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많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모두 알 수 있고 우리가 원하는 방법으로 이끌 수 있도록 그들을 에워쌀 수 있다면. 그들 행동과 사람 관계 생활환경 모두를 확인하고 그 어느 것도 우리 감시에서 벗어나거나 (우리들)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이것은 ‘나라’가 여러 주요 목적에 쓸 수 있는 정말 쓸모 있고 효력 있는 도구임에 틀림없다." ㅡ 1791년 제레미 벤덤이 고안한 둥근 감옥, 파놉티콘 ㅡ

죄수들 마음에 ‘감시받는다’는 생각을 깊이 뿌리 내리게 하여, 감시자가 있든 없든 스스로를 지켜보고 억압한다. 아주 작은 노력으로 가장 큰 통제를 할 수 있는 감옥 장치이다.

아파트는 한국에서 만든 최신형 파놉티콘.

▲ 살림살이 고스란히 드러낸 아파트 모습

장치는 정교해지고 감시는 촘촘해졌다.

주차장과 지붕 위 5G탑은 거대한 눈. 차량은 지하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와이파이를 타고 데이터 패킷은 하늘을 오간다. 드나드는 시간은 차곡차곡 쌓이고, 아파트 단지마다 동마다 집집이 쓴 데이터는 사람들 성격, 취향, 선호하는 음식, 좋아하는 빛깔, 하는 일, 평수에 따른 직업, 가족 수, 가족들 씀씀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감시받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아파트 문은 지문인식을 넘어 홍채인식, 소리 인식으로 열고닫을 정도로 보안이 뛰어나고 층층마다 곳곳마다 돌아가는 폐쇄회로는 낯선 사람을 단박에 잡아낸다. 이 성채를 허물고 들어오는 자, 누굴까! 한국에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가슴은 최신 과학장치가 주는 안심과 경쟁 뚫고 몫돈 챙긴 특별한 존재라는 자부심으로 뻐근하다.

 

경비실과 엘리베이터는 군더더기 없이 빠르면서 특별한 안전을 보장하는 통로이다.

외부위험을 골라내고 미리 막아주는 보조 통로도 있다.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계층을 틀 지우는 독특한 장치다. 택배기사, 컴퓨터 수리기사, 음식 배달하는 사람, 세탁 배달 따위 외부 위험가능요소들은 숨죽이고 최대한 조용히 빨리 그곳을 통과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물건 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사람들 입성 초라해도 그곳ㅡ계단으로만 다녀야 한다. 외부인 계단 출입, 엘리베이터 출입금지!

‘주민’들만 엘리베이터를 태우는 건 한국인이 좋아하는 '한 가족'임을 확인시키고, 관리비를 뜯어내기 위한 작은 장치이다. 아파트에 저마다 1인 통로를 내면 함께 산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 “혼자 사는데 왜 내가 관리비 내야 하지?” 따지고 들 터. 좁은 네모칸을 최대한 자주 만날 수 있는 대면 공간으로 만들어 함께 사는 곳임을 자꾸 새겨넣어 아파트가 그럴듯한 공동체인양 착각하게 만든다.

 

아파트는 반드시 한 면은 통유리로 밖에서 볼 수 있도록 지었다.

주민들은 커튼이나 블라인드로 필요한 건 가리고 (바깥 감시에서 벗어나) 산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조망권'이란 이름으로 웃돈을 주고 멀쩡한 벽도 통유리로 모두 바꾸고 만다. 인공위성이 돌면서 24시간 감시하기에 좋은 구조로 아파트만한 것이 없다. 아파트의 또 다른 비밀 하나.

아파트는 기후위기가 몰고 오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같은 사람동물함께돌림병, 산불, 돌풍, 지진 따위 위험이 닥칠 때 사람들을 관리하는 최소단위 ‘사회통제상자’이다. 재벌권력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사회혼란을 잠재우고자 (정부가 애쓰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희생양이 필요할 때 상위소득 20% 이하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가운데 아무곳이나 골라 빠르고 통째로 날릴 수 있는 ‘사회위험제거상자’이기도 하다.

'특정 질병에 같이 노출된 사람을 동일 집단(코호트)으로 묶어 통째로 격리해 확산 위험을 줄이는 조치인 코호트 격리'(-에듀윌 시사상식-에서)를 생각해 보라. 아파트는 코호트 격리에 가장 적합한 주거구조이다.

▲ 이 사진은 본문 기사와 관련이 없음

아파트 감옥은 바늘 하나 감출 수 없는 곳이지만, 사람들은 촘촘한 울타리 안에 막교대 경비 노동자를 하인처럼 부리며 사생활이 가장 안전하게 보장되는 집이란 굳센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2030년 10월 26일 CNN에서 "세운 지 20년밖에 되지 않은 서울 막퍼구 상암동 월드콩아파트에서 Covid-29 바이러스를 옮기는 숙주 박쥐가 발견됐다. 박쥐는 봉산 자락을 허물고 지은 아파트 가운데 분양되지 않은 빈집으로 들어가 벽에 흐르는 결로와 곰팡이를 먹으며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긴급뉴스가 흘러나오는 순간에도 한국 사람들은 아파트 감옥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었고, 지금도 들어오지 못해 안달이다.

인구절벽과 고령화로 사람들 빠져나가 서울 흉물로 남은 그곳으로.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김시열 주주통신원  abuk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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