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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교정을 꿈꾸며 (3)

작성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 승인 2020.08.27  21: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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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보다 무서운 '그놈들'

김 선생은 평소 별 말이 없는 분이다. 접때 집안일로 나오지 못한 적이 있다. 그걸 기억하고 오늘 서너 가지 빵을 골고루 사 오셨다. 바쁜 걸음 마다하지 않고 당신이 사는 답십리동에서 꽤나 맛좋기로 이름난 빵집까지 가셨던 모양이다. 그런 분이 갑자기 사진을 보여준다. 지난 8월 11일에 모기한테 물린 자국이란다. 이틀 뒤에 찍었다는데 그만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빵을 먹다 말고 눈들이 휘둥그레졌다.
사진만 보고도 그만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모기가 좋아하는 단피가 있다고 들었지만
어쩌자고 이렇게 70여 군데나 짓씹어 놨을까

내 피는 시금털털해서 모기들이 피했다고 치더라도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했는데
일곱 중에서 한 사람만 이렇게 초토화시키다니
이놈들은 분명 보통내기가 아님이 틀림없다.
필시 고엽제를 맞고도 살아남은 별종이 아니라면
미국산 괴물, 맘모스모기가 예까지 출정 나온 걸까?

살다 살다 이런 광경 어디 가서 보겠는가
사람들아, 이런 처지 누구한테 하소연할까
대명천지 수도 서울, 초등학교 교정에서 말이다...

텅 빈 교정, 우리를 반기는 아이들이 따로 있다

오메, 징한 것들
사람 좀 봐감시로 뜯어묵제
참말로 겁나게도 좃아부렀네
지 피 아니라고
한도 끝도 없이 빨아묵었구만
배터져 뒈질 새끼들
포 뜨고 젓 담가 조리돌리기 전에
바비 따라 도쿄에서 워싱턴까지
뒤돌아보지 말고 싸게싸게 날아가라.

일찍이 나옹화상께서는 ‘蚊子(모기)’에게 점잖게 한 마디 하셨다. 아래는 ‘山谷(伯草) 한국화 그림방’에서 원문을 옮겨 적고 이를 다시 풀이한 것이다.

不知氣力元來少(부지기력원래소)
喫血多多不自飛(끽혈다다부자비)
勸汝莫貪他重物(권여막탐타중물)
他年必有却還時(타년필유각환시)

애당초 기력이 약한 줄 모르고
양껏 피를 빨더니 날지도 못하네
남의 소중한 것 부디 탐하지 마라
언젠가 반드시 되갚을 날 오리니

한편, 다산 선생은 ‘증문(憎蚊 : 얄미운 모기)’에서 “몸통도 그리 작고 종자도 천한 네가, 어찌해서 사람만 보면 침을 그리 흘리느냐”고 질타했다. 이는 분명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탐관오리들을 꾸짖는 소리이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모기와 같은 말단 관리 횡포에 분노하면서 거대 권력의 횡포에 침묵하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글이다.

▲ 흡혈은 암컷에 한정되고, 수컷은 식물의 즙액(汁液)이나 과즙(果汁)을 빤다. 모기의 암컷이 흡혈하는 이유는 알을 낳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네이버)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노회하고 검질기로야 어찌 ‘그놈들’을 당할까마는
그래도 한 가지 일념통암(一念通巖)의 정신은 본받아 마땅하다.

순간의 실수는 곧 죽음이라
조상 대대로 수억 년 동안
수천 수만의 시행착오를 겪었을 터
그 때마다 수천 수만의 주검을 거두면서
맹세코 입술을 깨물면서 피눈물로 다짐했겠지.

고것이 청바지철벽을 우습게 알고
소가죽도 쉬이 뚫을 수 있는 기량을 쌓기까지
신경 한 가닥 건드리지 않고
질겨빠진 쭈구렁살 살가죽을 찔러
단번에 핏줄벽 뚫고 침을 내리꽂기까지
혈액 응고 방지제를 투여하고
혈관을 확장하는 분비물까지 내뿜으면서
느긋하게 피를 족족 빨아먹기까지는
있는 머리 없는 머리 쥐어짜면서
나름 죽을 똥 살 똥 사력을 다했으리라.

그리하여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퍼붓고, 퍼붓고 싶은 대로 거동하는 난동꾼 되어, 나라가 지꺼라고 뇌까리며 하나 된 대한의 힘을 보여주자고 들쑤시는 사특한 ‘그놈들’이 젤 부러워하는, 최첨단 시스템과 정보통신망을 고루 갖춘 만능돌 주둥이를 가진 괴물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여섯 개나 되는 침을 입 속에 감추고 사는 요놈들과 달리, ‘그놈들’에게는 가진 입이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못 할 말 없고 못 할 짓 없는, 모기 다리에서 피 뽑아 먹을, 선량한 백성 옆구리 지르고 메감지 비틀고, 있는 구멍 없는 구멍 모조리 까발리며 고혈을 짜내는 ‘그놈들’이, 이젠 그 더러운 입으로 자유 대한의 DNA 구조마저 바꾸려 한다...

바비야, 저 더러운 것들 좀 안 되겠니

좋은 세상이다. 아무 말을 해도 들어주는 이가 있다. 한 입으로 두 말 해도 무신경하다. 이놈이 저 말 하면 발호하면서 저놈이 이 말 하면 삿대질이다. 얼척없는 세상이다. 이놈 저놈 그놈 할 것 없이 자유를 말하고 민주를 부르짖고 평화를 노래한다. 하지만 이놈의 자유와 저놈의 민주와 그놈의 평화는 늘 각다귀판이다. 늦바람이 용마름을 벗긴다고 구역질이 난다. 정의와 진실을 표방하며 남의 속곳 다 벗기고 똥물까지 게우더니만 지놈은 여편네 아낙네 모두 속곳조차 없다고 시치밀 뗀다. 나올 적에 봤다면 짚신짝으로 틀어막을 고놈이 이를 보고 헤벌레한 얼굴로 외친다. “그래, 맞아. 속곳은 무슨? 사리마다보다는 간편하게 빤쓰로 하자. 늙은 년은 됐고 젊은 년은 내 앞에서 빤쓰를 벗어라. 내가 너랑 자고 싶다. 그랬더니 니년이 얼른 빤쓸 내리지 않았더냐? 그래서 넌 빤쓰가 없어. 속곳이 없단 말이다. 누가 뭐래도 저년은 내 성도가 분명하다. 니놈이랑 같이 천국으로 보내주마, 할렐루야!”

자유를 희구하는 자
누구나 피를 부르고
피맛을 본 그놈들은
더 많은 피를 요구한다.
자유의 원천은 민중의 피요
피는 곧 자유의 원동력이다.

이젠
삼시 세끼 남의 피로 뱃속 다진 그놈들에게
뱃속 뼛속 골속까지 시뻘건 그놈들에게
피맛의 진수를 맛보게 하라
피는 피를 부른다...

▲ 모기는 흡혈하는 특성상 세균과 바이러스를 마구잡이로 옮기고 다닌다. 가히 살아 있는 생물학 테러병기라 할 만하다. 그래서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동물이기도 하다. 통계상으로 모기를 통해 치명적인 병원체에 감염되어 목숨을 잃는 인간은 연간 70만 명 정도로,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경우는 그 다음(45만 명).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이자 인류의 숙적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나무위키)

아무려면 요놈이 그놈과 같을 리가 없지. 종자가 다른 거야.
어떤 집안에 문(文) 자 시호 하나 내리면 설령 그가 벽성이었다 할지라도 그 성씨는 그날로 파벽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모기를 뜻하는 한자어(蚊 : 모기 문)에 글을 뜻하는 글월문(文)이 들어 있다. 한자사전에 따르면 ‘문(文)’에는 문장·문서·학문·법도·조리 등 무려 25가지 뜻이 담겨 있다. 그만큼 조상들은 모기를 고결한 인품을 지닌 선비에 비유한 셈이다. 모기는 사람을 공략하기 전에 웽웽거리는 경고음을 낸다. 적어도 피할 기미는 주고 있다. 얼마나 신사적인가? 느닷없이 뒤통수치는 저들의 짓거리에 넌더리가 난 사람들이다. 모기는 또, 대개 야행성이라 사람들이 일하는 낮에는 활동을 멈춘다. 그래서 염치를 안다고 추어올렸다. 모기에게도 낯짝이 있다는 말이다. 멋스러운 조상들의 풍류가 엿보인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 코로나 19로 사람들이 두문불출하니 배가 고플 수밖에. 피에 굶주린 모기떼가 밤낮을 가릴 계제가 아니다. 하물며 방학이라 사람 구경도 못하는데 텅 빈 교정까지 찾아와 풀밭에 웅크리고 앉아 머리를 들이대니 이 아니 좋을시고. 염치는 무슨? 경고음 없이 떼거지로 몰려와 아예 머리부터 발끝까지 난장을 치고 만다.

목덜미부터 가슴, 겨드랑이, 팔뚝까지 옴실옴실
장단지부터 허벅지, 사타구니, 허리춤까지 굼실굼실
수십 마리의 아메바가 몸속에서 오글오글
몇 날 며칠 밤새도록 피냄새 좇아 하작하작

안쓰럽게 바라보던 남편은 얼음으로 찜질하고 양파즙 붙여 주고
연고, 사과식초 진탕 발라주다 말고 이내 당장 그만두라고 역정을 냈으리라.
그런데 왜 오늘 또 나왔느냐고 묻자 말없이 그냥 웃는다. 묻는 내가 쑥스럽다.

교당 5명 안팎으로 조직된 봉사단원들이다. 내가 원해서 자발적으로 나선 일이다. ‘나’가 안 나가면 다른 이들이 그만큼 더 버거워하는 건 자명하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겨도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어김없이 운명처럼 집을 나선다. 물론 순수봉사는 아니다. 하루에 4시간 이상 봉사할 때 서울시교육청에서는 1만3천 원을 지급한다.

우리는 09시까지 학교로 간다. 그러려면 집을 나서는 시각이 보통 07시 전후다. 전철역에서 가까운 학교도 있지만 대개 10여 분 넘게 걷거나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부리나케 걷다보면 아침부터 땀범벅이다. 일이십 분 늦는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담당교사는 수업 때문에 나와 보질 못하니 누가 왔다 갔는지도 모른다. 일을 마치고 언제 집에 가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요즘은 방학이라 보안관 말고는 보는 사람이 없다. 그저 우리들끼리 자율적으로 시작하고 마칠 뿐이다.

본관 앞 화단은 학교의 얼굴이다.
지난 8월 11일, 개학을 앞두고 딴에는 아이들맞이 교정 대정비 활동을 한 셈이다. 군데군데 소국, 원추리, 범부채, 자주달개비가 보인다. 몇 년 묵은 아이들이다. 사이사이에 한해살이 노랑코스모스, 설악초, 분꽃이 얼기설기 무성하다. 다 같은 꽃이련만 왠지 너절하다. 심어 가꾸지 않는 회화나무, 담쟁이, 가죽나무, 풍게나무가 아름드리 향나무 주변 곳곳에서 얼추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화단 앞에는 네모진 고무 대야 30여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대야마다 학급 표찰이 꽂혀 있다. 채소들은 모두 꺾여지고 부러진 채 형해만 남아 있다. 웃자란 토마토와 누렇게 뜬 오이, 그리고 가지와 고추는 모두 녹아 버렸다. 중앙 현관 양쪽, 둥그런 화분에 심어둔 팬지와 왜성식물 맨드라미가 흉하게 시들었다. 제대로 서 있는 것은 강아지풀과 바랭이뿐이다. 꽃이 핀 상추와 방울토마토, 들깨 몇 포기만 남기고 모두 정리했다. 손수레에 쟁이듯 담아도 2대 분량이다. 문드러진 뿌리에서는 썩은내가 진동한다. 지시락물처럼 시커멓다. 움직일 때마다 손수레 밖으로 비져나와 질금질금 떨어진다.

코로나 말고도 요즘은 자외선 지수가 보통 7 이상이다. ‘매우나쁨’ 아니면 ‘위험’이다. 오존지수도 ‘나쁨’이다. 폭염경보 또한 이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상이다. 아내는 물론 아들, 딸, 며느리, 사위 할 것 없이 제발 나가지 말라고 야단이다. 통사정을 해도 안 되니 지하철은 안 된다, 차를 갖고 다니라, 밥은 집에 와서 엄마랑 드시라... 그도 저도 안 통하니 이젠 숫제 을러대기 일쑤다. 아빠가 무서워서 집에 못 가겠다, 하니(☛외손주) 근처에도 오지 마라, 뱃속에 든 떵이(☛친손주)도 거부한다, 천안에 올 생각도 하지 마시라...

오늘도 '김 선생들'은 학교로 간다

집을 나서기 전부터 제법 비장하다.
간밤에 챙겨놓은 배낭을 거듭 확인한다. 모자, 조끼, 장갑, 모기 퇴치제, 벌레약, 전정가위, 휴대용 톱, 물, 우산... 선크림을 바른다. 마스크는 생명이다. 코편을 콧등에 밀착시킨다. 코받이를 여민다. 얼굴을 감싸도록 턱받이를 넓게 씌운다. 이어밴드로 마스크를 고정한다. 문 밖에까지 따라온 아내는 점심 때 시원한 물냉면 해 놓을 거라고 쐐기를 박는다. 햇살이 제법 따갑다. 우산을 편다. 10여 분을 걷는다. 풍산역에서는 앉아 갈 생각을 접어야 한다. 그래도 가끔 교통약자석 한두 자리가 비어 있음을 안다. 하지만 일부러 멀찌감치 서서 간다.

너나없이 그런저런 사정 감안하고 나왔으리라. 동병상련이려니 반갑고 애잔하다. 팀장이 오늘 할 일을 말해 준다. 모기한테 호되게 물린 김 선생은 유난을 떤다 싶을 정도다. 보이는 데마다 선크림을 바른다. 온몸에 모기 퇴치제를 뿌린다. 아들이 사 주었다면서 허리에 벌레 초음파 퇴치기까지 찬다. 토시와 면장갑을 낀다. 다시 한 번 햇빛 가리개용 모자로 중무장한다. 마지막으로 운동화끈을 조인다. 이쯤되면 60대 후반의 퇴직교사가 무슨 중세의 여전사같지 않은가? 쾌청한 땡볕, 35℃를 오르내리는 날이다.

그런데 예서 멈추지 않는다. 바람도 통하지 않는 비닐비옷을 덧입고 작업방석을 허리에 찬다. 자, 이제 됐다. 양손에 호미와 물병을 들고 대기실을 나선다.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하기야 말이 필요없다. 숨쉬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눈만 빼꼼히 내놓고 작업에 몰두한다.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땀범벅이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은 토시 낀 팔로 훔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땀받이로 변한 안경은 어쩌지 못한다. 그냥 벗는 게 상수다. 12시쯤 일을 마칠 때면 아무 생각이 없다. 샤워 생각이 간절하다.

연장 챙겨 제자리 두고 면장갑을 빨아 넌다. 바닥 비질하고 옷 갈아입고 학교를 나선다. 국수라도 먹고 가자는 팀장 말이 오늘따라 새들하게 들린다. 빨리 집으로 가서 선풍기 켜놓고 눕고 싶은 생각뿐... 시크무레한 땀내 난다고 흉볼까 봐 걱정이라며 김 선생이 먼저 손을 흔든다. 200여 명의 우리 ‘김 선생’들은 오늘도 그렇게 70여 개의 교정을 누비고 있다.

여름밤의 장난감, 킨쵸루

집으로 오는 길, 절로 눈이 감긴다. 고향집을 떠올린다.
우리는 언제나 해가 지기 전에 저녁을 먹었다. 아니 그래야 했다. 해거름녘부터 모기떼가 성가시게 굴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마당 한 켠 평상에 밥상을 차리셨다. 밥상을 물리자 마자 으레 모깃불을 피웠다. 눅눅한 밀짚이나 보릿짚은 ‘때대댁’ 소리를 내면서 타올랐다. 대샅에서는 댓잎 스치는 바람소리가 스산하게 들리고, 논에서는 잠못 이루는 개구리들이 떼를 지어 울어댔다. 난데없이 할머니는 모깃불을 세 번 뛰어넘게 하셨다. 그러고는 허공에 대고 부채질을 하시면서 “모구들아 물러가라, 잡귀도 오지 마시요이.” 하고 주문을 외우셨다. 그럴 때마다 동생과 나는 용코로 연기를 뒤집어쓰고 눈물 콧물 재채기를 하면서 도망다녔다. 모깃불이 사그라질 즈음 시누대를 던져 넣으셨다. 댓가지가 탈 때는 ‘펑펑’ 소리가 요란했다. 그 소리에 놀란 닭들은 ‘탁탁’ 홰를 치다가 가르륵하고, 돼지는 헛기침하듯 ‘꾸울’ 굵고 짧은 소리로 화답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던 댓가지마다 마디 흔적 남기고 스러져 갈 때, 할머니는 허청에서 한 자나 되는 쑥을 한 아름 안고와서 불 속에 부리셨다. 쑥향이 싫지는 않았다. 할머니 무릎에서 잠을 청하던 나는 다시 매캐한 연기에 콜록거리고 이내 쫓겨가다시피 방으로 도망갔다.

▲ ‘자연과 책, 그리고 술을 탐하다’에서 인용함.(네이버 블로그)

동생이랑 모기장 앞에서 ‘하낫 둘 셋 요이 땅!’을 외쳤다. 모기장 벽에 붙은 시커먼 모기를 볼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머리맡에 둔 요강은 휴대용 변기다. 오줌을 싸려면 안으로 들였다가 다시 밖으로 내놓아야 한다. 이 때 리듬을 맞춰야하는데 잘못해서 모기장을 팔락거리다가는 간나구같은 모기가 잽싸게 딸려온다. 그 때마다 지천을 들은 동생은 옹알거리다가 잠이 든다. 공연히 자는 동생 어깨를 치면서 모기잡았다고 큰소리친다. 그러다가 둘이 씨름이라도 하는 날엔 모기장이 무너진다. 그 틈을 놓칠세라 모기떼가 냅다 들이닥친다. 할머니께서는 드디어 장롱 깊숙히 감추어 둔 비장의 무기를 꺼내신다. ‘긴쪼리’라고 했다. 병뚜껑 속으로 기역 자 모양의 대롱이 꽂혀 있다. 대롱은 일종의 분무기다. 이를 불면 유리병 속에 든 모기약이 안개처럼 부옇게 살포된다. 모기장 속에서 동생과 나는 서로를 향해 신나게 내뿜었다. 석유 냄새가 진동했지만 무슨 대수랴. 시원하기만했다. 이골이 나니 맛도 그럭저럭, 모기한테 물리는 것보다 백 배 천 배는 좋았다. 모깃소리가 날 때마다 할머니를 졸랐다. 하룻밤에도 두세 번씩은 뿜어댔다. 일본 킨쵸(金鳥)가 만든 살충제 '킨쵸루'는 유년의 여름밤을 함께한 유일한 장난감이었다!

모기 다리에서 피 빼먹는 '그놈들'

물면 물리고 쏘면 쏘이고 쪼면 쪼이고 쓸면 쓸리고 빨면 빨리고 씹으면 씹힌 채, 어매 아부지 새끼 손지 할 것 없이 허구한 날 피에 굶주린 놈들에게 당하면서도, 이날 입때까지 주는 대로 넙죽넙죽 하라는 대로 덩실덩실 시키는 대로 굽실굽실 달라는 대로 히죽이죽, 가진 것 없는 사람들 아, 할머니! 도짓논 부쳐 먹는 형편이라 고래실 다락논 가리지 않고 뼈빠지게 일해봤자 산 목숨 거미줄 안 치면 다행이려니, 아파도 눕지 못하고 밤마다 울음 삼키며 잠 못 드는 사람들, 곱은 손 마디마디 골절이요 갈라진 손등 주름마다 핏빛이 보이는데, 장작개비 같은 손으로 머릿속부터 발바닥까지 박박 문지르며, 미치도록 설움이 북받쳐도 눈물 한 방울 비치지 못하고, 이튿날 날이 새면 냉수 한 사발 벌컥벌컥 들이켜고 풀 뽑으러 간다. 묵정밭 갈러 간다.

(계속)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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