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입구 최씨네

13) 마을입구 최씨네

장녹골 입구 왼쪽. 늘 비어있는 집. 주말에는 어른 아이 북적이는 집.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서울, 수원, 구미, 청주, 아산, 대전에 흩어져 사는 5녀1남은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마다 모인다고 했다. 저 집에는 무슨 그림을 그릴까 하다가 총무 은상씨의 제안대로 집 주인에게 맡기기로 했다. 6남매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은 모두 10명. 나지막한 담장 왼쪽에는 10개의 동그라미를 그리고, 오른쪽에는 사위들도 있으니 여유있게 7개의 하얀 동그라미를 준비해 두었다.

▲ 마을입구 최씨네. 아무도 안 산다. 그러나 주말이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들에게 17개의 하얀 동그라미를 선사했다.

 

과연 주말이 되자 가족들은 북적거리며 왼쪽의 벽에 그림을 그려놓고 갔다.

▲ 과연 주말이 되니 그들은 나타났고 온통 벽에 달라 붙었다.

10명의 출생 띠 동물을 그렸다.

▲ 왼쪽 벽 10개에는 10명의 손주들의 띠를 그려 넣었다.

그림들 가운데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 10명의 손주들 중 7살짜리 막내가 썼단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
 이 집 식구를 인터뷰해서 독립된 꼭지를 써야겠는 걸!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넌 최고야. 넌 훌륭해...> 삐뚤빼뚤 서툰 솜씨로 이렇게 훌륭한 글을 써 놓다니 이건 누구? 어떤 가정교육을 받았을까? 이 가족에 대한 꼭지를 따로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글씨의 주인공은 위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면 찾아낼 수 있다. 댓글로 답을 달아 보세용.)

 

그 다음 주에는 오른쪽 벽에 6남매의 어린 시절 추억이 그려졌다.

▲ 일주일 뒤, 6남매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그리는 자매들.
▲ 어렸을 때의 추억이 묻어있는 여섯 개의 그림

오줌 싸고 머리에 키 이고 다니던 일, 막걸리 심부름 가던 중에 먼저 따라 먹고 대취하여 마루 위에 널부러져 자던 일, 하교길에 아카시아 잎줄기로 파마머리를 하고 집 근처에 오면 아버지 무서워 개울물에 머리를 적셔 풀던 일, 그리고 아아... 따듯한 음성과 함께 거칠지만 아픔을 멈추게 해 주셨던 엄마의 약손...

▲ 하교길에는 친구와 아카시아 잎줄기를 따서 가위바위보로 잎을 따다가 남은 줄기는 반으로 접어 파마를 했다. 머리전체를 파마를 하고 부스스하게 예쁜 머리(?)를 하고 돌아오면 아버지한테 혼나기 때문에 집 근처에 오면 개울물에 얼른 머리를 적셔 풀어야 했다.

부모님의 자식사랑은 각별했다. 5녀가 태어났을 때 작은 집에 양녀로 보내라는 권고가 있었지만 부둥켜안고 내어주지 않았다. 계집애를 가르쳐 무엇 하느냐고 했지만 아버지는 고등학교까지 모두 다닐 수 있게 해 주셨다. 첫째가 나가 돈을 벌며 집을 돕고 둘째가 셋째를 끌어주고 넷째를 밀어주고 이렇게 돈을 모으며 서로를 도왔던 딸들은 돈을 보태 부모님의 새 집(지금 드나드는 집)을 마련하고 대학도 다니며 막내로 태어난 아들을 대학에 다닐 수 있게 밀어주었다.

아버지는 친구 집에서 자는 것도 허락하지 않고 딸들이 다 들어온 뒤 대문을 잠그셨다. 수학여행을 따라갈 정도로 딸 사랑이 대단했던 아버지는 아들한테는 엄격했는데 아내가 세상을 뜨자 아들이 있으니 든든하다는 말씀을 처음으로 고백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6년 만인 2007년 아버지는 막내딸을 결혼시키고 1주일 만에 돌아가셨다. 덕지리가 고향인 어머니도 예곡초등학교를, 아버지 뿐 아니라 6남매도 모두 예곡초등학교를 다녔으니 한 가족 8명이 모두 동창생이다. 이제 그 추억이, 3세대의 역사가 모두 벽에 기록되었다.

▲ 부모님이 살던 집에 6남매의 어린시절 추억이 가득한 그림을 그려넣고 그들 자녀 10명의 출생띠를 그려넣으니 3세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벽에 담기게 되었다.

 

봄에 시작되었던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예년 같으면 신청했던 20개 마을이 한 곳에 모여 경연대회를 하기도 했다지만, 코로나 때문에 불가. 9월 중순에 현장심사를 하고 10월 초순에 미리 찍어 놓은 영상과 짧은 PPT 발표로 대체한단다. 마지막 리더교육 시간에 추첨을 통해 발표순서를 결정했다. 20개 마을 중에 9번을 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었는데 뽑은 종이를 펴보니 9라고 적혀있다. 오오, 저수지 신령님... 계속 돕고 계신 건가요? 에헤라디여~ 감사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한 번으로 교육을 끝내지 못하고 서너 번으로 쪼개느라 서너 배 애쓰고 계신 ‘씨앗’과 담당 공무원 여러분. 정말 노고에 감사합니다.)

▲ 봄부터 시작했던 행복마을만들기 사업. 이제 심사의 계절이 돌아왔다. 20개 마을은 각기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심사위원과 관계자들 앞에서 발표하게 될 것이다. 나는 추첨함에서 9번째 순서를 뽑았다. 에헤라디여~

 

연재 순서

1) 새 이장이 들어서고 행복마을사업 시작하다,
2) 행복마을 만들기-청소부터 시작하고 나무를 심었다.
3) 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 만들고 행복마을잔치
4) 요가 수업과 벽화 그리기 밑 작업
5) 서울에서 내려온 한 명의 전문가와 자봉 학생들
6) 가사목을 덮은 어두운 분위기의 정체는?
7) 삼방리의 '의좋은 형제'는 다르다
8) 동학도들이 살아나고.
9) 삼방리의 '딸 천사'도 달라졌다.
10)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11) 개벽세상이 무어냐고?
12) 생뚱맞은 파도타기?
▶ 13) 마을입구 최씨네
14) (이어집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고은광순 주주통신원  koeunks1@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키워드

#고은광순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