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사들이 참지 못하고 방문했다!

14) 여신들이 방문하다

벽화는 그리고 나면 끝이 아니다. 코팅을 해 주어야 한단다. 장녹골은 감사하게도 노인회 총무 부부가 코팅을 해주셨지만 가사목은 하지 못했다. 계속되는 장마에 틈을 내지 못하다가 가사목에 가보니 마침 이복순 할머님의 따님이 와 계셨다. 복순할머님은 치매가 왔지만 늘 만나면 “밥 먹고 가”, “밥통에 밥 있어!”, “밥 먹어!”를 반복하시는 맘씨 따듯한 왕언니다. 이런 분이 도시에 살면 주변의 지청구에 시달리겠지만 삼방리와 같은 시골 마을에서는 편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나와 함께 서울의 아파트에 살던 우리 어머니는 치매 초기에 아파트 경로당에 나갔다가 어디서 잃었는지 비취반지를 잃어버리셨다. 경비아저씨는 인터폰으로 할머니가 혼자 헤매고 다니시더라며 ‘혼자 내보내지 말라!’며 엄하게 경고했다. 그 뒤로 요양소에 가셨던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은 ‘밥 먹고 가’. 그리고는 돌아가실  때까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작은 마을에도 작은 마을요양소가 있다면 동네 왕언니들이 언젠가 자식들 집으로 떠났다가 영영 안 돌아오시는 일이 없을 터인데...

내가 코팅작업을 시작하자 복순할머니의 딸 양연숙님이 득달같이 덤벼들어 쓱쓱싹싹 롤러를 문지르셨다. 둘이 순식간에 포도밭, 의좋은 형제자매, 파도타기, 연꽃 밭, 해바라기 밭을 해치웠다! 이제 비가 오고 천둥이 쳐도 그림 속의 사람들과 새와 꽃들은 안전하리라. 에헤라디여~

▲ 벽화를 그린 뒤에는 코팅을 해 주어야 한다. 이복순할머님의 따님이 놀러왔다가 씩씩하게 코팅작업에 참여하셨다!

 

단체 카톡방 <여신>의 식구 셋이 삼방리를 찾았다. 우리나라 페미니스트운동을 선두에서 이끌었으며 여신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2년 전 <여신을 찾아서>를 출간한 김신명숙님, 하버드대학의 교육철학박사이며 한반도 평화운동을 위해 미국생활을 접고 한국에 오신 김반아님, 사회학 동기이며 여성운동을 꾸준히 해온 양해경님. 그들은 ‘도끼부인’ 연재물 몇 개를 읽고 단김에 삼방리를 찾았다. 먼저 가사목부터 들렀는데 무슨 말씀인지 왕언니들은 초면의 그녀들에게 미주알 고주알 일러바쳤다.

▲ 미주알 고주알... 처음 보는 낯 선 이들에게 무언가를 고해바치는 왕언니들

 

여신들은 가사목과 장녹골의 그림들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집으로 와 밭에서 딴 호박잎과 감자볶음, 호박볶음 등으로 시장한 배를 채우고 평화어머니회의 평화티셔츠를 한 장씩 구입하셨다.

<여신>방에서는 실시간 올라오는 사진에 ‘감동’, ‘대박’ 답글들이 올라왔다. 여러분도 봄에 꽃 피면 벽화 자봉단으로 오세요. 진달래 화전 먹으며 함께 그림 그리며 놀아보자고요.

▲ 이용금 할머니도 알고보면 다 여전사이며 여신이다. 장녹골 벽화도 들러보고 집에서 평화티셔츠를 걸치고 한 장!
뒷줄 왼쪽부터 김신명숙, 김반아, 양해경님

16일에는 4명의 현장심사위원과 도에서 군에서 관계자들이 삼방리를 방문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연재물을 프린트해서 ‘공정한’ 심사를 부탁해야지. 아니, 그런데 심사위원들 보다 더 잘 알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 처음부터 행복마을만들기 사업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람들, 관심이 있었지만 시간이 없었던 사람들, 소극적으로 바라만 봤던 사람들, 저쪽 동네 일은 알 수 없었던 사람들... 대관절 삼방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당신들이 심사위원들 보다 더 잘 아셔야 합니다. 13탄의 연재물 10부를 뽑으려면 집의 프린터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종이 몇 뭉치를 사들고 다목적 회관과 면사무소를 며칠 동안 수차례 드나들며 동냥프린트를 했다. (내년에는 지원금 중에 필히 성능 좋은 프린터를 구입하고야 말리라!)  겉장에 '심사위원들에게 드릴 것이니 깨끗이 보고 돌려달라'고 써서 이 골짝 저 골짝에 전했다.

▲ 9월 16일 현장심사가 있단다. 심사위원들 보다 우리 주민들이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13탄의 이야기를 10부 동냥프린트 해서 소극적 참여자들에게 돌렸다.

안 좋은 시력 때문에 카톡도 밴드도 잘 안 보신다는 이장님. 휴가 갈 때 프린트물을 가지고 가셨단다.

“이거 내가 휴가 가서 두 번을 읽었어. 두 번을. 아니 이거는 책을 내야 되야. 책을...”

암만요. 그러잖아도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니께요.

 

일요일 오후. 마을회의가 열렸다. 내년에 3천만원을 받게 되면 무얼 할 것인가. 나와 총무가 각각 가안을 만들어 돌렸다. 넣고 싶은 것 넣고, 빼야 할 것은 빼 보자고요.

▲ 마을회의. 2단계에서 받게 될 3천만원으로는 무얼 할 것인가? 아이고오... 뺄 것이 없는디...

풍물은 한 5년 가면 사라지는 거 아녀? 왜 사라지는 것에다가 돈을 쓸라구 하냐구? 아니, 5년 동안 행복하시면 좋은 거 아녀요? 글구 조 사람, 요 사람은 5년 넘게 살 거구 다음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면 되구... 경연대회도 나가보구...

요청사항에 안마의자가 있었지만 다음날 씨앗에 알아보니 ‘함께 하는 사업’ 중심으로 생각해 보라는 답변을 얻었다. 암만요.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분투해 보자구요. 3천만원으로 달라질 나의 모습과 주민들 모습에 마음이 설렌다. 일 년 뒤 우리는 또 얼마나 달라져 있을 것인가. 회관 앞 연꽃 밭에 추가로 개구리를 그려 넣었다. 너도 지켜보아주렴.

▲ 곧 개구리들이 땅 속으로 숨어들겠지만, 삼방리 개구리는 일년 열두달 연꽃들과 노닐 것이다.

연재 순서

1) 새 이장이 들어서고 행복마을사업 시작하다,
2) 행복마을 만들기-청소부터 시작하고 나무를 심었다.
3) 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 만들고 행복마을잔치
4) 요가 수업과 벽화 그리기 밑 작업
5) 서울에서 내려온 한 명의 전문가와 자봉 학생들
6) 가사목을 덮은 어두운 분위기의 정체는?
7) 삼방리의 '의좋은 형제'는 다르다
8) 동학도들이 살아나고.
9) 삼방리의 '딸 천사'도 달라졌다.
10)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11) 개벽세상이 무어냐고?
12) 생뚱맞은 파도타기?
13) 마을입구 최씨네
▶ 14) 여신의 방문
15) 드디어 저수지 신령님을 만나다.
16) 계속 이어집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고은광순 주주통신원  koeunk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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