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로서는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제레미를 예의주시하고는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사고를 칠 줄은 몰랐다. 제레미와 사귀게 된 것도 그를 근접 감시하기 위한 목적이 없지 않았던 터였다.

바짝 긴장한 클레어는 인터폴 파리지국장 자크베르에게 긴급 보고를 했다.

 

 < 제레미 M. 랜들에 대한 긴급 보고 >

1. 한국 출생으로 10년 전 영국으로 귀화하여 영국국적 취득. 한국이름은 모연중. 부친은 한국인 모숭산, 모친은 프랑스계 영국인 제인 W. 랜들이며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거주. 최근 6개월간 유럽보안용역업체의 계약직으로 인터폴 파리지국에서 근무. 인터폴 신분증을 위조하여 한국으로 잠입한 것으로 추정. 

2. 특이사항 : 글로벌 제왕협회라는 조직에 대해 탐문하고 있었음.

3. 참고사항 : 본인이 발해 왕국의 후손이라고 주장한 바 있으며

  글로벌제왕협회와 연관이 있어 보임.  - 이상 끝

 

인터폴 기밀 유출과 자신의  usb가 사라진 사실은 구두로 보고했다. 보고하면서 클레어는 제레미와 있었던 일에 대한 자괴감을 느꼈다. 자신을 '풍향계 위의 인어공주'처럼 취급을 한 것에 대해 약간의 분노가 일기도 했다. 나중에 제레미가 다시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 풍향계 위의 인어공주

보고를 받은 자크베르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클레어를 힐책했다.

"전혀 클레어답지 않군 그래.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기 어렵겠는걸."

"면목 없습니다, 국장님.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당분간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근신하도록~!"

클레어가 국장실에서 나가자마자 자크베르는 어딘가로 급하게 전화를 했다. 자크베르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예인 오토왕이었다. 제레미에 대한 간략한 내용을 언급하며 자세한 내역은 보고서로 대체하겠노라고 했다.

자크베르는 클레어가 작성한 보고서에 몇 가지 의견을 덧붙여 오토왕에게 보고서를 송부했다. 자크베르에게 보고를 받은 오토왕은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글로벌제왕협회를 탐문하면서 인터폴 형사에게 접근하여 신분증과 기밀 사항을 빼내고 한국으로 잠적했다면 분명 한국의 한강왕에게 변고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구나 그가 발해 왕국의 후손이라면 최근의 한강왕위 계승 경쟁구도에 뛰어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호태종과 친분이 두터운 오토왕은 한국 고대 역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고 한강왕위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일단 자크베르에게 기밀 유지와 입단속을 시켜야 한다.

"자크베르, 이번 일은 공식 보고에서 삭제하고 비공식으로 처리해주길 바라네. 클레어에게도 이 사실에 대해 함구하라고 지시하고 별 일 아닌 것으로 덮어두게."

자크베르에게 부탁하는 듯 했지만 사실은 지시에 가까웠다. 오토왕이 자크베르를 인터폴 파리지국장에 앉힌 영향력은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비선 라인을 동원하여 제레미의 한국인 부친과 영국인 모친에 대해서도 조사해주게. 그들이 유럽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면밀하게 파악하게."

자크베르는 클레어에게 이번 일을 없었던 일로 할 테니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발설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한편 제레미의 부모에 대한 내사에 들어갔다.

클레어는 인터폴 파리지국에서 좌천되거나 최소한 중징계를 받을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깐깐한 자크베르가 덮으라고 지시하자 안도하는 마음이 들긴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크베르가 이번 일을 덮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다.

자크베르에게 지시를 내린 오토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태종에게 제레미에 대한 보고서를 <TOP SECRET/ TOP URGENT>(극비사항 긴급보고)로 분류하여 텔레그램 비밀대화 채널을 이용하여 송부했다. 아울러 호태종에게 각별히 주의할 것도 당부했다.

한강왕위가 79대 한강왕에게 넘어갔지만 아직까지 호태종과 친분이 더 두텁다. 더구나 한국은 글로벌제왕협회의 창단 멤버일 뿐 아니라 주요 맹주국이다. 한강왕에게 변고가 생기면 글로벌제왕협회의 근간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오토왕으로서도 호태종과 79대 한강왕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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