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있어도... '노조'가 없다면 더 쉽게... 당신은 언제든 잘릴 수 있습니다

노동자에 관한 <한겨레>의 요즘 기사를 보면 많이 우울하다. 노동자의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기사들이 연이어 나오기 때문이다. 15일치 <‘노조’가 없다면…이제 당신은 언제든 잘릴 수 있습니다>를 보았다.

[관련기사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708821.html?dable=30.1.2

기사 내용 중 이병훈 중앙대 교수의 말은 이렇다. "취업규칙과 일반해고 완화는 합의문에 담는 것 자체가 산업현장과 노동시장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 무노조 사업장에선 ‘사회적 합의가 됐다’며 밀어붙일 터라 굉장히 우려된다. 노동시장 전반을 바꾼 1998년의 재판이 벌어질 수 있다”. 유감이다. 사실 <‘노조’가 없다면…이제 당신은 언제든 잘릴 수 있습니다>라는 기사 제목은 잘못되었다. <'노조'가 있어도... '노조'가 없다면 더 쉽게... 언제든 당신은 잘릴 수 있습니다>로 바꿔야 한다. 현실이 그러니까...

또 17일치에는 <노사정 합의조차 무시…새누리당, 기간제·파견법 강행>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관련기사 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709187.html

중요 내용을 보자면 이렇다. 새누리당이 법안을 5개 제출했다. 그런데 이중 기간제법(2년인 기간제-비정규직 노동자의 계약기간을 4년까지 연장)과 파견근로자보호법(파견노동자 허용 대상을 제조업과 고소득·전문직 고령자 등으로 확대)은 노동계가 폐기를 요구한 사안이다. 지난 13일 노사정 합의문에서도 이 두 법안만큼은 “관련 당사자를 참여시켜 공동실태조사,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집중적으로 진행해 대안을 마련하고, 합의사항은 정기국회 법안 의결 시 반영하도록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노사정의 합의에 개의치 않는 법안을 제출했다. 그들의 말은 일단 제출해본 거라 하지만 이제까지의 행태를 보면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다.

이제 노동자는 배만 곯지 않게 해주면 자본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머슴이 되가는 것 같다. 아니다. 그래도 집에서 부리던 머슴은 늙거나 병들어도 밥은 먹여준다. 그런데 이건 맘에 안 들면 언제든 내버리겠다는 말이니까 머슴이란 말도 과하다. 사용하다가 낡거나 병들면 팔아버리는 노예나 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 한다는데 모든 노동자들에게 헬조선이 다가온다는 느낌이다.

▲ 지난 9월 8일 미사에서

한 달 전 쌍용자동차 해고자를 위한 미사에 오신 신부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느 날 기차를 탔다. 그런데 표를 늦게 사는 바람에 좌석표 대신에 입석표를 끊었다. 혹시라도 빈 좌석이 있을까 두리번 거렸지만 그냥 희망사항이었다. 기차와 기차 사이의 통로에 서있는데 한 아주머니와 초등학생,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통로 공간의 바닥에 앉아 있었다. 아이 둘은 왜 좌석을 사지 않았냐고 엄마에게 투덜거렸다. 엄마는 조용조용히 입석을 살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아이들에게 설명해주었다.

아빠가 해고로 실직을 했고 엄마도 벌이가 줄어서 집안에 여유가 없다. 그래서 입석표를 살 수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가 끝났을 때 한 아이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그럼 이제 나도 알바 해야 돼?” 

먹먹하다. 가장의 해고는 가족 모두의 삶을 벼랑끝으로 내몬다. 어린 아이까지도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 참... 말이 안나오는 먹먹한 사회다. 어른들의 죄가 크다.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알바’를 생각해야 하고, 노동의 권리와 가치를 땅바닥에 처박아버리는 이런 나라까지 물려받게 되었는지... 정말 할 말이 없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이 있다. 쌍용자동차는 회계조작 의혹을 받으면서도 노동자를 해고했다. 정부는 노동자의 옥쇄파업을 마치 테러를 저지르는 양 선전했다. 노동자를 테러범처럼 때려잡는 장면을 전국에 생중계했다. 이들은 이력서의 경력난에 쌍용자동차를 쓸 수 없었다. 흉악범처럼 아무도 고용하지 않았다. 숨기고 들어갔다가 들통이 나면 또 해고를 당했다. 회사는 노동자를 해고했지만 정부는 노동자의 재취업까지 막았다. 회사의 경영 잘못으로 쫓겨난 것도 억울한데 국가는 불순한 노동자들이 회사를 어렵게 해서 해고한 것으로 여론을 몰아갔다. 회사가 땅바닥에 패대기치고 국가는 확인사살로 2번 죽이는 비정함을 저질렀다.

평택 쌍용자동차 앞에는 목숨을 걸고 단식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8월 31일부터 단식을 하고 있다. 바로 김득중 지부장이다. 9월 8일 미사에 갔을 때 9일차 단식이라 그런지 얼굴이 많이 핼쑥했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찼다. 오늘이 22일째...  그는 29번째의 죽음을 막기 위해 단식농성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스스로가 29번째의 제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든다. 이 사회가 피를 요구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국립대총장직선제도 피를 보고서야 관철되었다. 피가 보이지 않으면 눈도 꿈뻑하지 않는 사회라 자꾸 그런 걱정이 든다. 부디 그런 일이 없기를... 그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들려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 최근 사진. 지난 9월 8일 미사 때 본 것과 또 다른 모습이다. 많이 여위었다. 오늘 아침 쌍차해고자 염00님이 보내준 사진으로 정택용 사진작가가 찍은 것이다. 기사에 올리는 것도 허락했다고 한다.
▲ 오늘 아침 단식 22일 차다. 이 사진도 염00 쌍차해고자가 보내주었다. 염00씨는 원래 정리해고 대상자가 아니다. 하지만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생각에 옥쇄 파업에 참여했고 해고되었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염00씨의 길을 택하지 못했던 것처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해고자가 몇 있다. 그들의 정의로움과 동료사랑에 머리 숙여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편집 : 오성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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