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불교 조계종에서 운영하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의 쉼터, ‘나눔의 집’이 내부고발자들의 제보와 함께 연일 음울한 소식이다.

먼저 의혹이 불거진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와 ‘나눔의 집’은 설립주체와 사업목적, 그리고 활동영역이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싸늘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수요시위를 학생들에게 널리 알리며 교육운동을 해온 우리 교사들마저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질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하다. 그래도 삶을 위한 운동은 지속되어야 하겠기에 여기에 ’정의연’을 위한 변명을 몇 자 적고자 한다.

한국 사회 최고의 NGO ‘참여연대’는 후원회원이 15,000명 정도이다. 활동비로 급여를 받는 상근 활동가가 55분이다. 그에 비하면 ‘인권연대’는 20년이 조금 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후원회원이 3,100명에 지나지 않는다, 상근활동가는 사무국장을 포함해 모두 6분이다. 박노해 시인이 중심이 돼 만든 반전평화운동 NGO인 ‘나눔문화’는 후원회원 3,500명에다 상근활동가가 13분 정도이다.

마찬가지로 ‘정의연’(정대협의 후신)은 매달 정기 후원회원이 700명을 넘지 않는다. 상근활동가는 8분이다.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 국민이 5천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 18세 이상 성인이 2,000만 명이 넘는다.

그럼에도 후원하는 시민은 2백만도 아니고 1/100인 2십만 명도 아니다. 아니 2만 명도 회원으로 가입돼 있지 않은 게 우리네 자화상이다. 고작 15,000명 회원을 안고 있는 참여연대가 한국 사회 최대의 NGO라면 우리들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지 않을까?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23,000개가 넘는 시민단체와 민간단체가 있다. 시민단체(NGO) 70% 이상이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 생겼다. 2000년대 이후에 등장한 시민단체(NGO)만 40%가 넘는다. 시민단체(NGO) 평균 후원회원수는 300명이고 평균 상근활동가 숫자는 3명으로 매우 열악한 형편이다. 상근활동가가 10명이 넘는 곳은 전체 시민단체(NGO) 가운데 13%에 지나지 않는다.

▲ 시민의 인권을 위한 NGO <인권연대> 2020년 5월 살림살이 소식지. 6명 상근자 월급이 활동비로 적혀 있고 강의 등 강좌 수입은 모두 <인권연대> 수입으로 잡혀 있다. (출처 : 하성환)

실제로 『한겨레』 신문이 10여 년 전 30개 시민단체 상근활동가 114명을 설문조사했을 때 50%가 넘는 활동가들이 ‘시민운동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한국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었던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시민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리고 투명한 회계처리 또한 당연한 기대일 것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국회, 대기업, 대학, 언론, 검찰, 경찰, 군대 등 다른 어떤 분야보다 시민단체(NGO)에 대한 신뢰도는 단연 으뜸이다. 신뢰도가 높은 만큼 ‘윤미향과 정의연’ 등 시민단체(NGO)에 대한 실망 또한 컸을 것이다.

실망으로 치자면 10여 년 전 ‘환경운동연합’의 회계비리로 그 위상이 추락한 것이 대표적이다. 아시아 최대의 환경운동단체이자 그린피스 이상으로 가장 전투적인 환경 NGO인 <지구의 벗> 회원단체인 ‘환경운동연합’조차도 회계비리로 활동가가 구속되고 환경운동의 대부 최열 씨도 검찰에 소환되는 등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제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자(전 정대협-정의연 이사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당사자가 부인했듯이 회계의혹은 의혹일 뿐, 사실로 드러난 게 아니다. 일부 수구 언론들에 의해 상당 부분 부풀려져 보도되거나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인물인 것처럼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화되었을 뿐이다.

해방 후 수십 년 동안 국가도 방치했던 문제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1982년 윤정모 작가가 쓴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라는 작품을 통해서다.

일반 시민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널리 대중화된 계기는 1992년 송지나 작가와 김종학 피디가 만든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이다. 그때 처음으로 ‘정신대’라는 용어가 널리 회자되기 시작했다.

‘일본군 위안부’ 출신 피해자임을 최초로 고백한 분은 1991년 8월 14일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기자회견을 한 고 김학순 할머님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줄임말)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고 김학순 할머님은 1991년 8월 14일 명동 향린교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은 ‘일본군 위안부‘ 출신이었음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

▲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 모습.
왼쪽 끝에 계신 분이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출신이었음을 밝힌 고 김학순 할머님이다. (출처 : 한겨레 자료사진)

부끄럽게도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게 별로 없다. 오죽했으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할머님들이 한국 국적을 버리고 싶다고 절규했을까! 다음은 이용수 할머님이 고백한 내용이다.

“처음 이 사실을 밝히기까지 정말 힘들었어요. 많은 용기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당당한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우리 정부도 피해자에 대한 문제를 일본에 당당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내 죄는 대한민국의 딸로 태어난 것밖에 없는데 아직까지 일본은커녕 조국에게도 위로 한 번 받지 못했어요.”

오히려 한국 정부는 해방 후 수십 년 동안 모르쇠로 일관했고 남의 일처럼 무심했다. 그러다 ‘정신대’란 용어가 널리 회자되던 90년대 초 이후엔 대단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긴 시간 공백을 메워나간 사람들이 몇 안 되는 ‘정대협’ 상근활동가들이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고 전범자 처벌을 위한 민간국제법정을 일본 도쿄에서 개최하였다. 나아가 국제연대활동을 통해 2007년 미국 하원 전체의  결의와 유럽연합(EU) 의회 결의안을 이끌어 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질적으로 전시성폭력 문제임을 인지하고 피해할머님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자행한 전시성폭력 피해여성들을 찾아가 위로와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 소녀상 건립을 비롯해 피해할머님들을 위한 기림사업 또한 마찬가지이다.    

▲ 2020년 5월 27일 144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출처 : 강재구 한겨레 기자)

그 곳엔 항상 ‘정대협’이 있었고 따라서 ‘정대협-정의연’의 활동상과 열정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이제 수요시위가 전 세계 23개 국가와 60여 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리는 국제적인 연대시위로 발전해 나갔다. 이 모든 것이 피해할머니들과 함께 한 ‘정대협-정의연’의 30년 수고의 결실이다.

박근혜 정권이 촛불로 쫓겨날 때까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가해국 일본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를 하거나 사죄를 촉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해국 일본 정부을 향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 최초의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2004년 3,1절 기념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한 적이 있는데 이때가 처음이었다. 주권 국가로서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가해국 일본에 대해 당당하게 발언한 대통령은 유일하게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피해당사자와 국민들 몰래 굴욕적으로 체결한 ‘2015 한일위안부 합의’에 대해 이를 거부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9년 일제강점기 징용 피해자들 배상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아베 내각이 우리나라에 경제보복을 가했을 때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 고 대결적 자세를 최초로 선보인 것도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이다. 

이제 더 이상 사실이 아닌 의혹만으로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자를 비롯해 ‘정대협’ 활동가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 의혹은 검찰이 ‘정의연’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한 만큼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검찰 수사를 지켜볼 일이다.

세상엔 완벽한 운동도 없고 완벽한 인간도 없다. 마찬가지로 완벽한 활동가도 없다. 그럼에도 수구언론의 무차별적인 의혹 보도와 사실 왜곡으로 시민운동이 상처받고 훼손당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이 운동을 부정하는 일부 세력들이 준동하는 세태는 기가 찰 노릇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자극적이고 선정성 짙은 보도에 한몫했던 수구 언론들의 책임이 크다.

 ‘일본군 위안부 ‘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17분 생존 할머님들은 거의 평균 90세가 넘은 고령의 나이다. 이제 10년이 지나면 운동 주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본군 성노예 ‘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 주체로서 ‘정의연’이 성찰을 통해 조직운영을 좀 더 민주적으로 바꿔내고 회계투명성을 높인다면 피해할머님들과 다시 굳건한 연대를 지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내부 분열 없이 견결하게 나아가는 게 운동의 이치에 맞다. 피해할머님들뿐만 아니라 시민들 또한 ‘정대협-정의연’으로 이어지는 지난 30년의 활동을 기억한다. 그런 만큼 어려운 시기일수록 시민의 후원과 지지도 더욱더 많아졌으면 한다.

생존할머니들 17분 모두 돌아가셔도 28년째 이어오는 수요시위는 우리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로 계속해서 이어가야 한다. 그것이 남아 있는 시민들의 책무요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 2019년 8월 14일 열린 제1400차 <수요집회>와 제7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기념 국제연대시위 포스터
(출처 : 정의기억연대)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이 수난에 처했을 때 그 수난의 고통을 가장 참혹하게 겪었던 피해할머니들 문제에 대해 늦었지만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한 운동에 온 국민이 함께 연대하고 적극 나서길 기대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오랜 숙원인 ‘일본 국회의 공식 사죄’와 ‘일본 정부 차원의 국가 배상’, 그리고  ‘진상규명 ‘과  ‘역사교과서 서술’이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그 길이 할머님들의 짓밟힌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는 길이자 역사정의를 구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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