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공자는 <주역>을 읽은 지 3년 만에 '지천명', 즉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원리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주역은 동양학의 뿌리라고도 합니다. 동양의 가장 오래된 경전이란 뜻이죠. 주역은 유학에서 말하는 '삼경' 중 하나입니다. 원래 이름은 <역경>인데 '주(周)나라시대의 역(易)’이란 뜻에서 <주역>이라고 부릅니다. 얼마 전 한겨레 주주가 된 김상학 주주님은 현재 대학 교육원에서 주역 노자 장자 역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요즘 동양철학 특히 주역에 대해 관심 갖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막상 호기심에 책을 들추면 너무 어려워 곧 덮어버리곤 할텐 데요. 이번 기회에 주역을 쉽게 접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김상학 주주의 '쉬운 역학(易學)'을 2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도(진리. 법)공부에는 두 가지 영역이 있다고 소개한 바가 있지요. 하나는 자연 이치를 공부하는 이법(理法) - 우주 천지 자연 이치인 음양오행 이치, 태극 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는 심법(心法) - 마음법.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지요(연재물 1회. 7회)

그 동안 이법을 중심으로 공부했는데 지금부터는 심법 곧 마음법에 대해 소개하려 하지요. 심법은 모든 신앙 종교 영역을 말한다고 보면 되지요. 흔히 마음의 평화,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심법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지요. 아래를 보시면 종교와 신앙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겠네요.

1) 종교 - 교주가 없는 진리(주역=역경. 베다,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 이법과 심법을 모두 포용.

2) 신앙교 - 교주가 있는 진리의 말씀. 완전 심법에 해당.

 ①스스로 깨닫는 교 - 숲, 명상의 교 (불교. 유교. 도교...)

 ②신을 믿는 교 - 사막의 교(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이것은 접근하는 방법론이지 이법과 심법이 결국은 근본체에서 보면 하나이지요. 이 중에 공부 목적과 방법론이 100% 마음에 대한 신앙 종교는 불교철학이라지요. 절에 나가달라는 말씀이 절대 아니니까 오해가 없으시도록 해 주시지요. 불교철학은 ‘수행해서 크게 깨달으면(대각) 각자 자신이 부처이다’라는 말이지요. 놀랍지요. 그런 깨달음의 씨가 자신 안에 있다는 말씀이지요. 놀랄 것도 없네요.

그래서 팔만대장경이라는 많은 불교 경서를 두 글자로 요약하면 ‘마음’이고, 한 글자로 하면 ‘심心’ 그리고 ‘공空’이라지요. 또한 간화선 화두 참선 수행에서 기본 1,701공안(公安)을 말하는데, 이 모든 공안 화두(話頭)가 한 마음(一心) 자리를 가르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불교 공부에서 두 갈래인 교학과 선학 모두가 ‘내 본 마음 자리心’에 대한 공부라지요. 그래서 절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불교 철학은 누구라도 꼭 공부를 해 볼 필요가 있지요.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서양에도 이미 많이 소개가 되어 있다지요. 쇼펜하우어, 니이체, 토인비, 헤르만 헷세, 아인쉬타인, 칼 융, 프로이트...등등. 근래에는 틱낫한 스님, 달라이 라마, 티벳 불교, 대만 불교, 동남아시아 불교, 일본 선불교의 영향으로 불교의 선과 명상이 쓰나미처럼 물결치고 있다지요. 최고 최선의 마음 공부이니까요.

불교 철학에서는 사람(나)을 5온(縕)이라 한다지요. 사람이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때 ‘다섯 가지로 쌓여 있는 덩어리’라는 것이지요. 그 다섯 가지가 색(육체), 수, 상, 행, 식(정신)이지요. 이 육체와 정신을 심법의 측면에서 9식론으로 살핀 것이 <9식론>이 되겠네요.

불교 철학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유심론(唯心論)이라 하는데 구체적으로 9식론을 공부하면 마음의 작동원리를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러면, ‘내 마음 나도 몰라’가 아니고 ‘내 마음 나도 알아’가 되겠지요.

우리들은 모르는 장소에 가면 헤메게 되지요. 길을 몰라서요. 내가 불안 초조, 외롭고 괴롭고, 두렵고... 헤메일 경우도 흔히 있겠지요. 왜? 나를 모르기 때문이라지요. 따라서 마음의 작동 원리를 알면 내 마음을 조절할 수가 있겠지요(마인드 콘트롤).

우리 민족은 어릴 때부터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의식 훈련이 약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과 관념에 대해서는 의구심만 더 커지는 경향이 많지요. 특히 신과 영혼과 기도와 연결되어 있는 신앙 종교의 영역이라면 더하겠지요. 그러면 내 마음을 내가 알고(心法), 내 몸을 내가 알면(理法) 이런 방황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지요. 우울증 같은 신경성 앓이는 많이 해결할 수 있겠네요(연재물 12회)

그러면 ‘나’라는 존재는 육체(body) = 색(1식~5식)과 정신 곧 의식(spirit) = 수상행식(6식, 7식, 8식). 그리고 정신 속의 고갱이 곧 영혼(soul.9식)으로 된 것이네요. 아래 <9식론>을 통해 내 마음이 어떻게 짜여져 있으며, 어떻게 작동을 하고 있는지 한번 알아보시지요.

- 제1식 안식(眼識) : 눈 - 시각

- 제2식 이식(耳識) : 귀 - 청각

- 제3식 비식(鼻識) : 코 - 후각

- 제4식 설식(舌識) : 혀 - 미각

- 제5식 신식(身識) : 몸 - 촉각

이상 다섯 가지는 6식 이전이라 해서 전5식(前五識)이라고도 한다지요. 오관으로서 감각능력이며 기분. 감정. 정서로 표현된다고 할 수 있지요.

- 제6식 의식(意識) : 전5식을 통해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말하며 전5식을 총 괄하는 분대장격인 가장 가까운 의식이고 제7식을 배경으로 순간순간 나타나 는 생각으로 사고능력, 요별정식이라 불리우지요.

- 제7식 말라식(末那識) - 6식의 생각들이 떠오르면 8식에 저장되어 있던 업식 을 배경으로 분별하고 판단하게 되지요. 자아의식이라 하지요. 제6식의 근간 이 되는 아의식(我意識)이고 강한 자아의식으로 제7식(第七識)이지요. 산스크 리트로󰡐마나스‘이며 제8식을 배경으로 생각을 결정한다지요.

- 제8식 아뢰야식 - 어릴 때부터 이미 경험되어 있던 잠재의식 곧 무의식이라 지요. 나타나 있지 않고 인간의 마음 가장 밑바닥에 숨겨져 있는 하나의 잠 재의식(心王)이라네요. 장식(藏識),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라 하고요. 흔히 업식(業識)이라 하며 자기 생각의 집이고, 카메라 필름, 비디오 테이프에 비 유될 수 있다지요.

- 제9식 아말라식 - 본 마음. 맑은 물, 텅 빈 허공, 깨끗한 거울, 밝은 태양 같은 마음으로 비유하지요. 불교에서는 이 8식에 가리고 있는 무명(無明)이 없어진 밝고 맑고 깨끗한 상태를 이루는 것을 반야(般若) 즉, 지혜를 이룬 경 지라고 한다지요.

그러므로, 청정식(淸淨識), 무구식(無垢識), 이구식(離垢識), 백정식(白淨識) 등 으로 의역되고, 불성. 진여. 자성. 본성. 양심. 일심. 영혼. 본마음 자리. 본래 면목. 본지풍광. 영원한 생명. 하느님. 알라. 신 등등으로 불리워지는 마음 자리인 것이지요. ‘나’라는 자신이 때에 따라 아버지, 남편, 여보, 선생님, 고 객, 승객, 손님, 이모부, 아저씨... 등등으로 불리우 듯이 말이지요.

<오온=나. 사람>

우리 보통 사람들은 5관(5식)을 통해 들어온 사실에 대해 생각이라는 의식(6식)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어릴 때부터 저장되어 있던 생각(8식)을 바탕으로 해서, 자의식(7식)이 알아차리고 판단 결정을 하는 것이라지요. 그러면 이 마음(뇌)의 회로가 질서 있고 조화롭게 작동을 하면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가 되겠네요.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해서 착각 오류를 저지르고, 더우기 이 회로가 엉키면 정신 상태에 이상이 온다는 것이지요. 조울증, 우울증, 빙의, 신병, 공황 장애 등 모든 정신 장애 현상이 되겠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중생(衆生 진흙) 놀음을 하면서 자기 생각에 속고, 꿈속에서 살다가 일생을 마친다는 것이지요. 1식에서 8식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면서 9식을 모른다고 하지요. 3독 - 탐욕. 성냄. 어리석음. 3독(탐. 진. 치)에 메이고, 5욕 - 식재색수명(식욕. 재욕. 색욕. 수면욕. 명예욕=권력욕)에 끌려 다니며 노예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지요. 9식, 아말라식 자리를 알아서 깨달은 사람 즉 부처(佛陀 연꽃)로 살라는 것이지요.

결국, 우리들의 본 마음(眞我)은 맑은 물 같고, 티 없는 허공 같고, 깨끗한 거울 같고, 밝은 광명의 태양 같은 9식의 소유자들인데 6식, 7식, 8식(假我) 사이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진짜 마음이고 자기 자신인 줄 착각을 하고 산다고 하네요.

이것을 모르고 살기 때문에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윤회를 거듭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항상 자기 위주의 선입견, 고정관념, 색안경, 편견으로 범벅이 된 7식 곧 말라식의 결정을 믿고 산다지요. 착각 오류이지요. 중생놀음으로 사는 것이겠지요. 때문에 그것이 사실과 진실과 진리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말라식(7식)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바로 (아)말라식, 9식이라고 한다지요. 기도하고 수행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살펴볼 때 이 9식 자리를 보는 것이라네요. 그 자리가 나의 영혼, 양심, 본 마음 자리이니까요. 그러면 부처(깨달은 사람)가 된다네요.

사유의 극치이네요. 와, 대단하네요.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김상학 주주통신원  saram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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