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대만이야기 94] 대만 사람과 사업하기(JIE WANG-4)

작성 김동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7.14  17:10:51

공유
default_news_ad1

많은 음식물이 쓰레기장으로 향하고, 지나친 섭취로 인한 질병들이 걱정되는 이 시대에도 누군가는 맹물로 허기를 채우거나 아득한 절망의 세월을 살기도 합니다.

보리밥일망정 하루 세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게 가난하던 시절, 문밖에 서 있는 걸인에게 한 종지 곡식을 건네던 어머니의 모습을 종종 떠올립니다. 그래서인지 억지로 하는 일은 참 싫어하지만,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괜히 신이 나지요.

타이베이에서 Mr 정을 만났을 때 도와줄 사람이 있다며 자리를 마련하더군요. 꽤 큰 회사에서 경영을 맡았던 L 사장이 갑자기 잘려 어려움에 부닥쳤답니다. 그동안 회장은 자본만 대고 회사 운영을 도맡았던 L 사장은 회장 아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자기를 쫓아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답니다.

당시 대만에서는 드물게 1m 80이 훌쩍 넘는 장신에 좋은 풍채, 그리고 백발인 노신사가 슬픔과 원망 어린 힘없는 눈빛으로 제 앞에 앉아있더군요. 아직 중・고등학생 아들과 딸이 있는 가장으로써 준비되지 않은 실직에 여러 밤을 불면으로 보낸 듯했습니다.

L 사장은 구멍을 뚫거나 암나사를 만드는 탭을 대만 시장에 공급하는 업체에서 근무하다 실직했습니다.

탭은 경도가 낮으면 나사산이 쉽게 마모되어 작업성이 떨어지고, 경도만 높고 인장력이 약하면 쉽게 부러집니다. 철판을 뚫는 탭으로 벽에 구멍을 내면 부러지고, 벽돌용 탭으로는 철판에 구멍을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웬만하면 알고 있지요.

여느 철강 제품과 마찬가지로 고품질 제품은 일본산이 대만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데, L 사장은 한국 제품으로 늦은 나이에 승부를 보려고 했습니다.

L 사장의 부탁으로 수소문하여 파주에 있는 S 정밀 공장을 방문하였습니다. 공장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대만의 어느 이름 없는 회사의 늙수그레한 사장이 방문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하고 친절했습니다. 공장장과 생산부서 담당자가 나와서 상담을 하는데 우선 전문가들이고, 일본어로 의사소통에 거의 지장이 없어 통역하기가 수월했습니다.

처음 거래여서 적은 수량과 많은 종류를 오퍼 했는데도 성의와 친절함이 그대로였습니다. 사장실에 함께 올라가 차를 마시며 L 사장의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의사결정권한이 있고 경험이 있는 바이어와 생산자가 직접 만나 상담을 하면 대부분 성사됩니다. 중간에 이익을 보겠다고 누군가 끼어들면 피곤하고 어그러질 가능성이 많지요.

공장 사장(회장)도 거의 자기와 비슷한 연배의 L 사장을 보고 측은지심이 생겼는지 공장장에게 잘 도와주라는 이야길 여러 번 하고, 식사 자리에도 함께하였습니다.

공장 생산 규모에 비하면 양은 적고 가짓수가 많으면 여러 단계를 거치는 과정상 생산 단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만 공장의 도움으로 거래는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다소 무리한 L 사장의 요구에도 거의 다 수용하고 항상 최선을 다해 좋은 품질의 물건을 공급해주던 공장장과 사장의 선한 모습이 기억납니다.

한국에서 공급처를 확보한 L 사장은 대만의 수요처를 방문합니다. 초창기에는 어떤 스케줄로 움직였는지 모르는데, 몇 년 후에는 매월 8일 전후로 타이베이 집에서 출발하여 작은 승용차를 몰고 대만 전역을 돌아 25일 전후 귀가합니다. 택시보다 더 많이 달린답니다.

탭을 직접 사용하는 공장이건 판매처건 매월 일정한 시간에 직접 찾아와 웃으며 인사하는 L 사장을 안 만날 수도 없고, 시험 삼아 한두 가지 써줍니다. 가격대비 품질도 괜찮고, 작업성이 나쁘지 않으면 종류도 늘어나고 당장 소용이 없는 물건도 추가 발주를 하지요. 본인 차에 물건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건네고, 없으면 집으로 연락해 부인이 물건을 보냅니다.

몇 년 안 되어 집을 확장해 옮기더군요. 두 번째 이사한 집에는 아래층에 방진 설비를 갖춘 창고를 두었고, 사이즈별 소재별 다양한 수백 종의 탭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는데, 규모가 상당했습니다. 완전히 자리 잡은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부인도 처음 보았을 때와는 달리 상당히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내가 별로 도와준 것 같지 않은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그동안 수입 총액 대비 커미션(비율은 기억이 안 남)이라면서 봉투를 주었습니다. 중국 심천에 있을 때는 돕는 일이 많지 않으니 커미션 안 받겠다고 해도 중국까지 와서 주고 가는 바람에 요긴하게 쓰기도 했지요.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모델을 하겠다던 딸이 대학에 들어가 한글을 배우더니 통역이 가능할 정도라고 합니다. 신년 초 대만에 갔을 때 L 사장이 또 봉투를 주더군요. 그 봉투를 받아 군대 다녀와 복학한 아들과 딸 학비로 보태라고 부인에게 돌려주고, 자금 출처인 부인에게 다음부터 커미션 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 왼쪽 : L 사장인 리홍즈. Mr정 연락으로 2시간 넘는 거리를 와주었습니다. Mr정 아들 부부와 함께

그 이후 거래는 없지만 그래도 만나면 언제나 반갑습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김동호 편집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기사댓글보기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