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월요일)

주말에 연구기관으로부터 실험은 최소화하고 집에서 일할 것을 촉구하는 이메일이 왔다. 월요일, 연구기관은 혼란 그 자체였다. 다들 정신없이 실험을 정리했고, 필요한 데이터를 본인 하드드라이브에 옮기기 시작했다. 복도는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점심시간쯤 되자 기관은 텅텅 비었다. 마무리해야 할 실험이 있는 나를 비롯한 몇 명 학생들은 실험 결과를 기다리며 코로나와 관련된 뉴스를 찾아보았다. 뉴스를 스크롤 하던 중 심장이 덜컹하는 뉴스가 눈에 띄었다. 캐나다 총리 '저스틴 트뤼도'가 앞으로 미국을 제외한 국외 항공을 금지하며, 캐나다와 미국 시민권 소지자만 입국을 허용한다는 강경책을 발표한 것이다.

사실 나는 1월 초순에 4월 16일 출발하는 한국 항공편을 끊었다. 일정은 뉴욕을 경유하여 한국에 입국하기에 항공권은 아직 취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캐나다 시민권자가 아니고 학생비자를 갖고 있기에 출국은 가능하지만 입국은 불가능하다. 서둘러 항공사에 전화했지만 출국 72시간 이내가 아니면 나중에 전화 해달라는 보이스 메시지만 나왔다. 항공사 웹사이트에도 들어가 보았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사태로 평소보다 200배 많은 전화와 상담을 받고 있어 나중에 전화를 해달라는 배너만 떠있었다. 갑자기 앞이 깜깜해지고 현기증이 나며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1년 반 동안 조금씩 모은 월급으로 산 비행기 티켓인데... 모든 것이 무산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마음을 침착하게 가다듬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3월 17일 (화요일)

보스 스테판의 주장에 따라 실험실원들은 모두 출근해야 했다. 다들 몸은 실험실에 있지만 연구는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았다. 실시간 업데이트 되는 정부대책과 코로나 관련 뉴스를 확인하였다. 나 또한 어제 실린 입국금지를 재확인하면서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인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몬트리올 한국영사관에서 올린 긴급 뉴스를 캡처한 이미지였다. 지난 일요일 한인 남성 2명이 몬트리올 각각 다른 곳에서 괴한에게 칼부림을 당했으므로 몬트리올에 있는 한국인들은 각별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두 남성 모두 마스크를 꼈다는 소문도 있어, 마스크를 쓴 동양인을 타깃으로 한 범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몬트리올 시내를 다니며 한 번도 위험하단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이 뉴스를 보니 등골이 오싹하며 초조한 감정은 더욱 커졌다. 보스 스테판도 현재 상황이 걱정되었는지 우리에게 자꾸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며 억지로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그날 BBC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을 인터뷰하는 뉴스를 봤다. BBC 인터뷰 진행자는 한국이 어떻게 신속하고, 투명하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코로나 확산을 진압할 수 있었느냐 물었다. 강경화 장관님은 발 빠르게 코로나 진단키트를 개발하고, 키트를 신속하게 분배하여 검사를 하게 한 것이 핵심이었다고 똑 부러지게 답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세계에서 신뢰받는 언론들 (The wall street journal, Bloomberg, Time 등)은 한국대책을 칭찬하고 본받아야 한다는 기사를 띄었다. 실험실 친구들도 캐나다가 빨리 한국을 본받아야 된다며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우리 실험실에 있는 Oscar는 한국 코로나 바이러스 대책을 보고 흥미로웠는지 한국에 대해 좀 더 알아봤다고 한다.

“내 약혼자가 중국인이어서 코로나 확산에 중국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찾아봤어. 그러다 중국 현지 상황을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동영상을 봤는데 마스크를 안 쓴 여성이 길을 돌아다니자 갑자기 경찰이 뛰어와 여자를 폭행하고 어떤 알루미늄 상자에 넣어 차로 데리고 가는 모습을 봤어. 여자가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서 마음이 아프고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한국은 정말 잘하고 있더라고. 빠르고 민주적으로.. 그걸 보고 한국 정치에 대해 간단히 검색해 봤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했다는 기사를 보고 정말 놀랐어. 시민의 힘으로 지도자를 탄핵시키고 새로운 지도자를 뽑을 수 있다는 거... 내 고향인 멕시코나 내 약혼자가 있는 중국에선 불가능한 일이거든.. 여러모로 한국 시스템이 부럽네. 배워야할 점이 많은 거 같아”

 

3월 18일 (수요일)

실험실을 나가는 마지막 날이다. 쥐 그리고 세포 실험도 정리하였고, 필요한 데이터는 클라우드에 옮겨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정리를 하고 있는 도중 팅이 마스크를 쓰고 쭈뼛쭈뼛 실험실에 들어왔다. 마스크 쓰기를 권고하지 않아 캐나다 시민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지 않기에 갑자기 마스크를 쓴 팅을 보고 궁금해 물어봤다.

“팅, 무슨 일이야 실험실에 마스크를 쓰고 오고”

그러자 팅이 불안한 눈빛으로 가까이 오길 꺼려하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사실 남자친구 실험실에 어떤 여자 분이 어제 계속 기침도 하고 열도 나고 했대. 단순한 감기일 수도 있는데 검사를 받기 전엔 모르잖아? 만약 확진자면 남자친구에게도 옮았을 테고 나도 옮았을 가능성이 있어 방지차원에서 마스크를 꼈어”

그 말을 듣자 미안하지만 나도 모르게 팅과의 접촉이 신경 쓰였다. 팅은 급한 것만 정리하고 10분 뒤 뛰어가듯 헐레벌떡 실험실을 나갔다.

오후에 캐나다 총리는 미국과 국경도 막는다고 선포했다. 예약한 비행기는 캐나다에서 뉴욕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가는 거라, 내 비행기는 거의 취소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더 이상 놀라울 것도 없었다. 아무리 한국에 가고 싶어도, 가고 못 가고는 누구도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하루가 다르게 실감하고 있다. 일주일간 계속된 코로나 바이러스 뉴스,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접하다보니 내 마음도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침 항상 긍정적인 친구인 Oscar와 재택근무를 하며 데이터를 어떻게 주고받을지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연구 얘기를 끝낸 뒤, Oscar에게 물었다.

“Oscar, 이번 코로나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데 너는 좀 어때? 자가격리가 길어져도 괜찮겠어?

Oscar는 해맑게 웃으며

“나는 평소에도 자가격리를 해서 괜찮아. 한번은 2달 내내 집에만 있던 적도 있거든.”

나는 신기하듯 또 다시 질문했다.

“아 그래?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았어?”

“응 하나도 안 심심했어. 어떨 땐 몇 시간이고 명상하며 있었던 적도 있어. 마치 검은 우주에 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그 기분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평온해”

역시 Oscar는 일반인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괜할 수도 있는 푸념을 했다.

“그렇구나.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있으면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사실 이 모든 사태가 불안하게 느껴져. 이미 캐나다는 모든 국경은 막았고 나는 집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야.

Oscar는 평소와 같이 밝은 표정으로

“응.. 너 말이 맞아. 전 세계가 한마디로 혼돈상태야. 특히 이탈리아 상황을 보면 맘이 아프지. 그렇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 다행히 캐나다가 다른 나라보다 자가격리를 일찍 시작해서 2-3주 뒤면 이런 혼돈도 많이 가라앉을 거라 생각해. 시간은 흘러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아.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사용할라고..”

Oscar의 긍정적인 말 덕분이랄까. 마음이 좀 더 안정되고 자가격리를 하면서 해야 할 일들이 머리에서 정리가 되었다. 닥쳤으니 한번 해보는 수밖에!

 

3월 19일 (목요일)

자가격리 1일째. 몸은 알람 없이도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항상 일어나던 시간에 눈이 떠졌고,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평소와 같이 따듯한 차와 커피를 마셨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논문을 읽었고 컴퓨터 작업을 시작했다. 새로이 분석해야할 데이터를 이메일로 Oscar에게 보냈고, Oscar는 신속히 결과를 보내주었다. 보내준 결과를 분석하고 재분석을 요청하며 정보를 교환하였다. 소파에 앉아만 있어서 그런지 별로 배도 고프지 않아 스무디 한 잔과 아몬드로 아침 겸 점심을 때웠다. 오후 5시쯤 몸이 찌뿌듯해지기 시작했다. 캐나다 정부에선 밖에 혼자 조깅하는 정도는 괜찮다하여 30분 정도 조깅을 했다. 나와 같이 조깅하러 나온 사람들을 보니 괜히 반가워 미소를 주고받았다. 집에 와서 유튜브에 올라온 ‘집에서 하는 운동’ 동영상을 보며 따라했다. 저녁을 먹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 사람 없는 공원

 

3월 20일 (금요일)

자가격리 2일째. 보스 스테판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정부기관에서 급하게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관한 연구계획서를 받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우리도 계획서를 작성해서 제출하자는 것이었다. 바이오 인포마티션 직책을 맡고 있는 Oscar는 미국에서 박사후과정 중 특정 단백질과 약물결합 유무를 판단하는 연구를 했었다. 이런 점을 알고 있던 스테판은 Oscar를 중심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 약물을 발견하는 계획서를 제안했다.

평소 바이러스 또는 약학을 연구하던 실험실이 아니어서 모든 실험실 인력이 투입되어 방향을 정하고 작성하기로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떤 방법으로 인간 폐세포에 침투하여 복제를 하는지, 현재까지 알려진 원리는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관련 논문을 읽어 나갔다. 공동 채팅방을 이용해 밤늦도록 정보를 주고받았고, 모르는 부분은 서로서로 채워주었다. 신기하게도 이 일은 비록 얼굴은 보진 못하지만 실험실원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열정은 가상공간인 채팅방에서도 전달되었다.

 

3월 21일~22일 (토,일요일)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계획이 점점 목표를 찾아나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폐세포에 침투하는 방법, 복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들 이해하게 되었다. 원리를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바이러스는 바이러스 자체만으론 살아갈 수 없다.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생명체에 침투하여 그 생명체 단백질을 이용해야만 살아나갈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를 보면 폐세포가 영향을 받아 호흡곤란 상태가 온다고 한다. 왜 코로나 바이러스는 유독 폐세포에 침투할까?

사람 몸으로 들어온 바이러스는 특정 열쇠를 갖고 있다. 이 열쇠는 특정 자물쇠와 결합하여야 문을 열듯 세포벽과 같은 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갖고 있는 열쇠는 폐세포의 자물쇠에게 맞춤형이다. 이 열쇠는 전문용어로 ‘Spike glycoprotein’이고, 폐세포가 갖고 있는 자물쇠는 ‘ACE2’ 단백질이다. 바이러스의 Spike protein이 폐세포의 ACE2와 결합하게 되면 세포의 문은 열리고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침투하게 된다. 침투한 바이러스는 폐세포 내 단백질을 이용해 복제된다. 복제된 바이러스는 세포를 터트려 다른 세포에 침투하는 과정으로 번식한다.

그럼 이 열쇠와 자물쇠가 만나는 것을 방해하면 바이러스 침투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연구 목표를 세웠다. 단순한 거 같지만 현재로선 제일 효과적인 방법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목표를 중심으로 연구계획서는 작성되었고, Oscar는 약물을 스크리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3월 23일(월요일)

실험실원들 모두 열심히 일한 덕에 계획서는 순식간에 마무리되어 정부 기관에 제출되었다. 실험실 채팅방에선 수고했다며 서로에게 격려를 보냈다. 비록 갇혀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를 위한 연구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마음이 부풀었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이지산 주주통신원  elmo_part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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