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치인(修己治人), 익숙한 사자성어(四字成語)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그 말을 대체로 "내 몸을 닦아 남을 다스린다."로 풀어놨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그러한 풀이의 대표 사례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림”이라고 했다. 인(人)을 ‘나’라는 주체의 상대방인 인간사회 전체로 보면, “스스로 수양하고 세상을 다스린다.”로 뜻이 커진다.

머릿속에 작지 않은 물음표가 아른거린다. 호르몬의 작용에 따른 욕망의 응결체인 내 몸을 잘 닦는 일의 목적이 ‘나 이외의 인간 세상에 대한 다스림’인가? 남을 압도하고자 함인가? 다스리는 자, 지배하는 자는 ‘다스리기’에 흥이 나겠지만, 지배당하는 자, 다스림 받는 자는 불덩이가 거의 날마다 가슴팍을 오르내릴 만큼 영 불편하기에 십상이다. 내가 열심히 몸과 맘을 닦을수록 나 이외의 세상 사람의 가슴에 불덩이는 커진다. 마지막에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몸과 맘을 전혀 닦지 않음만 못하겠다.

한편 공자는 <논어; 헌문 제14> 제46장에서 군자(君子)에 관하여 자로(子路)와 문답하면서 ‘수기 이경’(修己以敬), ’수기이 안인‘(修己以安人). ’수기이 안백성‘(修己以安百姓)을 말씀한다. 몸을 닦는 마음의 자세는 공경이요, 몸을 닦는 까닭은 내가 아닌 남, 즉 온 세상 사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고자 함이다. 이는 봉건사회에서도 ’백성‘은 다스림의 대상이 아니라 임금이 마치 연예인(엔터테이너; entertainer)처럼 흥을 돋워야 할 동반자임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요컨대, 수기(修己)의 목적은 안인이다.

▲ 네이버 웹툰 <아기 낳는 만화>의 주인공 쇼쇼는 임신을 한 뒤 몸과 마음이 힘들다. 한겨레21, 2018-09-05

이미 여러분은 짐작하시리라. ’수기치인‘의 ’치‘(治)를 ’다스리다‘로 풀이하는 게 적합한가? 글자 治가 품은 원래의 뜻을 찾아봐야 한다. 파자하면, 治 = {水, 台}. <네이버 한자사전>에서 보면, 台={口, 厶}는 ’별 태‘ 혹은 ’나 이‘, ’기뻐할 이‘로 읽는다. 형성문자이다. ’(내가) 입을 방실거리며 기뻐하다.‘라는 뜻이다. 台를 성분으로 포함한 글자는 胎(아이 밸 태), 跆(밟을 태), 怡(기쁠 이) 등이다. 아이를 배고(胎) 조금 지나자, 배 속의 아이가 엄마 배를 발로 밟아 차니(跆), 엄마와 아빠의 마음은 얼마나 기쁘겠는가(怡). 말하자면, 台는 엄마 배 속의 생명체이다. 하늘의 수많은 별(台)이 보내온 여러 가지 기운이 합덕(合德)한 결과이다. 그 생명체는 양수(羊水)에서 건강하게 잘 논다. 治 = {水, 台}에서 水는 양수이다. 확장하면, 治는 생명체를 살린다는 뜻이다. 즉, 治는 ’다스릴 치‘라기보다는 ’(생명체를 온전히) 다 살릴 치‘로 읽어야 본래 뜻에 맞다. 어쩐 일인지 양수가 부족하거나, 혹은 출산이 임박하여 양수가 터지면, 위태롭다. 비상상황이다. 119를 불러 응급실로 달려가야 한다. 治 = {水, 台}에서 水 대신에 歹(뼈 앙상할 알, 부서진 뼈 알)을 대입한 글자 殆는 ’위태할 태‘이다. 때가 차서 엄마 배 속의 생명체가 몸을 거꾸로 하여 머리를 아래로 하자, 양수가 터져 시내(川)처럼 흐르고 아이는 이 풍진(風塵) 세상으로 소풍을 온다. 그런 광경을 그린 글자가 바로 流(흐를 류)이다. 流={水, 子(아이 자)를 거꾸로 한 글자, 川}에서 水는 평범한 물이 아니라 생명수인 양수이다. 참고로, 글자 子의 성분에서 一은 아이가 양팔을 바르게 편 모습이고, 그 위는 아이의 머리요, 그 아래는 양다리를 포대기로 감싼 모습이다.

천자문(千字文)은 여러 가지이다. 전남 영암군 구림 마을의 태생인 왕인(王人) 박사가 일본에 전했다고 추정되는 종요(鍾繇, 151년~230년)의 천자문, 우리가 흔히 아는 대로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하는 주흥사(周興嗣, ?년~521년)의 천자문 등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천자문(二千字文)을 지으셨다.

▲ 주흥사, <천자문>의 163-164구: 치본어농 무자가색. 출처: ‘석봉천자문’, 이돈주 편저. <주해 천자문>.박영문고 228.1981.

주흥사, <천자문>의 163~164구는 ’치본어농 무자가색‘(治本於農 務玆稼穡; 정치는 농사를 근본으로 하고, 더욱 심고 거둠을 힘쓰게 하니라)이다. 서예가 한석봉(韓石峯, 1543년~1605년)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글씨를 쓴 <천자문>의 초간본(初刊本, 1583년; ‘석봉천자문’이라 부름)에 治는 ’다ᄉᆞ릴 티‘로 나온다. 아마도 1500년대 후반경에 治의 음은 ’티‘였으리라. 治, 台, 胎의 음가(音價; 발음 기관의 기초적 조건에 의한 단위적 작용에 의하여 생기는 성음 현상)는 비슷하다. 음가로 봐도 治는 태아와 밀접히 관련된 글자이다. 또한 ’다ᄉᆞ릴 티‘를 ’다 ᄉᆞ릴 티‘, ’다 사릴 티‘, ’다 살릴 티‘로 읽어봄 직하다. 조금 억지스럽기는 하다. 요컨대, 글자 治={水, 台}는 台와 水가 각각 태아와 양수를 뜻하기에 ’(온전히) 다 살릴 치‘로 읽어야 본래 뜻이 강하게 다가온다.

▲ 2020년 7월 23일 충남 예산군 예산읍 ‘국립 예산 치유의 숲’ 들머리. 한겨레, 2020-08-21.

修己治人은 ’내 몸과 맘을 정성껏 닦아 내가 아닌 인간 세상을 다 살린다.‘로, 治本於農은 ’다 살리고자 하면 농사를 바탕으로 삼아라.‘로, 治山治水(치산치수)는 ’산을 (온전하게) 다 살려 물을 다 살려라‘로, 治世(치세)는 ‘잘 다 살린 세상’으로, 政治(정치)는 ‘(양을 치듯이) 올바르게(正) 쳐서(攵) 다 살리는 행위이다.’로 풀어진다.

엄마는 아이를 갖기 전부터 몸과 맘을 잘 닦고, 임신 중에는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고, 열심히 태교한다. 아이를 낳고 기른다. 엄마는 아이를 살린다. 마침내 가족을 살린다. 그래선지 전통적으로 엄마가 하는 일을 ‘살림’이라 했다. 이렇게 보니, 몸을 닦아 남을 다 살린다는 修己治人의 본보기는 엄마이다. 어머니는 공자의 말씀인 ’수기이 안인‘(修己以安人)을 실천하는 위대한 존재이다. 

혹시 ’수기치인‘이 너무 부담스럽다면, ’수기여인‘(修己與人; 몸과 맘을 닦아 남과 더불어 지내다.)은 어떠한가? 코로나19 방역 생활의 일상화, 수기여인!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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