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신 덕분입니다

▲ <목판 5.18> 목판화 원판.2008 김봉준 작

5.18민주화운동이 40년 전 일이다. 나는 이맘때가 되면 어디서 올라오는 건지 모를 불안과 우울감에 접어든다. 내 깊은 심연에 침전되었던 부유물이 흩어져 떠오르는 듯 어둠에 휩싸인다. 이게 트라우마인 줄 나중에 알았다.

나는 당시 광주에 있지도 않았고 시민군은 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오월이 오면 총칼에 찔리고 일그러진 얼굴이 더 선명히 떠오른다. 그래서 일부러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 초대장을 매년 받고도 안 갔다. 망월동 공동묘지도 잘 안 갔다. 자꾸만 떠올라 나를 혼미하게 만드는 5.18 영령을 애써 피해왔었다.

▲ <오월의 통곡> 목판화 45 x55cm 2019년 김봉준 작.

그러다가 작년 오월 광주시민들의 대안문화공간 '메이홀'에서 초대전을 열어준다기에 그동안 부채의식을 벗어나려고 광주 오월을 그려온 그림들을 화업 40년 작업들 맨 앞에 걸고 포스터도 이 주제로 했다.

▲ <오월의 부활ㅡ설치미술> 2009 김봉준 작.

마지막으로 그린 가로가 긴 걸개그림을 오월 시민군을 직면하듯 그렸다. 이제것 피해 왔던 광주의 무장항쟁 시민군의 영혼으로 더 직접 다가갔던 것이다. 이제는 이 슬픔과 분노를 피하지 않겠다고...

▲ <신화의 나라-광주518> 걸개그림 신화의 나라2, 부분도

내가 5.18이 트라우마가 되어 늘 나를 괴롭혔던 것은 당연했다. 나는 1980년 당시 5.18을 서울에 알린다고 유인물을 살포했다. 조직적 저항을 주동했고 이것이 발각되면서 포고령위반자로 수배되어 일 년을 수배 투옥 당했다. 미대 졸업 직후 일이다. 젊은 화가의 길은 이렇게 고단한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내가 순수예술이니, 모던이즘이니 하는 안온한 온실 화초처럼 자라지 못하고, 40년 민주화운동과 동행하는 예술의 길을 가게 됐던 것은 분명 5.18 때문이다. 첫 직장을 잃고 40년.. 말이 좋아 전업예술가이지 실업자 생활을 하게 만든 것도 5.18 덕분이다.

왜 덕분인가. 예술을 저 역사와 생존 밑바닥에서 시작하게 만든 것이다. 갈 곳 없는 민중과 어울리는 생존길을 찾아 농민회, 노동조합, 지역문화, 변방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으니 5.18덕분이 아닌가. 인생길은 출세길을 찾아가는 길도 있지만 역사길을 선택하는 길도 있다. 이렇게 고단하게 살아온 40년은 나의 예술연대기처럼 되어 메이홀에서 전시하기에 이르렀다.

5.18 시민군의 무장투쟁을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상처는 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대화를 할 적에 치유는 시작될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예술치유를 한 것이다. 그리고 야생초처럼 살게된 이 예인의 길이 5.18, 당신들 덕분임을 평생 일깨워 주었다. 내 청춘의 선택이 역사의 길임을, 그것이 나의 삶의 길임을 알려준 것이 바로 5.18이다. 민중과 함께, 역사를 직시하며 비타협정신으로 가라는 무언의 스승이 5.18 시민군이었다. 앞으로 십년만 더 하다 기력이 쇠하거든 붓을 놓으련다.

더 글쓰기를 자제하련다. 이렇게 5.18에 글과 그림 헌정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련다.

▲ <오월의 부활> 아크릴화. 160 ×300cm, 2019 김봉준작.

지금 겨우 국민주권을 모두가 인정하는 명실상부한 공화정 시대로 온 것은 5.18, 당신 덕분입니다.

2017촛불혁명, 무능하고 무책임한 권력을 쫓아낸 비타협의 촛불혁명, 그 뿌리도 5.18. 당신 덕분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어도 K방역이 제일 먼저 위기극복을 하고 있는 것은 이미 30년 전 보여준 높은 광주시민의식 5.18, 당신 덕분입니다.

40년 김봉준 미술의 길도, 5.18 당신 덕분입니다.

▲ <광주 전시 포스타> 2019년 5월. 김봉준 광주 메이홀 초대전.

* 김봉준(화가, 오랜미래신화미술관장)
2019 '김봉준미술40년 기념전'. 갤러리 미술세계
2019 '시점'ㅡ'1980년대소집단미술운동 아카이브전' 초대. 경기도립미술관
2019 '오월의 통곡' 개인전. 광주 메이홀 초대전
2018 '민중미술과 영성전' 서남동목사탄생100년기념사업회, 연세대박물관.
2018 '아시아판화전'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1982 미술동인 '두렁' 창립, 걸개그림 목판화 미술운동 주도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김봉준 시민통신원  sanary@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