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주는 선물, ‘황홀한 출산’

“좀 아파도 돼!” 출산을 앞두고 있던 내게 남편이 한 말이다.

아는 동생에게 첫 출산 경험을 얘기하고 있었고, 이야기의 핵심은 ‘무통주사’가 정말 좋았다는 거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남 일인 듯 얘기했다. “무통주사, 그게 뭐 좋은 거라고 권하는 거야.” 그리고 이어진 말은 지금도 떠올리기가 싫다. “좀 아파도 돼~”

충격의 그 일은 만삭의 여자가 도서관에 책을 쌓아두고 출산이란 무엇인지 똑바로, 그리고 분명하게 보게 만들었다. 출산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무지를 걷어내자 숨어있던 비밀의 문이 나타났다. 그렇게 운명처럼 나는 ‘자연주의 출산’을 결정하게 되었다.

“진통이 약한데요? 오늘 안 나올 것 같아요. 그리고 예정일을 8일이나 지나서 유도 분만 하셔야 할 거예요.” 애써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작은 용기를 끄집어내어 말했다. “저는 유도 분만을 하지 않을 거예요. 촉진제도, 무통주사도 맞지 않을게요.”

간호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일단 담당 의사와 상의한 후 결정하라고 했다.

‘하나님, 제발 진통이 세지게 해주세요. 그래서 오늘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을 수 있게 해주세요.’ 세상 어떤 여자가 진통이 세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할까. 다행히도 담당 의사는 오늘까지만 기다려보자고 했고, 간호사는 촉진제 대신 영양제 링거를 꽂아주었다.

나는 병에 걸린 환자처럼 침대에 누워있고 싶지 않았다. 가볍게 운동할 수 있는 곳에 나가 짐볼을 타며 몸을 이완시켰다. 파도가 치듯 진통의 물결이 일 때면, 심호흡을 깊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흘려보냈다. 고통을 느끼는 대신 아기, 그리고 남편과 함께 사랑의 교감을 느끼며 충만했다. 하지만 나의 감정 밖 병원에서는 그저 촉진제와 무통주사를 거부한 특이한 산모로 소문이 났을 뿐이었다. 출산에 대한 주체적인 결정을 반기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과 이를 방해하는 환경 속에서 흔들리지 않게 내 마음을 다잡는 일이, 진통을 견디는 일 못지않게 에너지를 쏟게 했다.

두 번째 담당 의사의 내진이 있었다. 자궁문은 많이 열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양수가 터지지 않는다면 인위적으로 양수를 터뜨려야 한다고 했다. 슬프게도 세상은 아기의 속도에 맞춰 기다려줄 만큼 친절하지 않아 보였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잦은 빈도로 센 진통이 물밀듯 밀려왔다. 간호사는 힘주기 연습을 시키며 마지막까지 내가 유별난 산모인 것을 확인시키듯 말했다. “아무도 이렇게 기다리지 않아요. 촉진제도 맞지 않고.” 그 말은 결코 나를 격려하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봐라. 촉진제도, 무통주사도 없이 우린 잘 해내고 있으니까!’

따뜻한 엄마의 바닷속에서 망설이던 아기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세상을 향한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나는 세차게 치기 시작한 진통의 파도에 밀려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고 말았다. 극에 달하는 진통에 당황한 나는 순간 몸을 긴장시켰고, 잠깐이었지만 그로 인한 고통에 힘겨웠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있는 힘을 다해 힘을 주었다. 세 번의 힘주기 끝에 들리는 선명한 울음소리, 그것은 나의 딸의 목소리였다.

그 순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환희’라는 감정의 단어가 내 생애 처음으로 쓰인 순간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세상에 나오면 꼬옥 안아주겠다던 그 약속을 이루며 내 가슴 위에 올려진 딸의 체온을 조심스럽게 느껴보았다. 딸을 안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여자로 태어난 것에 감사 기도를 드렸다.

지금도 자주 찬란한 그 순간이 되살아나 내 가슴을 두드린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하고 귀한 선물로 찾아온 딸에게 나도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경험한 ‘황홀한 출산’이었다.

“내가 너를 낳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니? 출산은 여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란다.”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이글은 한겨레신문에도 실린 글입니다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59790.html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정은진 주주통신원  juj05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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