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철의 혁신학교 이야기 5) 서울신은초 개교 당시 신은 교육의 비전을 세우면서

▲ 서울신은초에서 3,4학년 아이들이 강당에 모여 다 모임을 하고 있는 모습

2011년 개교 준비를 하면서, 8월 8일에 있었던 혁신 신은초의 교육비전에서 학교 교육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역시 사람의 문제가 제일 중요한 과제였다. 기존 학교에서 학교장이 제왕처럼 군림하는 학교문화를 민주적 리더십으로 바꿔내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그런 바탕 위에 교사, 학생, 학부모 3주체가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런 전제 조건이 충족이 안 되면 학교 교육과정, 예산, 인사 등 모든 것이 과거와 같이 교장 독주로 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계 법령을 무시하거나 뛰어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법의 태두리 안에 있으면서도 교장이나 교감도 학교 구성원의 일부로서 자신들의 의견을 얼마든지 낼 수 있으되,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교사, 학생, 학부모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학교 혁신의 첫 번째 과제는 제왕적 교장의 힘을 빼내는 것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초중등 교육법에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학생을 교육한다.』라는 조항이 있었다. 이 조항을 근거로 교장들은 학교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던 것이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초중등 교육법 제20조 『④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로 바뀌면서 교장과 교사의 관계는 과거와 같은 상명하복의 군대식 관계가 많이 완화되었지만 학교도 조직이라 조직의 문화가 그리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 『① 교장은 교무를 통할(統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물론 더 구체적인 역할과 임무는 시행령에 좀 더 자세히 서술이 되어 있다. 문구상으로만 보아서는 지금도 여전히 교직원을 지도·감독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 정권이 퇴진하면서 교육부도 과거와 같은 교장 상을 민주적으로 바꾸기 원하고, 교육자치가 도입되면서 학교장들에게 민주적 학교 운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던 관행이 많이 완화된 것도 현실이다.

과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대 등 권위주의, 군사 정권 아래에서는 학교 교육도 승공, 반공교육, 교사들의 선거 동원, 새마을운동, 국민교육헌장 교육, 유신체제 선전 등과 같이 정권 이데올로기의 재창출을 위한 이념교육, 정권 홍보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당시는 교육위원회가 있어도 형식적이었고, 교육감도 임명하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임명직 교육감들은 학교를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끌고 가기 위해서는 인사권을 이용하여 교장들은 장악하고, 상부의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입시교육과 촌지가 만연하던 시절이라 소위 촌지가 많이 나오는 지역으로 인사 배정을 하고, 학교장들은 학년 배정도 초등학교의 경우는 촌지가 많이 나오는 저학년 배정을 한다든지, 주임(부장) 임용, 근무평점 등을 이용하여 교사를 장악했다. 이런 원칙에 반기를 들면 징계라는 칼을 빼들어 학교장은 통제해 왔던 것이다.

학생은 좋은 상급학교로 가고자 시험을 통하여 줄을 섰고, 교사는 승진을 미끼로 줄 세우기가 강요됐다. 학생에게 군사훈련을 시키고, 체벌을 가하고, 일제식 교육을 시키고, 학생회 등 학생 자치도 성적에 의하여 통제되던 시절을 지냈던 교사들이 4.19 교원 노조로 분출되었다. 그렇지만 5.16 쿠데타에 의하여 좌절되고,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의 철권통치에 짓눌려왔다. 이것을 깨자고 나선 것이 1986년 5.10 교육민주화 선언이다. 이를 기점으로 전국 곳곳의 YMCA를 근거지로 하는 교사모임들이 생겨나고, 87년 노동자 대 투쟁 이후에 교사협의회 운동이 전국을 휩쓴다. 이어서 1989년 전교조가 결성이 되었지만 노태우 정권의 탄압으로 수백 명이 구속되고, 1,600명 가까운 교사들이 해직되기도 하였다.

당시 전교조는 민족, 민주, 인간화의 ‘참교육’을 부르짖으며, 교육민주화, 촌지거부 운동, 학생 인권 존중, 입시 위주의 줄 세우기 교육 반대 등 많은 교육 개혁의 의제들을 던졌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교장 선출 보직제’다. 학교 운영이 비민주적으로 되는 가장 큰 요인은 정권에서 임용된 교장들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학교 행정을 하기 때문에 교육민주화가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던 것이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섰지만 교원노조는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많은 해직교사가 전교조 탈퇴각서를 쓰는 형식으로 학교 현장으로 돌아갔다. 1991년 노태우 정부시절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교육위원회 제도가 도입된다. 지방자치단체의 교육 관련 사항을 심사·의결하는 기관이다. 교육자치제의 하나로 일반 행정에서 교육 행정을 분리해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지방교육의 특수성을 살리기 위해 도입되었다. 교육위원회 제도가 도입이 되면서 지자체 단위에서의 교육민주화는 약간 숨통이 트이긴 했다. 그렇지만 학교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교육위원회 제도는「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따라 특별시와 광역시, 각 시·도 의회에 설치되었으나 2010년 해당 법안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2014년 6월 30일 이후 폐지되었다.

교육위원회는 1949년 「교육법」이 제정되면서 처음 구성되었다. 당시 교육위원회는 합의체 집행기관으로 1961년 5·16 쿠데타로 인해 기능이 정지되었다가 1963년 「교육법」이 개정되면서 다음 해 다시 구성되었다. 본격적인 지방교육자치가 시작된 것은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1991년부터다. 같은 해 지방선거가 실시되면서 지방의회가 구성되었다. 집행기관이었던 교육위원회는 심의·의결기관으로 성격이 바뀌었으며 교육위원회의 집행기관 역할은 교육감이 담당하게 되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5.31 교육개혁 조치를 발표하면서 1996년부터 학교운영위원회 제도가 도입 되었다. 학부모위원, 교사위원, 지역위원, 교장은 당연직으로 하여 학교의 학사 및 예·결산 등 인사를 제외한 모든 사항을 심의할 수 있는 기능을 부여하였다. 그렇지만 학교운영위원회 구성에서부터 교장의 입김이 들어가서 교장에게 협조적인 학부모, 교사, 지역 위원들로 구성되는 학교가 대부분이라 크게 학교 민주화에 기여하지 못했다. 여전히 학교장의 권위적인 분위기는 바꾸지 못했다. 교육의 큰 방향도 신자유의적 흐름에 편승된 수월성 교육을 중심에 놓았다. 여전히 교육의 공공성은 저 멀리 밀려있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단체행동권이 없는 교원 노조를 인정하며 전교조도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 학교 단위에서 분회활동 등을 할 수 있었지만 제한적이었다. 지방자치가 활성화되면서 교육위원회가 많이 활성화되고,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이 되었지만, 학교의 권위적인 문화는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교장을 중심으로 하는 이런 권위적인 학교문화를 바꿔내기 위한 운동이 바로 경기도 교육감으로 선출된 김상곤 교육감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다. 그 핵심이 학교 민주화이고 교육의 자율성 확보를 통한 행복한 학교 만들기였던 것이다.

혁신학교에서는 학교장의 이러한 권한을 많이 내려놓고 교사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면서 학교 운영을 하라는 것이다. 즉 교장 선출 보직제는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정도로 교장의 권력을 내려놓게 하여 학교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권한은 별로 없으면서 책임만 지라는 것이냐는 불만을 나타내기도 한다. 혁신학교는 바로 이런 교장, 교감 등 학교 관리자들의 전횡을 막으면서 교사와 학생의 발언권을 높여 학교의 민주성을 확보하여 소신껏 교육할 수 있는 학교문화를 만드는 것이 혁신학교가 가고자 하는 길이었다.

▲ 학생 다 모임에서 사회와 서기도 즉석에서 선출하여 진행한다.

‘교무회의’를 ‘교사 다 모임’으로 명칭부터 바꾸고 교사의 의견을 최대한 모아내

교무회의가 일방적인 교장의 지시, 전달하는 회의가 아니고 누구나 의견이 있으면 자유롭게 발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표결도 할 수 있도록 바꿔내는 것이다. 회의실도 과거처럼 교장, 교감을 향하여 교실에서 학생들이 칠판을 향해 앉아 학습을 하는 것과 같은 구조가 아니라, 교장, 교감을 포함하여 모든 교사들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얼굴을 마주 보면서 자유롭게 회의를 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꾼 것이다. 모든 교원이 다 모여서 회의를 한다고 하여 혁신학교들에서는 ‘교사 다 모임’, ‘학생 다 모임’, ‘학부모 다 모임’으로 명명하여 교육주체 간의 소통과 민주성을 확보하는 것이 혁신학교의 첫째 변화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많은 혁신학교가 교사만이 아니라 교육 3주체인 학생, 학부모도 '다 모임'을 조직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운영규정을 만들어 그것에 근거하여 다 모임이 활성화 되도록 한 것이다. 

거기에 과거와 같이 권위적인 명칭인 ‘교무실’도 ‘교육지원실’ 등으로 바꾸었다. 과거에는 교장, 교감 밑에 부장을 두고 학교 업무를 추진하던 것을 ‘교육지원팀’, ‘교육과정팀’, ‘학교문화혁신팀’으로 구분하였다. 학년 운영도 부장 정원이 적어 어쩔 수 없이 저, 중, 고 2개 학년씩 묶어 각각 1인의 팀장을 두고 운영하기로 하였다.

교사들이 행정업무 처리에서 교육활동을 전념할 수 있도록 바꿔

그동안은 교사가 학생을 교육하는 업무보다 교육청 공문처리와 학교 행정업무, 심지어 학교 관리업무까지 나누어 맡아서 처리해 왔기 때문에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없었다. 이것을 혁신하여 교사는 교육활동에 전념하고 행정 처리를 하는 업무는 일부 교사가 맡도록 하였다. 대신 그런 업무를 맡는 교사의 수업시수는 일반 교사의 절반 정도만 담당했다.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팀장은 해마다 순환하면서 맡기로 결의하였다. 그렇지만 모든 교사가 어느 한 팀에라도 의무적으로 들어가도록 하여 해당 팀에서 학교 일을 기획하게 하였다. 교육청을 향해서는 불요불급한 공문은 최대한 내리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도 병행해 나갔다. 학교에 따라서는 교장도 이런 업무처리에 투입이 되기도 하였다.

▲ 혁신학교에는 '교사 다 모임'도 있지만 '학생 다 모임'도 있어서 직접민주주의 방식의 회의를 한다.

당시 서울신은초에서 결의되어 시행되었던 일부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 공문처리는 가급적 교감과 해당 팀장이 교무, 과학, 돌봄 등 보조원 등의 도움을 받아 중심이 되어 처리함을 원칙으로 하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담당 교사가 처리해야 한다.

- 이를 위하여 공동체 외의 학교 운영팀장들의 교수, 학습 시수는 적정하게 경감되어야 한다.

- 학교 업무를 기존의 혁신학교들 중 일부는 학년 단위로 배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대한 판단은 충분한 연구와 다 모임 회의를 통하여 결정한다.

- 공문수발 등을 위한 공문 처리 등에서 결재는 가급적 전결과 위임 절차를 최대한 활용하고, 학교 예산의 집행과 관련된 것도 50만원이 넘는 금액의 것만 학교장이 결재를 하고 20만원 미만의 금액은 행정실장과 해당부장의 전결로 집행할 수 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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