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가뒀으면 충분해~ 동물 감옥을 폐지하라”

약 9년 전인 2006년 '다음 아고라'에 동물원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동물원이 꼭 있어야만 할까?'에 대한 자문과 동물원의 폐쇄를 주장하는 글이었다. 베스트 글이 되어 6만 명 이상이 와서 봤고, 450명이 댓글을 달면서 굉장히 열띤 토론을 벌였다. 미처 댓글을 다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댓글 중 상당 부분이 동물원은 동물에 대한 배려가 없는 학대의 장소이고, 동물에 대한 인간의 이기적 잔인함에 대한 지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9년이 지났다. 동물원 문제를 마음 속에 묻어두었는데 지난 주 한겨레 토요판 기사를 보고, 동물원 폐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관련기사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708578.html?_fr=mt2

 

▲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의 시몬 볼리바르 동물원에 사는 아프리카사자 ‘키부’는 ‘생태선진국’ 코스타리카 동물원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통한다. 2013년 정부는 소송 결과에 관계없이 동물원 폐지 조처에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가시적인 조처는 취해지지 않았다. 최근 들어 동물원 쪽은 시설개량 공사에 들어가, 동물원의 실제 폐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사진 린지 펜트 프리랜서 기자(사진 설명 및 출처 : 한겨레신문)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동물원을 '동물감옥'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원은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교만에서 나온 공간이다. 각각의 개체가 살던 환경과 습성을 무시하고 인간의 생각대로 그들을 관리하는 잔혹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18년 전이다. 부끄럽지만 그 전에는 그런 개념이 거의 없었다. 큰아이가 동물을 유난히 좋아해서 동물원에 자주 갔다. 아이가 좋아하는 동물을 접하게 함으로써 교육적 자극을 제공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1997년,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동물원에서 고릴라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두 고릴라가 바닥에 앉아 있었다. 한 고릴라는 등을 보이고 앉아 있다가 천천히 얼굴을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 내 눈과 마주쳤다. 또 한 고릴라는 비스듬히 앞을 바라보면서 바닥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눈을 들어 자신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관람객을 쳐다보았다. 또 내 눈과 마주쳤다. 그때 내 심장은 덜컥하고 내려앉아 버렸다.

나는 고릴라의 눈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어떤 존재도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며 다시는 고향으로 갈 수 없을 거라는 무기력한 절망감. 그 감정이 짧게 이입됨을 느끼고는 어찌할 수 없는 맘으로 허둥지둥 그 자리를 떠났다.

'아. 이게 무슨 무서운 죄인가? 인간이 저보다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저렇게 잡아서 구경거리로 삼아도 되는 건가?' 그제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예전에는 감정없이 바라보던 동물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하나하나 괴로워 소리 없이 울부짖거나, 괴로움으로 제 정신을 놓아버린 것 같았다.

우리에 우두커니 서서 인간들을 바라보고 있는 듬성듬성 털 빠진 늑대, 더위에 어찌 할 줄 몰라 물속에 풍덩 들어갔다 나와서는,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흔들거리며 이상한 행동을 반복 하고 있는 북극곰, 한 바퀴 헤엄쳐 돌고는 시멘트 한가운데에 올라가서 절규하듯 우는 물개. 그들은 모두 아파 죽겠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고통을 호소하는 것처럼 보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었던가? 우리보다 고등한 외계인이 우리를 애완동물로 사서 기르는 단편 소설을 본 적이 있다. 실제 인간이 동물같이 格이 없는 존재로 취급되어 발가벗겨 우리에 가두어진다면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탈출하려고 발버둥 칠까? 아니면 이런 식으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목숨을 버릴까?

인간에게 人格이 있는 것처럼 동물에게도 格이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동물에게도 자존심이 있다고 하면 웃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개를 키워본 사람은 개에게도 독특한 품성과 자존심(格)이 있다는 것을 안다. 지난 4일치 한겨레 토요판에 나온 "시베리아 호랑이 ‘타티아나’는 ‘복수’ 때문에 동물원을 탈출했나"의 글을 보면 호랑이도 돌고래도 動物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릴라를 시작으로 動物格에 대해 깨달은 지 9년이나 지나서 동물들에 대한 미안함을 글로 썼다. 그리고 또 다시 9년 후 이글을 쓴다. 9년 전 나는 動物格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동물원의 폐쇄를 주장했다. 그 당시 그 주장은 좀 급진적이었다. 하지만 점차 동물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어 간다고 생각한다. 최근 서울대공원이 동물들을 팔아넘긴다는 기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동물원을 인간이 상업적 목적을 위해 동물을 학대수준으로 통제하는 장소'라고 규정하는 것 같다.

이제 동물원은 그 이름부터 바뀌어야 한다. 인간의 탐욕에 의해 멸종되어가는 희귀동물의 번식과 보존을 위한 장소나 열악한 환경으로 고통받는 동물의 구조와 치료를 위한 '동물보호원'으로 탈바꿈해야한다. 언제까지 관람을 위해 번식시키고, 남아도는 잉여동물을 팔아 치우는 짓을 할 것인가? 언제까지 수 만년 제 살던 곳과 전혀 다른 환경 속에 동물을 가두어 놓고는, 박수를 칠 셈인가?

가끔 나오는 한겨레의 지구환경에 대한 기사를 보면 한겨레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음을 안다. 물론 여기에도 기득권의 저항이 있겠지만 <동물원>이 <동물보호원>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인류보편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한겨레가 언론으로서 이런 운동에 앞장서면 좋겠다.

[참고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707515.html

편집 : 오성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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