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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하늘이 엎어진 날

작성 권말선 주주통신원 | 승인 2020.08.10  02: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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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엎어진 날

                  - 권말선

 

버스 창 밖으로 비가 억수로 퍼붓습니다
페이스북을 엽니다 
폭우에 홍수, 여기도 온통 비소식입니다
전 국토에 물난리가 났습니다
큰, 큰물이 산과 집, 길
논과 밭과 나무와 자동차를 쓸고
다리와 강을 타넘고
온갖 농작물을 헤집어놓고
게다가 소를
사람을
어떡하면 좋을지 
마음에도 철철 비가 옵니다

버스가 편도1차선 시골길 정거장에 멈춥니다
할머니 한 분이 오르십니다
비옷에 장우산, 큰 수레를 얹으며 힘겹게 올라
운전석 뒷자석에 조심스레 앉으십니다
“할머니, 내리는 문 가까이 앉으시면 이따 내리기 쉽지요.”
기사님 말씀에 천천히 내 앞자리에 옮겨 앉으십니다
할머니가 앉으시길 기다렸다 버스가 다시 출발합니다
할머니도 나도 조용히 창밖을 바라봅니다
두어 정거장 지났나, 
할머니가 휴대전화를 꺼내십니다
받는사람 목소리가 다 들리는 전화음

- "어, 인났냐?"
- "응"
- "할머니 인제 나왔어, 밥 차려놨다 먹어라."
- "알았어요."
- "반찬 새로 해놨으니까 꺼내먹고, 국은 따시게 데워먹어."
- "알았어요."
- "그냥 먹지말고 꼭 데워먹어, 응?"
- "알았다니까, 찾아먹을게요."
- "
… 할머닌 너 때문에 사는거야, 잊지말어, 꼭 밥 찾아먹어야 돼."
- "알아요, 먹을거예요."
- "그래, 알았어. 할머니 갔다올게."
- "네, 잘 다녀오세요."

‘할머닌 너 때문에 사는거야’
창 밖에 보이던 비와 풍경과 폭우의 근심이 일순 사라지고 
내 어머니와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퇴근하는 나를 보자마자 ‘왔냐, 밥 먹어라’시던 어머니 얼굴,
출근하며 ‘학교 갔다오면 밥 꼭 챙겨먹어라’며 바라보던 아이들 얼굴

할머니는 잠시 후 또 전화기를 들고
- "밥 챙겨 먹어야 돼, 비 많이 오니까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라."
손녀딸에게 당부를 하십니다
버스가 종점에 다다르기 전 내릴 채비를 마치고
버스가 멈췄을 때 얼른 할머니에게서 짐을 받아 내렸습니다. 
내리는 계단 세 칸 뿐인데
수레는 어찌나 무거운지 앞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아 끙끙대며 조심했습니다

비옷에, 장우산에 그래도 젖을 만큼의 폭우를 뚫고 쇠덩이 같은 수레를 끌고 
할머니, 어디를 가시나요?
살아오는 길, 살아갈 길 두렵지 않으셨나요?
어느 순간 두려움이 앞을 콱 막진 않던가요?
네, 그러셨겠지요. 
늘상 몇 번이고 되풀이되었을 할머니 걱정을
조용히 다 받아안는 철든 손녀딸 덕분에
고된 인생길 힘을 내며 걸어오셨겠지요
앞으로 비가 얼마나 더 올지 두렵고 슬픕니다만
할머니, 비 맞으면서도 무거운 수레바퀴를 굴리며 살아보아요
세상 어떤 두려움보다 강한 힘, 손녀딸이 있잖아요
할머니가 지은 따끈한 밥 한 숟갈
손녀딸 입에 들어가는 것만 보면 웃음이 절로 나시잖아요
그 어떤 인생의 무게가 그 기쁨을 앗아갈 수 있을까요

비가 참 너무 많이 와요
인간의 이기심때문에 지구가 인간을 벌하는 비래요
비는 누굴 가려 퍼붓지 않네요
이기심과 욕심 없이 살았던 사람들에게 더 아픈 비지만
햇살같이 어여쁜 사랑하는 이의 웃음을 위하여
그 입에 들어가는 밥 한 숟갈의 행복을 바라며
오늘도 수레를 끌어보아요
엎어진 하늘을 일으켜 보아요

할머니, 고맙습니다.

 

▲ 비 피해가 너무 큽니다. 함께 힘 모아야 할 때입니다.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권말선 주주통신원 kwonbluesun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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