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민주시민>교과를 독립교과로 반영해야

연합뉴스 2011년 5월 4일자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은 OECD 가입국 가운데 ‘주관적 행복지수’가 최하위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의 행복지수는 거의 꼴찌 수준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극심한 입시경쟁교육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더욱 슬픈 일은 OECD 가입국 가운데 우리나라 청소년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역시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입시교육에 매몰된 세태도 안타깝지만 극심한 경쟁교육에 내몰린 탓인지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수준이 바닥이라는 사실은 교육자로서 충격 그 자체다. 우리의 교육이 이럴진대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교육열이 높고 교육을 받을수록 더욱더 ‘사람다움’을 간직하고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이 향상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지표도 충격적이다. 경향신문 2011년 3월 27일자 보도에 따르면 ‘관계지향성과 사회적 협력’부문 점수에서 우리나라 청소년은 0점으로 OECD 36개국 가운데 꼴찌였다. 높은 교육열과 교육수준에도 불구하고 ‘협력과 연대의 정신’이 최하위인 교육현실을 어찌할 것인가?

노르웨이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시민운동 캠페인을 일상적으로 전개한다. 세계적인 인권운동단체인 앰네스티 가입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것도 고등학생들에겐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2009년 핀란드 고등학생들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회의 당시 후진타오, 오바마를 비롯 세계 정상들을 향해 서명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을 전개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해 스웨덴 16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뉴욕에서 열린 UN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보여준 태도는 북유럽 학교교육이 능동적 시민성을 지향해 온 결과이다. 이미 15살에 그레타 툰베리는 스웨덴 의회 앞에 가서 기후문제 해결을 위한 학교파업 시위를 전개한 적이 있다.

 

▲ 2019년 12월 34세 최연소 핀란드 총리로 선출된 산나 마린(오른쪽에서 두 번째) 총리가 12월 10일 연정 내각을 발표하는 장면
19개 내각부처 장관 가운데 12명이 여성이고 재무, 내무, 교육부장관은 산나 마린 총리처럼 30대이다. 학교교육과 청소년의회를 통해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경험하면서 성장한 핀란드 청소년들은 시민활동을 시민의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출처 : 한겨레 TV)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어린 시절부터 입시교육에 시달린 탓인지 청소년기 정체성 형성에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는 시민활동 참여율이 매우 낮다. 당연히 사회문제에 대해 ‘협력과 연대의 정신’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청소년 정책연구원(2011)이 발간한 보고서에도 청소년들이 시민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은 전 영역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된 배경이자 근원적 요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민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운동과 일상의 삶이 괴리된 채 전개된 때문이다. 결국 열악한 환경에서 소수의 활동가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버티는 모양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시민활동에 대한 지식과 능력, 그리고 태도와 행동 등 모든 역량에서 현저히 떨어지는 ‘총체적 불만자’ 유형이 25.2%로 세계 평균치(13.8%)의 2배에 육박한다.

2016년 청소년 정책연구원의 보고에 따르면 ‘교실 내 토론의 개방성’ 수준이 조사대상국 24개국 가운데 24위다. 인간개발지수 18위로 상위그룹에 속한 우리나라가 ‘교실 내 토론 개방성’ 수준이 인간개발지수 99위인 도미니카공화국보다 낮게 나온다.

이러한 왜곡 현상은 학교교육의 모순과 불일치에서 비롯된다. 교육기본법엔 교육의 목적을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으로 명시했음에도 교육 현실은 비민주적인 환경과 비민주적인 교육과정으로 혼재돼 왔다.

▲ 세월호 참사를 생각할 때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학생상>을 벗어나 자신의 안목으로 현상을 비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학생상>을 학교교육은 추구해야 한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의 슬픔에서 얻는 매우 소중한 교훈이다. 교실 게시판에 부착된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세월호 포스터 (출처 : 하성환)

수직적인 인간관계와 권위주의적인 학교문화는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교육과정과 어긋날 뿐 아니라 오히려 해악과 독소로 작용해 왔다. 교과서와 학교현실의 괴리,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태도의 불일치는 교육계 해묵은 과제이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100년이 넘도록 한국 교육은 권력과 체제에 순응하는 ‘신민’(臣民) 양성을 지향해 온 탓이다.

이제 학교를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아이들이 숨 쉬고 생활하는 공간을 가장 교육적인 공간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핀란드와 덴마크처럼 ‘학교 = 행복발전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걸 즐거워하고 기다려지도록 변화시켜야 한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자기 성장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학교문화를 수평적 관계로 재구조화해야 한다.

더 이상 관심과 참여가 없는 도덕적 훈화나 통제를 위한 질서 유지와 학교 규칙을 강요해선 안 된다. 낡은 학교질서를 해체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시점이다. 학교를 그리고 교육 전반을 변화시키지 않고선 아이들의 삶을 논할 수도 없고 우리 교육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젠 그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사회문제, 즉 공동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동적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민주시민’ 교과를 가르쳐야 한다. 영국, 프랑스처럼 ‘민주시민’ 교과를 독립교과 내지 개설교과로 설정해 모든 교과의 중심교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리하여 초중등 교육과정을 이끌어 나가는 선도적인 중핵교과로 ‘민주시민’ 교과를 학교현장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일방적으로 준법의식을 강제하거나 낡은 이념교육의 굴레를 씌우는 것을 아이들에게 교육의 이름으로 강제해선 안 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나기 위해선 아이들 영혼을 자유롭게 허락해야 한다.

스스로 성장하고 스스로 관계 맺고 공동체 문제에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참여할 수 있도록 참신한 교육과정을 제공해야 한다. 2022년 교육과정 개정에 맞춰 ‘민주시민’ 교육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그러할 때 2025년부터 학교현장에 적용돼 아이들에게 ‘민주시민’ 교육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

100년 넘게 지속된 식민지 교육과 분단 교육의 왜곡된 현실 속에 아이들의 삶을 더 이상 방치할 순 없다. 낡은 질서와 체제에 순치된 톱니바퀴의 부속품처럼 살아가도록 안내하기보다 세상을 자신의 안목으로 이해하는 힘을 길러주고 재구성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 바로 ‘주권자 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게 인간다운 교육이라고 믿는다. 학교가, 우리 교육자들이 그 일을 감당할 시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2018년 1월 문재인 정부는 교육부 산하 ‘민주시민교육과’를 설치했다. 2018년 12월에 교육부는 민주시민교육을 학교현장에서 실천할 민주시민교육 정책을 발표했다. 서울시 교육청을 비롯해 진보교육감이 존재하는 광역자치단체에서도 2019년부터 민주시민교육과 관련된 부서를 신설했다. 더구나 2020년 4‧15 총선 당시 더불어 민주당은 ‘민주시민’ 교과를 독립교과로 교육과정 재구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낡은 질서와 규율에 아이들을 더 이상 가두지 말고 아이들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정치환경과 교육환경을 손질하고 교육과정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할 시점이다. 민주시민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저절로 탄생되는 것도 아니다. 농부가 한 여름 땀 흘린 수고처럼 오랜 교육활동의 수고로 민주시민이 자라날 뿐이다. 하루빨리 독립교과로서 ‘민주시민’ 교과를 탄생시켜 부박한 학교 현장에 ‘민주시민’ 교육이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하자.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hsh70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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