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엄격하게 여행제한을 한 캐나다 정부는 7월 초 이를 완화했다. 이젠 다른 주로 여행을 가도 2주 동안 격리되지 않는다. 단 4개 주(노바스코샤, 뉴펀들랜드, 뉴브런즈윅, 프린스 애드워드 아일랜드)는 ‘아틀란틱 캐나다’라는 동맹을 맺고, 다른 주 여행객을 받아주지 않거나, 2주간 자가격리의무화를 시행하고 있다. 이를 ‘아틀란틱 버블’이라고 하는데 이 규정을 내세운 이유는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퀘벡주, 온타리오주에 비해 훠얼씬~~ 적은 청정지역이기 때문이다.

내 동생은 온타리오주 토론토에 머물고 있다. 캐나다에서 박사과정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부모님과 떨어져도 동생이 캐나다에 있기에 왠지 든든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버스로 6시간 걸리는 거리에, 서로 바쁜 스케줄에 자주 만나진 못했다. 작년 12월 토론토에서 마지막으로 봤으니 벌써 못 본지 7개월 된다.

코로나사태가 터지고 동생과 전보다 더 자주 연락했다. 동생이 안전한지.. 토론토는 상황이 어떤지 안부를 물었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동생 생각이 더 나고 무척 그리웠다. 캐나다 정부가 여행규제를 완화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 소식 들었어? 캐나다에서 여행 규제를 완화시켰어. 이제 누나가 토론토에 놀러갈 수도 있고, 네가 몬트리올로 놀러올 수도 있어. 너는 룸메이트랑 같이 사니까 너가 몬트리올에 놀러오는 게 편하겠다. 놀러오면 누나가 맛있는 것도 해주고, 몬트리올도 구경시켜주고 같이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자~~”고 간청하며 동생을 유혹했다.

동생은 이런 간청에도 조금 무뚝뚝하게 반응하며 오기를 꺼렸다. 말은 하진 않았지만, 토론토와 몬트리올을 왔다 갔다 하려면 대략 30만 원 정도 드는데, 그 비용이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동생은 올해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코로나사태로 인해 회사는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 사원을 해고하는 상황이라 취직은 쉽지 않았다. 이런 딜레마를 알고 있어 동생에게 졸업선물로 여행비용을 대준다고 했지만, 동생은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마음씩 착하고 배려심 많은 동생은 아마 누나에게 부담주기 싫었던 것 같다.

그러다 7월 초순, 캐나다 정부에서 대학을 막 졸업한 취업준비생을 상대로 주는 지원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에 다시 한 번 몬트리올에 오라고 했고 금전적으로 조금 여유로워진 동생은 흔쾌히 오겠다고 했다. 그 후 동생과 퀘백 여행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퀘백주 동부의 명소 

퀘백에서 유명한 명소로 꼽히는 ‘Bonaventure Island’, ‘Perce’, 그리고 ‘Gaspe’를 목적지로 삼았다. 이 명소들은 퀘백주 동부에 위치해 있고, 세인트로렌스 만(Gulf of St Lawrence)을 마주하고 있다. 몬트리올에서 차로 10시간정도 걸리기에 숙박도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예약했다.

드디어 동생이 몬트리올에 오기로 한 날이 되었다. 오후 2시에 도착하기에 오전엔 실험실에 갔다. 하지만 반쯤 들뜨고 흥분된 상태에선 논문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실험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오전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동생이 온다는 얘기를 자랑하며 떠들다가 시간이 다 가버렸다. 2시가 되자 나는 거의 뛰다시피 연구실을 나와 집으로 향했고, 동생이 오기만을~ 베란다에 앉아 강아지 마냥 기다렸다. 드디어 우버에서 내리는 동생 모습이 보였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며 경직되어있던 근육은 마취한 냥 사르르 풀리고 입가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베란다에서 소리를 질렀다. “우가~~~!!”.

동생은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더욱 멋져졌다. 대학을 졸업해 마음이 편해서였는지, 얼굴은 덜 피곤해보이고 피부도 한층 더 깔끔해졌다. 코로나 때문에 헬스장에 못가서 근육이 빠졌다고 투덜거렸지만, 슬림한 근육모델 같아 더 좋아 보였다. 평소엔 연락도 잘 하지 않는 약간 무심~한 편이어도, 막상 만나면 재잘재잘 재미있게 말하는 말재간을 지닌 동생과 쉬지 않고 떠들었다. 한동안 조용하고 허전하게 느껴졌던 집도, 동생이 오니 꽉 찬 듯했고 내 마음도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그 다음날, 퀘백 여행이 시작됐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차를 렌트하고 첫 번째 목적지인 ‘Le Bic’국립공원으로 내비에 찍었다. Le Bic 국립공원은 몬트리올에서 약 5시간 30분정도 떨어진 곳으로 바다와 절벽이 어우러진 곳이다. 또한 산길을 걸으며 바다, 작은 섬들, 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특히 석양이 아름답다고 하여, 우리는 등산을 하며 석양을 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 지루한 고속도로

Le Bic 국립공원까지 가는 고속도로는 정말 무던하고 지루했다. 도로는 높낮이도 커브도 없이 일직선으로 쭉~~~이어졌다. 고속도로 주변엔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초원들이 있었고 아주 간혹 집들도 보였다. 캐나다는 정말 땅 부자다.

▲ 지루한 고속도로

열심히 달려 Le Bic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은 웹사이트에서 본 것처럼 조용했다. 바다와 절벽, 산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산길을 따라 조금 더 가니 퀘백에서 유명한 꽃 ‘Fire Weed’가 곳곳에 피어있었고 ‘Pink Muhl’도 곳곳에 널려있었다. 저 멀리 사슴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신나게 떠들던 우리도 잠시 입을 다물고 경건한 마음으로 사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 Fire Weed
▲ Pink Muhl
▲ 사슴

오랜만에 도시를 벗어나... 코로나 뉴스에서 벗어나... 자연에 나를 묻으니 어떤 고민도 어떤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연은 고요했으며, 나는 자연 속에서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온 듯 차분해졌다. 

▲ 절벽
▲ 절벽

산길을 벗어나 해안을 따라 걸으니 깎아지른 날카로운 절벽이 보였다. 파란 바다도 눈에 들어왔다. 해가 뉘엿뉘엿 바다를 향해 기막히게 지기 시작했다. 하늘과 바다는 매분마다 다른 색깔을 보여주었다. 근처 벤치에 앉아 싸온 저녁을 허겁지겁 먹고 지는 석양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 절벽과 석양
▲ 절벽과 석양
▲ 석양
▲ 석양
▲ 절벽 꼭대기에 사람이

해가 완전히 바다로 넘어가자, 하늘과 바다는 경계가 없어졌다. 마치 저 멀리 바다와 하늘이 합쳐진 새로운 세상이 있는 듯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새로운 세상으로 흡수되어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오랜만에 자연이 주는 황홀감에 젖어 가슴이 벅찼다. 빛이 다 사라지기 전에 숲길을 나와야 해서 마주했던 새 세상을 뒤로 하고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 해넘이 후 잔향
▲ 해넘이 후 잔향

다음날, 두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퀘백에서 명소로 꼽히는 ‘Forillon National park’다. 우리가 묵었던 ‘Le Bic’에서 약 4시간 30분 정도 고속도로를 타고 가야한다. Forillon 국립공원까지 가는 고속도로는 상당히 멋있었다. 고속도로는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져 있었고, 왼쪽엔 푸른 바다, 오른쪽엔 절벽, 평지 혹은 산이 있었다. 어제 달렸던 고속도로와는 달리 커브도 있고, 높낮이도 있어 운전을 하는데 신경을 좀 더 써야했지만, 동생은 다이내믹하다며 신나했다.

굽이굽이 이어진 고속도로는 작은 마을, 넓은 평야 그리고 절벽을 지나, 드디어 동쪽 끝 도시 ‘Gaspe’에 위치한 Forrilon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Forillon 국립공원 면적은 244㎢로 상당히 규모가 크다. 서울시 면적이 605㎢이니 서울시 면적 40% 정도다. 바다를 사방에 접하고 있어 트래킹은 물론 수영도 할 수 있다. 많은 트래킹 코스 중 국립공원 직원이 추천하는 등산코스를 택했다. 이 코스는 2~3시간 걸리는 간단한 코스지만 전망대에 올라가 국립공원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등산 전 동생과 바다를 보며 점심식사
▲ Forillon 산 등산 전 동생과 점심식사를 하면 바라본 전경

트래킹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길은 깔끔하게 잘 놓여있었다. 한 시간 반 정도 걷고 나니 층계로 올라가야하는 전망대가 보였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국립공원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국립공원을 감싼 해안선과 파란 바다가 펼쳐졌다.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었고, 숲은 여름이란 계절을 알려주듯 짙은 초록색이었다. 저 멀리 국립공원 끝이 보이고, 절벽을 감싸고 있는 바다가 보였다.

▲ Forillon National park 전망대에서 보이는 숲의 한쪽 끝자락
▲ Forillon National park 전망대에서 보이는 숲의 다른 쪽 끝자락

날씨도, 경치도 나와 함께 있는 동생도 모든 것이 소중하며 완벽했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경치에 기분이 좋아서였는지 동생과 나는 평소 잘 하지 않았던 마음속 깊이 있던 고민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얘기했다. 다시 한 번 어른이 된 동생과 내가 얼마나 비슷한 점이 많은지.. 이런 동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새길 수 있었다.

이 기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고, 동생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우리 나중에 서로 바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이 시간을 생각하며 서로가 있다는 걸 잊지 말자. 그리고 항상 서로를 믿고 응원하자” 라고 다짐하듯 얘기했다. 동생은 이런 말을 듣는 게 조금 쑥스러웠는지 괜히 농담으로 받아치며 나를 웃게 했지만, 이미 우리는 가족 간 끈끈한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한껏 취하고 나서 하산하기 시작했다. 동생과 재잘재잘 얘기를 하며 등산을 마무리하던 중 저 멀리 검은 물체가 어른거렸다. 앞에 가던 동생을 힘껏 붙잡고, “앞에 동물 있어!” 라고 조용히 얘기한 뒤 동생을 뒤로 끌었다. 주춤주춤 물러서 보니 등산길 바로 옆에 큰 무스 한마리가 서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무스를 목격하긴 처음이어서 신기하지만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다시 좀 더 무스와 간격을 둔 뒤 가만히 지켜보았다. 무스도 우리를 보고 놀랐는지 숲속에 가만히 서있었다. 그러길 몇 분... 무스는 길 한복판에 나와 우리를 똑바로 보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누구를 기다리는 듯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숲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덩치가 조금 작은 아기무스가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수줍은 듯 엄마무스 옆에 와서 섰다. 아기 무스는 우리가 있는 곳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3분 정도 우리를 쳐다보았을까? 엄마무스는 이제 앞으로 가자는 듯 발걸음을 옮기며 아기무스를 바라보았다. 아기무스는 엄마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고, 두 무스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무스가 숲속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후 발걸음을 옮겨 무스가 있었던 길 한복판으로 향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스는 간 것이 아니었다. 숲속에 서서 계속 오던 길을 돌아보고 있었다. 마치 또 다른 무스를 기다리는 듯 했다.

갑자기 동생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주춤했다. 동생이 “어? 곰이야!!!”하고 속삭이듯 말했다. ‘곰’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나는 동생을 잡아끌며 재빨리 뒤로 더 물러갔다. 그 찰나에 아주 작은 검은색 곰이 산길을 지나 무스가 있는 숲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모든 일이 삽시간에 일어났다. 심장은 요동 쳤다. 길가에서 무스 가족을 본 것도, 곰을 본 것도 처음이다. 우리는 얼어붙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엄마 곰이 바로 나타날 것만 같은 두려움을 갖고 조용히 기다렸다. 

10분이 지났다. 더 이상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거의 달리듯 산길을 내려왔다. 차에 앉았을 때 마침내 안도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본 곰은 아주 작은 아기 곰이었지만, 만약 어미 곰을 산길에서 만났다면? 아마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한다. 그렇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숲속을 나와 숙소로 향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지만, 다시 한 번 자연 앞에 보잘 것 없는 인간 존재에 겸손해지는 순간이었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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