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6년에는 배 만드는 변산의 소나무가 이미 다 없어져서 완도로 자리를(배 만드는 장소) 옮겼다니 완도가 다 떨어지면(배 만드는 소나무가 다 없어지면)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임금이 걱정했던 기록으로 보아 국역왕조실록, 성종 5년(1474) 10월 28일. 완도에서 배를 만든 일들이 계속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완도에는 그만큼 소나무(황장목)와 배를 만드는 목수들이 많았었음을 알 수가 있다.

1505년에는 전라도에서 보낸 잉박선(芿朴船, 너벅선, 廣舟) 19척, 토선(吐船) 12척, 착어선(捉漁船) 2척을 내수사에 소속시키라고 국역왕조실록, 연산군 11년(1505) 8월 15일. 했던 것으로 보아 나룻배나 어선까지도 완도에서 만들어 내수사로 보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 완도에는 대규묘의 조선소가 있었을 것이고, 선장(船匠)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황장목(黃腸木), 적송(赤松), 홍송(紅松)등으로 불리지만 적송은 일본식 표기이다. 순수 우리말은 참솔 즉 참소나무라고 한다.

이는 필시 장보고시대부터 있었던 조선소가 그 맥을 이어왔을 것이고 백제선에 그 기초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선소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완도의 죽청리(竹靑里)와 대야리(大也里)에 부추언(艀堰)이라고 부르는 지명이 전해오고 있는데, 이곳은 장도(청해진 본영)의 좌우에 있어 배를 만들었거나 수리 등을 하였던 장소가 확실하다 하겠다. 이렇듯 우리에 선조들의 뛰어난 기술이 후대에 그대로 전승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조선술을 일본에서 배워 온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1200여 년 전 장보고가 전 세계를 누비며 다국적 무역을 하였던 시기에 일본의 구법승 엔닌은 당나라를 오갈 때 우리의 배와 우리의 선장이 아니었으면 다닐 수가 없었던 당시의 기록을 <입당구법순례행기>라는 책으로 남겼다.

어디 그뿐인가 응신천황 31년 8월조에는 신라가 선장(船匠)을 일본으로 보내어 저명부의 시조가 된 일, (田溶新(1989), 완역 일본서기, 권10, 응신천황 31년 추8월조 181쪽, 일지사), 안예국에 명하여 백제선 2척을 만들게 했던 일들을 보면 (국역왕조실록, 권25, 백치원년(650) 동 10월 463쪽), 분명 저명부의 시조는 신라인이 아닌 백제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라인에게 신라선을 만들게 해야 옳은데 신라선이 아닌 백제선을 만들게 하였던 것은 이 사람들이 백제인이었기 때문에 그리하였을 것이다. 또한 백제선이 다른 배에 비하여 성능이 우수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 우리의 기술이 일본에 전해졌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 우리가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온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생활 속에 파고 든 그들의 문화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배에 관한 것들을 모두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배에는 모든 것이 원칙이 있다. 그런데도 모형 배 몇 개 만들었다고 배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자기 마음대로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놓고 이것이 정답이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잘못된 것을 후대에 그대로 전해지게 하는 것은 세상을 먼저 살다 간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크나큰 죄이다. 이제 학자나 기능인 모두는 마음을 비우고 진정한 우리 것이 꾸밈없이 본래의 것대로 후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들은 우리 것을 보고 감탄을 연발하는데 정작 우리는 우리 것을 천시하고 외면하는 이러한 풍토는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할 것이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전통기능인들이 마음 놓고 자기분야에서 일을 하고 그 기능을 글로 쓰게 하여야 한다.

서툴러도 좋다. 아니 당연히 서투를 수밖에 없다. 많이 배우지 못했으니 당연한 것이다.기능인과 학자들이 마음을 비우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능을 글로 쓸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나서야 한다.

그것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를 보전하고 세계만방에 널리 선양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건국이념을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삼았던 자랑스러운 우리의 조상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후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마광남 주주통신원  wd3415@naver.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키워드

#마광남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