럽니다. 김동호를 형제보다 더 아끼고 친하게 지낸다고. 그리고 속내를 털어놓는 유일한 친구, 우리는 서로 비밀이 없는 그런 사이입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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