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이장이 들어서고 행복마을사업 시작하다
‘
도끼부인’ 고은광순 달달한 시골살이
<새 이장이 들어서고 행복마을사업 시작하다>
1997년 창간되어 10년 후에 폐간된 페미니스트 잡지 이프(웃자 놀자 뒤집자 if)에 호주제폐지운동을 하며 내가 겪은 마초(가부장 문화에 찌든 폭력적인 남성우월주의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한 적이 있다. 연재물 큰 제목이 “고은부인 도끼 들었네.”였는데 연재가 계속되자 사람들은 나를 ‘도끼부인’이라 불렀다.
내가 아무리 ‘고은부인’이라고 정정을 해 주어도 ‘도끼부인’으로 부르기를 고집하던 사람들은 내가 지금 시골에서 이렇게 달달하게 살고 있다는 걸 짐작이나 하려나? 한 때 ‘도끼부인’ 소리를 듣던 내가 8년 전 충북 옥천군 청산면 삼방리에 귀촌하여 어떻게 달달하게 살고 있는지 이제부터 독자 여러분께 공개하려고 한다.
학생운동으로 제적된 후 다시 한의대에 입학하여 한의사가 되었으나 의료계의 비합리성에 연속적으로 투쟁하느라 나는 늘 분주한 삶을 살았다. 귀한 인연으로 명상공부를 하게 되었고 서울에 남편과 아이들을 둔 채 스승의 안내로 2012년 청산 삼방리의 산 초입에 한의원과 살림집을 지어 이사했다.
삼방리는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두 개의 마을 장녹골과 가사목으로 나뉘어 있다. 두 마을을 합해도 40여 세대, 60여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마을이다. 그 해 겨울 총회를 한 대서 마을회관으로 갔더니 결산보고를 놓고 주민들 간 언성이 높아지는 게 아닌가. 감사가 있으면 안 싸울 거라는 말을 했다가 바로 감사로 지목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 이장은 일 년 내내 감사를 회피했고 면장 지시로 겨우 내 앞에 앉은 이장과 총무는 내가 요구한 은행 입출금내역과 잔액증명을 내어놓지 않았다. 그 대신 ‘왜 통장을 보려하는가, 통장은 총무 개인 것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없다.’ 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들이 내어놓은 것은 잔액이라며 수표를 사진 찍어 복사한 것 한 장. 아아... 그들은 마을 통장도 만들지 않은 채로 동네 노인들을 속여 왔던 것이다.
감사보고서를 제출했지만 모두 친인척으로 엮인 동네에서 그는 자기 마음대로 감사를 교체해버리고 건재를 과시했다. 다음 해 총회를 벼르고 있었는데 오후에 한다더니만 아침에 몇 집 연락해서 몇 사람 앉혀놓고는 총회를 끝내고 가 버렸다고 했다. (그는 결혼 후 줄곧 옥천군을 떠나 영동군에서 살면서 가끔씩 찾아와 이장노릇을 했다.) 땅 주인은 죽고 먼데 사는 딸들은 고향을 찾지도 않는다는데 이장은 그 땅을 특별법이 가동되면 우선적으로 구입할 권리를 보장해준다는 각서를 써 주고 귀촌인들에게 시가대로 돈을 받아 챙겼다.
그를 자주 만날 수도 없으니 나는 그에게 핸드폰으로 가끔 한 줄 문자를 날렸다. “나는 맑고 밝은 청산에서 살기 위해 이사를 왔습니다.” 그는 몇 년을 나와 만나기를 피하더니 재작년에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인구가 줄어드는 시골마을에 수년 전부터 지자체에서 돈을 지원하며 공동체를 살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새 이장을 통해 알게 되었다.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
일 년에 300만원을 지원해준단다. 곧 바로 신청했고 충북에서 선정한 20군데 마을의 하나가 되어 올 4월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가을에 심사를 해서 50% 안에 들면 2단계 행복마을 사업을 할 수 있게 되고 지원금도 10배로 늘어난단다. 운영위원회를 조직하고 운영위원장이 되어 원하는 사업들을 조사해서 청구서를 제출했다.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은 이장은 전적으로 뒤를 밀어주겠다고 약속 했다.
우선 저수지를 따라가며 나무를 심고, 어버이날 잠깐 대접받던 어르신들을 위한 특별한 날 행사를 준비하며, 벽화를 그리고, 요가를 배우기로 했다. 풍물을 배우고자 했으나 모든 강사는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모든 지출은 견적서, 납품서, 카드 영수증 3박자를 갖추어야 했기 때문에 사업내용을 수정했다.
3백만 원 쓸 게 뭐 있남? 가사목은 놓아두고 장녹골만 하는 게 어떨까?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되면 소외된 서러움이 얼마나 클 것이며 얼마나 아플 것인가. 지켜질 수 없는 비밀일 터이니 애당초 다 포용하는 것이 옳다.
적은 돈이지만 떨어져 있는 두 마을이 함께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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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순서
▶ 1) 새 이장이 들어서고 행복마을사업 시작하다,
2) 행복마을 만들기-청소부터 시작하고 나무를 심었다.
3) 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를 만들고 행복마을잔치
4) 요가 수업과 벽화 그리기 밑 작업
5) 서울에서 내려온 한 명의 전문가와 자봉 학생들
6) 해바라기와 포도, 연꽃
7) 동학도들이 살아나고
8) 삼방리의 딸 천사는 다르다.
9) 가사목의 의좋은 형제는 다르다.
10)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11) 생뚱맞은 파도타기?
12) 개벽세상이 무어냐고?
13) (이어집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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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호구 해결 위해 정치적으도 인간걱으로도 다 싫어하는 박정희 신당동 사저 문화재 안전관리인으로 근무하니 못내 부끄러움.
기대가 난망하지만 본인이 만일 귀촌 한다면 고은 기자님 동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