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 어느 여름날 중학입시 과외를 위해 교실에서 합숙을 하던 선생님이 코를 싸쥐는데

여름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이 아직도 무더위를 이겨내고 있는 들판의 가쁜 숨결을 담아서 후덥지근한 온도와 습도를 교실에 전하고 달아나곤 하였다.

7교시? 사실은 아침부터 따지자면 벌써 10교시가 되는 시간이다. 아침에 두 시간을 하고, 집에 가서 아침밥을 먹고 와서 다른 학생들이 1교시를 하기 전에 벌써 자습시간에 문제지 한 장을 풀어서 채점까지 마쳤으니, 한 시간을 보낸 셈이다. 그리고 7교시이니깐 오늘 벌써 10교시 째라는 계산이 맞는 것이다.

공부시간이 아니라서 종을 쳐주는 시간도 아니다. 이미 다른 학생들은 모두 집에 돌아가고, 학교에는 6학년 우리 반의 아이들만이 남아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쉬는 시간이면 내보내고 다시 “들어 와!” 소리치시면 다음 시간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이미 7교시가 끝났으니 다른 학년들이 6교시 공부가 끝나고 청소를 마치고 이미 집으로 돌아가 버린 시간이었다. 온 운동장이 우리 차지이지만 아이들은 운동장까지 나가지도 않고 교실 앞의 공간에서 잠시 장난질을 하다가 들어오라면 들어와 공부를 해야 하므로 뛰어 놀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미 공부하기도 몸이 지치고 힘이 들어서 뛰어 놀 힘도 없었는지 모른다.

▲ 득량서초등학교 제10회 졸업사진

그런데 웬일인지 7교시가 끝나고 8교시 공부시간이 시작될 시간이 되었는데도 선생님의 “들어 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교실에 있는 몇몇 아이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은 보였지만, 들어오라는 소리가 없으니 한두 명은 ‘시간이 되었으니 들어가자‘하고 생각하고 교실로 들어가기도 하고 아직도 남은 시간 동안 밖에서 쉬자고 생각한 아이들은 아직도 자기들 끼리 장난을 하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얘들아! 들어 와!”

선생님이 아닌 여자 아이들이 소리쳤다.

운동장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무슨 큰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다투어 가면서 교실로 들어왔다.

“자 이 시간에는 자연 공부를 하는 시간인데, 선생님이 조금 쉬어야 하겠으니, 다음 시간에 할 문제 풀이를 먼저 하자.” 선생님이 말씀 하시고 항상 하듯이 시험지를 앞줄의 친구들에게 숫자를 헤아려 나누어 주셨다. 시험지는 자기 것 한 장을 남겨 놓고 뒷사람에게로 번쩍번쩍 넘어갔다.

아이들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히 문제 풀기에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싸락싸락 연필 소리만 교실 안을 맴돌다간 바람에 실려 운동장으로 빠져 나가곤 하였다. 아이들은 매 시간 전쟁이었다. 이 시간에 문제 풀이를 하여서 틀리면 틀린 갯수대로 손바닥을 맞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라도 덜 틀리기 위해서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 졸업식이 끝나고 졸업생을 선생님들이 줄을 서서 배웅을 한다

하두 선생님이 강조를 하셨기 때문에 시험 문제지를 받으면 이름 쓰고 다시 확인하고 나서 문제 풀이를 시작하는 데도 원칙이 있다.

(1) 다음에서 열전도율이 낮은 것이 아닌 것은?

이라는 문제지가 있다면 이것을 처음부터 읽으면 실수를 하기 쉬우므로 반드시 끝부분의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는 부분을 먼저 읽어야 한다. 이 문제를 바르게 읽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끝 부분의 ‘낮은 것이 아닌 것은? ‘을 읽고 무엇을 찾을 것인가를 먼저 확인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맞는 것을 찾느냐? 아니면 틀린 것 또는 아닌 것?]을 찾느냐를 먼저 확인을 하고서 [! 아닌 것을 찾으라고?] ’그러면 무엇이 아닌 것을 찾으란 말이지?’하고, 이제 다시 문제의 처음부터 다시 읽는 것이다.

‘(1) 다음에서 열전도율이 낮은 것이 아닌 것은?’ 그래? <열전도율이 낮은 것>이 <아닌 것>을 찾으란 말이지? 하고 이제 보기에서 찾으면 틀림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 많이 틀리는 이런 문제 때문에 선생님이 개발한 방법이다. 이렇게 문제를 두 번에 나누어 읽게 만들어서 꼭 확인을 하게 만들어 주신 것이다.

이것을 처음부터 문제를 읽으면 <(1) 다음에서 열전도율이 낮은 것> 여기 까지만 읽고서 ‘아 전도율이 낮은 것은 바로 이것이지’ 하고 찍어 놓으면 영락없이 틀린 답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우리들이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특히 이런 부정 질문문항<아닌 것, 틀린 것>을 찾는 문항을 틀리면 반드시 손바닥을 맞아야 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너무 조용하여서 시험지에서 잠시 눈을 떼고 교실을 둘러보니 선생님이 안 계신다.

‘어? 선생님이 어디 가셨지? 이런 일이 없는데.....’

이렇게 생각을 하고 다시 반대쪽을 둘러보는데, 여자 반장이 얼른 나에게 손짓을 한다.

‘어서 문제나 풀어라.’는 신호로 시험지에 손가락질을 해대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입모양만으로 “왜?”하였더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손가락을 입 가운데에 대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였지만, 일단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문제지를 모두 풀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아직도 20분가량이나 남아 있다. 나는 문제를 푸는데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다. 아무리 천천히 한다고 하여도 40분 중에 20분 정도면 벌써 끝나 버리고 만다. 바로 내가 선생님이 말씀 하신 그런 함정에 잘 빠지는 사람이었다. 빨리 읽고 빨리 찾다 보면 끝까지 보지 않고 곧장<(1) 다음에서 열전도율이 낮은 것?> 그거야 이거지‘ 하고 틀린 답을 찍곤 하였다. 그러다가 선생님한테 혼이 나고서는 이제는 이런 실수를 덜 하게 되었다.

나는 다시 시험지를 한 번 다시 살펴보기로 하였다.

(1) 아닌 것은? 그래 맞았지, (2) 옳은 것은? 그래 이게 맞는 것이지... 이렇게 다시 확인을 하는데도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다시 확인 까지 마친 나는 시험지를 책상 위에 엎어 놓고서 그 위에 책받침을 얹어서 옆에서 보지 못하게 만들고 나서야 자리를 떠났다. 시험지를 엎어 놓는다 하여도 문제가 양면이기 때문에 그 부분이 보이니까 책받침까지 동원을 하여서 덮어야 하는 것이다.

▲ 졸업 전날 사은회장

남자반장인 내가 나가는 것을 보고 여자 반장이 ‘곧 나갈게’라는 신호를 보냈다.

‘무슨 일이지?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하고 생각을 하면서 교실 밖으로 나와서 교실의 뒤편 좀 으슥한 곳으로 가서 서 있었다. 여자 반장이 나오면 곧장 알아보기 위해서 조용한 곳으로 오라는 셈이었다.

‘아이 왜 안 나오는 거야? 바보 같이 그렇게 쉬운 문제도 아직 못 풀었나?’

나는 속으로 어서 나오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궁시렁 거렸다.

“야, 우리 선생님 야단났어!”

언제 나왔는지 여자반장이 내 뒤통수에 대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물론 큰 소릴 하는 것은 아니었다. 교실에 안 들릴 만큼 속삭이는 소리지만 보통 때에 그런 소리룰 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쉴 시간에 선생님이 갑자기 얼굴을 싸안으시기에 보니까 코피가 터지셨는데, 글쎄 두 손바닥에 한 웅큼 가득 고여서 넘치는 거야.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데 어쩔 줄 모르겠더라. 선생님은 얼른 세수 대야에 피를 버리고 다시 한 손으로 코를 잡고 교실 밖으로 나가셨어. 그래서 교실에 흘러내린 피는 내가 닦아 내었는데 걸레에 가득 싸서 대야에 버리고 또 닦아서 버리고 하여서 간신히 피를 치우고 걸레를 빨아다가 닦았는데, 혹시 교실에서 피 냄새가 날까 봐서 얼른 들어오라고 하지 못했거든, 지금 선생님이 너무 피를 흘리셔서 어지러우신가 봐. 이제 우리끼리 좀 하고 쉬시게 해드리자.” 여자 반장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무리 6학년 담임이라고 저렇게 날마다 종일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나서, 아이들과 함께 교실바닥에서 아이들의 가운데에서 잠을 자고, 온 종일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가르치신다는 것은 보통 선생님은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런데 저렇게 우리들을 위해서 온 몸을 바쳐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이제 아파서 쓰러지시면 큰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야.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여자 반장은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 알겠지. 너만 알고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마!” 다짐은 주고 또 주는 소리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는데,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선생님이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계셨던가 보다.

“염려해 주어서 고맙다. 이젠 괜찮으니 걱정 말아라. 내가 너무 지쳤던가 보구나. 자 들어가자.” 하시면서 앞장을 서서 교실로 들어가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한 사람씩 교실로 들어서니 아이들은 시험지가 거의 끝나 있었다.

“자, 다들 끝났니? 이제 채점부터 해볼까?”

선생님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걱정이 되어서 선생님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얼굴이 약간 푸석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 보아서일까?

▲ 졸업식에 쓸 화환도 담임이 직접 만들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졸업생들
▲ 졸업식에 쓸 화환도 담임이 직접 만들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졸업생들

그러나 선생님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이리 넘기고 다시 넘겨서 가로 세로로 바꾸어진 시험지를 가지고 채점을 마치고 틀린 부분을 다시 확인하고, 또 부정 질문의 부분이 틀린 사람은 일어서라고 하셨다.

이번 시간의 시험지는 모두 5문제가 있었는데 한 문제씩 틀린 사람은 일어서라고 하시더니,

“자 양팔을 수평으로 드세요. 그럼 양팔을 위로 들어서 손뼉을 세 번 치는데 소리가 약하면 몇 번이고 다시 하겠습니다. 자! 하나!, 둘, 셋” 자기 힘껏 손뼉을 치고서는 손바닥을 호호 부는 아이도 있었다.

“오늘은 내가 때린 거 아니잖아 스스로 때려 놓고서 그렇게 아파?”

선생님은 이런 농담으로 아이들을 웃겨 주었다.

다섯 문제를 차례로 하고 나서

“정민, 영석, 경자 이리 나오세요.” 하시는데 5문제가 모두 틀린 아이들이었다. 이렇게 불려 나간 아이들은 이제 선생님께 다시 다섯 대씩 손바닥을 맞아야 했다.

“그렇게 문제를 잘 읽으라고 하였는데 이런 문제에서 또 틀려? 앞으로는 다시 틀리지 않게 하는 거다. 알겠어?”

다시 다짐을 받으시면서 손바닥을 때려 주셨다.

이 시간이 끝나고 한 시간을 더 하고나니까,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집에 가시는데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가서 저녁을 먹고 제 시간에 꼭 와야 한다?”하고 다짐을 받으시면서 집으로 가셨다. 저녁을 잡수시고 오시기까지 1시간 동안이 걸리시는 것이다. 우리들도 모두 부지런히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학교로 달려 와야 한다.

저녁 7시경이 되니 벌써 해는 지고 점점 어둠이 내리려고 하였다. 우리들이 다시 한 시간 공부를 하고 시험지를 받아서 풀려고 할 때는 이미 어둠이 시작되었다.

“자 조심들 하고 등에 불을 켜야지.”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은 교실 구석에 모아둔 등을 하나씩 꺼내어서 불을 켜서 자기 책상에 가져다 놓았다.

우리 면내에 보성강수력발전소가 있다. 그러나 우리 학교 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는 득량국민학교<발전소 직원 아이들이 다니고 있고 발전소에서 직선거리로 400m 정도 밖에 안 되는 학교>에도 전기가 들어가자 않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우리 학교야 물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학교 이었다. 그러다보니 밤에 공부를 하려면 이렇게 석유등에 불을 켜서 책상 위에 올려놓아야만 하였다.

이렇게 호롱불을 밝히고 공부를 시작하여서 벌써 4시간째가 되었다.

▲ 폐교 되기 전의 학교 모습

시간은 벌써 11시가 거의 되어 있는 시간이었다. 농촌에서는 보통 9시나 10쯤이면 잠을 자는데 우리는 11시가 되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하루 15교시 수업을 마친 다음이었다.

“자 등불 가져다 잘 보관하고 걸레질은 간단히 하자. 그리고 잠을 푹 자야 하니까 적당한 간격으로 옆 사람에게 발길질은 하지 말아라.”

“예에에에” 아이들은 어서 자고 싶어서 길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리시는 동안 선생님은 그날의 일기를 쓰시고 나서 잠든 아이들을 살펴 주시고 나서야 주무신다.

11시 30분이 거의 되서야 아이들의 사이에 선생님도 자리를 깔고 누우셨다.

2016.05.09.18:44‘<32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선태 주주통신원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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