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공자는 <주역>을 읽은 지 3년 만에 '지천명', 즉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원리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주역은 동양학의 뿌리라고도 합니다. 동양의 가장 오래된 경전이란 뜻이죠. 주역은 유학에서 말하는 '삼경' 중 하나입니다. 원래 이름은 <역경>인데 '주(周)나라시대의 역(易)’이란 뜻에서 <주역>이라고 부릅니다. 한겨레 주주인 김상학 주주님은 현재 대학 교육원에서 주역 노자 장자 역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요즘 동양철학 특히 주역에 대해 관심 갖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막상 호기심에 책을 들추면 너무 어려워 곧 덮어버리곤 할텐 데요. 이번 기회에 주역을 쉽게 접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김상학 주주의 '쉬운 역학(易學)'을 2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지금은 심법을 소개하고 있지요. 그 중에 100% 마음을 탐구하는 불교철학이지요. 몇 차례 더 안내하고 이법의 주역과 우주 원리로 돌아가려 하지요. 불교를 홍보하고 절에 나가시라는 말씀으로 오해하시면 슬픈 일이지요. 매우 심각한 색안경과 고정관념으로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서는 꼭 짚어 놓아야 할 일이지요.

불교 철학에서는 인간은 무명無明, 무지無知로 인해 3독毒 5욕慾에 휩싸여 스스로가 맑은 불성을 가진 참 부처임(깨달은 사람)을 알지 못한다지요. 그래서 마음 밖에서 참된 진리를 구하거나 찾지 말라는 것이지요(心外無法). 오직 스스로가 부처이고, 부처가 되는 길을 깨닫는 것만이 고통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解脫)이라고 하지요.

이것이 인생 최대 최고의 난제인 ‘생사 해탈’ 문제라는 것이지요.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추구하는 행복은 잠시이고, 그 뒤에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지요. 바로 행불행이 반복되는 윤회의 굴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생사 문제를 해결하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鳥飛空而 不知空(조비공이 부지공)

魚在水而 不知深(어재수이 부지심)

人在道而 不知道(인재도이 부지도)

眞在中而 不知覺(진재중이 부지각) -서산대사-

새가 허공을 날아도, 허공인 줄 모르고,

고기는 물속에 있어도, 그 깊이를 모른다.

사람은 도에 있어도, 도를 모르고,

진리 속에 있어도, 깨닫지를 못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진리 속에 있어도 진리를 모르고 살듯이 자기의 본 성품을 모르고 고통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지요. 흔히 이 고통들은 외부에서 온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지요. 그런데 냉정히 꿰뚫어 보면 결국은 자기 스스로의 마음에서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지요. 물론 외부의 요인이 있었지만 그것이 고통을 준 것은 아니라지요. 그 고통은 자기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라지요. 이것을 관찰하여 꿰뚫어 보면 고통스러울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결국 마음이 문제이네요.

 

인지이도자(因地而倒者), 인지이기(因地而起)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서라. -보조국사 지눌-

고통은 근원적으로 마음에서부터 생겨나서 힘들고 좌절하는 것이니까, 마음을 바탕으로 해서 마음을 일으켜 세우라는 뜻이라지요. 그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는 것이지요. ‘모든 것은 마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힘든 사람들을 위로해 줄 때 ‘모두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으니까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도 하지요. 물론 이렇게 사용을 할 수도 있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안 되는 일이 흔히 있지요. 그래서 일체유심조의 본 뜻은 ‘마음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다’는 의미가 정확한 것이지요. 유학(儒學)에도 이와 같은 좋은 말이 있네요.

 

心不在焉(심불재언) 마음이 있지 않으면

視而不見(시이불견) 보아도 보이지 않고          

聽而不聞(청이불문) 들어도 들리지 않고

食不知其味(식부지기미)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예기 禮記-

우리들의 5관 - 눈, 귀, 코, 혀, 몸 -은 단지 기관일 뿐이고 알아차리는 것은 마음(뇌)이 한다는 뜻이지요. 결국, 심법에서는 모두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네요.

 

不是風動(불시풍동)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不是幡動(불시번동) 번(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仁者心動(인자심동) 오직, 그대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 -6조 혜능-

혜능 대사의 말을 인용해 보면 바람도, 깃발도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지요. 이것이 심법의 이치이지요. 물론 바람에 깃발이 흔들리는 것은 엄연히 이법이 되는 것이지요(연재물 3회).

이런 심법 공부는 대학까지에서 하는 학문 진리 탐구의 지식 공부를 넘어선 공부이지요. 지식 이전의 공부라 해서 언어문자를 초월한 공부라 하지요. 이 공부는 차별 분별하고 분석하는 지식 공부가 아닌 통찰지, 초월지, 무분별지라고도 하지요. 진리의 세계이기 때문이지요. ‘안다, 모른다’의 분별하는 공부가 아니라 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자리’로 돌아가지요. 이것은 ‘아는 모름’이 되는 것이지요(연재물 1회). 화두 참선 간화선 수행의 출발점이 바로 이 지점이라지요.

▲ 마음 비움의 미학 명상(각산 스님 참불선원 선원장. 사진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751105.html)

지식 공부는 밖으로 탐구하고 취하는 공부이지만, 도(진리 법), 지혜 공부는 안으로 깨닫는 공부이니까요. 그러면 차별 분별하지 않고 어떻게 살란 말인가? 이런 물음이 나오겠지요. 우리들은 눈만 뜨면 좋고 싫고(愛惡), 옳고 그르고(是非), 아름답고 추하고(美醜)...등등으로 사는데 말이지요. 그렇게 살 수뿐이 없는데 말이지요. 바로 이 지점이지요. 차별 분별하지 않는 본 마음 자리(9식)를 본 사람은 이것을 알아차리고 지혜의 눈(正見)으로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많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네요.

 

1)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知(0도)

2) 산은 물이 되고, 물은 산이 되고.............智(180도)

3) 역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知(360도)

 -山是山 水是水 (청원 유신 선사)

1)은 개인의 선입견, 고정관념, 색안경, 편견으로 보는 것이고, 2)는 공부를 좀 해서 지식이나 법칙의 편견으로 보는 것이라지요. 이 모두가 고통을 야기한다네요. 3)은 그런 차별 분별이 없는 지혜의 눈이 생겨난다지요. 그러면 고통에서 벗어나서 행복할 수 있는 정신적인 근육이 생겨난다는 것이지요. 0도 자리나 360도 자리는 같은 자리이면서도 다른 자리가 되네요.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 베이컨의 4대 우상 비유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지도무난(至道無難)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유혐간택(有嫌揀擇)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단막증애(但莫憎愛)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통연명백(洞然明白) 통연히 명백하니라. -3조 승찬 대사-

승찬 대사는 ‘차별 분별(간택)하지 않으면 훤히 볼 수 있다’고 말씀하지요. 이것이 공(空)으로 보는 것이고, 공으로 보면 고통이 사라지고, 곧 중도를 견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그의 불후의 명저 <신심명>을 관통하는 요지이지요.

공이라 함은 없다는 말이 아니지요. 모든 것은 상호 의존하면서 항상 변하기 때문에 임시로 있는 것이고 영원히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지요. 물이 증발하면 사라지지만 다시 안개, 비, 서리, 눈으로 돌아오듯이 말이지요. 공은 비어 있다(虛), 청정하다는 의미가 더 잘 통하겠네요. 그래서 비어 있기 때문에 무엇으로든지 채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 국민의 마음이 모여 보석을 만들다 (사진출처 : 한겨레 21/ http://h21.hani.co.kr/arti/photo/story/42789.html)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김상학 주주통신원  saram54@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