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속, 캄캄한 인내의 시간이 선물로 준 알싸한 향 가득 머금은 마늘이, 실한 몸집을 뽐내며 맘껏 세상 구경을 하던 그 계절, 성휘네 집에도 햇마늘 한 단이 들어왔다.

지인으로부터 올 해 마늘이 그렇게 좋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동네 공원 앞에 세워진 마늘 트럭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결국 햇마늘 한 단을 사온 남편. 본인이 까주겠다고 해 놓고서는 몇 주를 미루다가 드디어 마늘을 깔 의지를 내세운 그 날의 이야기다.

무엇이든지 아들과 함께하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성휘와 함께 까면 재미있겠다면서 “성휘야. 아빠랑 마늘 까기 놀이 할래?” 하고 물었다. 마늘에 혹 한 건지 아니면 놀이에 혹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선뜻 하겠다고 말하는 아들이 의외였다. 나는 속으로 ‘처음엔 호기심에 하겠지만 얼마나 더 하겠어.’ 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날 것의 통마늘을 처음 본 아들은 조금 머뭇거리더니 곧 아빠가 가르쳐주는 데로 마늘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아빠와 마주 앉아 마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마늘을 까는 아들의 모습에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레고 대장’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레고를 좋아하는 성휘가 마늘로 레고 조립을 하듯 집중하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1시간 반을 쉬지 않고 마늘을 까낸 녀석. 오랜 시간 구부렸던 몸을 펴 일어나는 아이 입에서 “에구구구~”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아들은 마늘 까기가 너무 재미있으니 다음에 또 사오라는 기막힌 소감을 남겼다.

마늘 냄새가 밴 아들을 씻긴 후 곧바로 재우고 나온 남편이, 웃음이 나오는 걸 애써 참으며 내게 말했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마늘을 까는 성휘가 옆에서 일어나는 일에 참견하는 모습이 마치 엄마 같았다며 말이다. 그리고 남편은 그 때의 성휘를 회상하며 몸소 재현해 주었다.

거실에 널브러진 마늘을 피해 안방 침대에서 놀고 있는 엄마와 다함. 엄마가 다함이를 간지럼 태우며 놀고 있다. 둘의 웃음소리가 방문 너머로 마늘을 까고 있는 거실까지 들린다.

      다함 (간지러워 발을 동동 거리며) 꺄르르르
      성휘 (마늘에 눈을 떼지 않고 미소 지으며) 다함이, 웃는다.
      엄마 (다함이의 웃는 모습을 보며) 하하하하
      성휘 (여전히 마늘을 까며) 엄마도 웃네. 난 엄마랑 다함이가 웃는 게 참 좋아.

 

▲ 야무지게 마늘을 까는 성휘

남편과 아들이 정성들여 까준 마늘을 된장찌개에 한 스푼, 나물 무침에도 한 스푼씩 넣을 때마다 진지하게 마늘을 까던 귀여운 아들 얼굴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소박한 밥상을 차리며 소소한 기억에 웃을 수 있는 일상이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사실 남편은 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만약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딸이기를 바랐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자타공인 아들 바보가 되어있다. 아들을 위해서 학창 시절에도 그리지 않았다던 그림을 매일 같이 그리는 아빠. 아들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자상한 아빠를 그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아빠 바보 성휘. 생긴 것만큼이나 성격도 닮아, 때론 부딪힐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은, 함께라면 마늘도 재밌게 깔 수 있는 짝꿍이다.

우리 집에서 두 남자의 존재는 뭐랄까... 된장찌개에 들어가는 마늘같달까? 어쩌다 사들여온 마늘 한 단 덕에 아빠와 아들의 추억이 또 하나 새겨진다. 아들이 키가 자라는 것만큼 아빠와의 추억이 하나하나 더해져서, 여섯 살 아들이 사춘기가 되어 자기 방문을 쿵! 닫고 나오지 않는 날이 와도, 지난날의 추억들을 꺼내보며 마주앉아 미소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두 남자가 함께 있어, 하루하루가 참 감칠맛 난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정은진 주주통신원  juj05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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