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청소 하고 나무 심었다.

2) 마을 청소 하고 나무 심었다.

마을청소부터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3월 16일 이장님 아침 방송 듣고 모두 집게 따위들을 들고 동네입구에 모였다. 귀촌한지 8년 만에 처음으로 겪는 마을 공동 작업이다. 마을 전체를 위해 무언가 함께 작업한다는 게 시골에서야 흔치 않은 일일 것 같은데 아니... 이사 오고 8년 만에 처음이라니.

컨설팅 회사 부장님에게 '300만원을 가지고 일 년 동안 써 볼 게 뭐 있겠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돈만 가지고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고 답했다. 아... 이런 게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꽁초를 줍고, 찌그러진 깡통들을 주웠다. 한 마을에 살면서도 건성건성 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함께 작업을 하며 비로소 진짜 이웃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밀려들었다. 차로 지나칠 때는 몰랐지만 다 줍고 보니 한 트럭이 되었다. 자루는 깡통 병 꽁초 플라스틱 따위로 가득가득 찼다. 주변의 산과 논밭을 새삼 둘러 보았다. 자연은 그 많은 잎과 꽃과 열매와 씨앗들을 생산하고 떨구어도 쓰레기가 되지 않는데 우리가 주워 담은 쓰레기는 모두 인간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니...

▲ 귀촌 8년차. 마을청소는 처음으로 경험한 공동작업이다.

통장 입금된 돈 300만원 중에 제일 처음 지출된 건 식목일 전후에 저수지를 따라 심게 될 나무 구입비용 100만원. 사전에 여러명 뜻을 모아 냉해에 강하다는 적배롱나무와 빨리 위로 자라면서 저수지 풍광을 가리지 않을 측백나무 문그로우 묘목 각 90그루씩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온라인 자동이체 했더니 아뿔싸! 카드로 결재하면서 동시에 견적서와 납품서도 받아야 한단다. 팩스로 받는 것도 안 되고 인주 묻힌 도장이 찍혀야 한다고.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부정을 막기 위해서 고육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일 터이니 빨리 받아들이는 게 공무원이 생각하는 주민역량강화일 것이다.

도로변 가로수들을 살펴보니 대개 6미터 간격으로 심어져 있었다. 나무를 심기 전날 붓에 먹을 찍어 일곱 발자국(4.2미터) 마다 가드레일에 O, 1 표시를 해 두었다. 문그로우는 좁고 높게 올라간다니 8.4미터 마다 심고(1 표시한 곳) 사이사이에 배롱나무를 심으려는(O 표시한 곳) 것이다. 4월 3일 나무 심는 날, 마을회관은 코로나로 폐쇄되어 집에서 김밥을 쌌다. 날씨도 풀렸으니 나무 심는 야외작업을 하면서는 김밥 먹는 게 제격일 듯 했다.

▲ 나무를 심는 동안 우리는 김밥을 준비했다. 아암...4월 야외작업에는 김밥이 제격이지.

얼마 전에 누군가에게 시금치를 많이 얻었기에 무엇에 쓸고 하다가 집에서 대충 재료들 준비해서 단체로 침을 맞고 있는 가사목 왕언니들과 함께 김밥을 만들어 먹었다. 어머니는 소풍 가는 날은 6남매 모두의 도시락에 김밥을 싸 주셨으니 내게는 김밥 싸는 모습을 보는 것도 먹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가사목 회관 짓고 18년 만에 김밥 싸는 건 처음 보는 일이라거나, 자식들 소풍 갈 때 한 번도 김밥을 싸주지 못했다는 왕언니들을 보면서 소박하게라도 가끔은 함께 싸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부지런히 60줄 김밥을 싸고 있는데 벌써 작업이 끝났다는 전갈이 왔다. 가드레일에 O, 1을 표시한 덕일까. 180그루 묘목을 심는데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마른 풀 더미 위에 둥그렇게 삼삼오오 앉아 함께 먹는 김밥. 비록 많은 밥을 하느라 설기도 하고 탄 냄새가 나기도 했지만 웃으며 함께 먹는 김밥은 꿀맛이었다.

▲ 나무를 다 심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김밥을 썰어 먹었다. 이게 김밥이여, 꿀이여?

나무 심은 뒤 물을 주었다. 농촌이다 보니 트럭이며 커다란 물통이 쉽게 동원되었다. 덕분에 객지에 나가 살다가 3년 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C씨 집에 처음으로 가 보았다. 마을회관에서 잠깐 마주치며 눈인사만 하던 사이. 이름을 들어도 금방금방 잊어버렸던 사이. 그런데 나무에 물을 주며 통성명도 하고 나이도 물으며 슬슬 반말로 농도 지껄이게 되었다. 한 동네에 살게 된지 3년이나 지났는데, 집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는데,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몰랐는데... 이렇게 슬슬 귀촌인과 귀향인과 귀농인과 주민들이 섞여들었다. 오호라. 이것 또한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이로고.

간만에 내려온 남편이 저녁을 많이 먹었다고 산책을 나가잔다. “네압!‘ 큰 소리로 대답하고 조용히 호미와 괭이를 챙겨 따라 나섰다. 나무 주변에 홈을 파 주어야 물 주었을 때 흘러내리지 않고 나무 주변 흙이 조금 더 촉촉해질 수가 있다. 도로가로 내려와 남편에게 호미 하나를 건네주고 조용히 시범을 보여주었다. 눈치 빠른 남편이 군소리 없이 나무 앞뒤로 땅을 팠다. 어떤 건 심을 때 홈을 파두어 그냥 지나쳐도 될 것이었는데도 남편은 확실하게 구덩이를 파느라 꾸물거렸다. “거긴 그냥 둬두 된다니께!” 말은 그렇게 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 "거기는 안 파도 된다니께!" 말은 거칠게 나가도 속으로는 감사할 따름이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대로 모시겠다는 핑계로 남편과 아들들을 서울에 남기고 갑사동네로 떠났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회색빛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명상스승의 안내로 뿌리를 내리게 된 청산 삼방리. 서울에서 함께 살 때는 곧잘 투닥거리던 사이였지만 혼자 청산에서 살게 되니 어쩌다 만나는 서방님과 투닥거릴 일이 사라졌다. 나도 모르는 일이지만 언제 부터인가 남편이 무언가 요구를 하면 “네압!”라고 소리를 크게 지르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남편은 시끄럽다고 정색을 하며 조용조용히 하란다. "네압! 알았습니닷!" 서울에 가서 길을 막고 물어봐라. 매번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대답해주는 마누라가 어디 흔한지.

 

연재 순서
1) 새 이장이 들어서고 행복마을사업 시작하다,
2) 행복마을 만들기-청소부터 시작하고 나무를 심었다.
3) 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를 만들고 행복마을잔치
4) 요가 수업과 벽화 그리기 밑 작업
5) 서울에서 내려온 한 명의 전문가와 자봉 학생들
6) 해바라기와 포도, 연꽃
7) 동학도들이 살아나고
8) 삼방리의 딸 천사는 다르다.
9) 가사목의 의좋은 형제는 다르다.
10)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11) 생뚱맞은 파도타기?
12) 개벽세상이 무어냐고?
13) (이어집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고은광순 주주통신원  koeunk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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