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대만 타이난(臺南)에 아파트 분양을 받아서 1월 초순에 입주했다고 우리 가족을 초대했다. 식구들에게 함께 가겠냐고 넌지시 물어봤다. 딸이야 어딜 가든 따라오는 아이라서 문제가 없지만, 남편은 은근 까다로운 편이라서 거절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함께 가잔다. 대신 낮에는 같이 다니고 잠은 호텔에서 자는 조건으로... 그렇게 하면 초대한 친구가 오히려 불편해할 것 같다며 가지 말자 했더니 아무 말이 없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부인(不人)’이란다. 무서워서(?) 할 수없이 따라간다는 의미다.

설 연휴 앞에 3일 휴가를 내서 6박 7일의 일정을 잡았다. 결혼해서 30년 넘게 살면서 추석 차례 한번 빼먹었고 이번이 두 번째다. 좀 찜찜했지만 남편은 그만하면 착실한 며느리라고 조상들이 다 이해해준단다.

급하게 비행기를 알아보니 臺南으로 가는 비행기를 잡기가 어려웠다. 할 수 없이 타이베이(臺北) 타오위안 공항으로 가서 타이베이에서 3일 지내다가, 타이난으로 가서 3일 지내고 카오슝(高雄)공항에서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어찌 보면 잘된 일이다. 대만의 가장 중요한 도시 타이베이와 타이난, 둘 다 구경할 수 있으니 말이다.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해서 타이베이 중심가의 호텔까지 택시를 탔다. 오로지 김치만 갖고 오라는 친구에게 줄 김치를 포함한 먹을거리를 싼 짐이 이민가방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타오위안 공항에서 타이베이 중심가로 이동하려면 먼저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기차를 타야했다. 큰 짐이 너무 버거워서 택시를 탔는데 한번 타지 두 번 탈 수는 없을 것 같다. 완전 브레이크 꽉꽉 지그재그 총알택시. 멀미는 물론 사고가 날까봐 어찌나 무서운지 앞의자를 꼭 잡고 긴장을 하고 갔다. 운전기사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았다. 아무리 슬로우 슬로우를 말해도 먹히질 않았다. 못 알아듣는 건지 아님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건지... 혹시 우릴 납치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에 기사증빙 표시도 사진으로 찍어놓고 중간 중간 위치 사진을 찍어 친구 카톡에 보냈다.

▲ 총알택시 안

미친 듯이 달려 타이베이 시내로 들어오긴 왔는데 이번엔 기사가 우리 호텔이 어디인지 잘 모르는 거다. 같은 이름의 카페에 우릴 내려주려고 해서 기겁을 하고 여기가 아니라고 하면서 안 내렸다. 지나가는 사람 중에 영어가 되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서 간신히 뺑뺑 돌아 호텔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같은 이름의 카페는 호텔 건물 뒤편 길에 있는 카페였다. 2017년 3월부터는 타오위안 공항에서 타이베이 중앙역까지 기차가 개통한다고 한다. 타오위안 공항에서 시내로 가실 분은 반드시 기차를 이용하시길...

▲ 도착 첫날 호텔 근처 타이베이 시내 모습

호텔은 다행히 24시간 체크인을 했다. 낮 12시 넘어 도착해서 좀 쉬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중정공원과 龍山寺에 가기로 했다.

중정공원은 장개석 총통의 본명 장중정(蔣中正)을 따서 지은 공원이다. 공원 안에는 중정기념당도 있다. 국민당의 장개석은 일본 항복 후 중국 전체를 잠시 가졌다가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넘어왔다. 그 때 장개석의 심정은 어땠을까? 청나라를 이은 중화민국 황제까지 꿈꾸었을 텐데...

중정기념당은 대만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나라에 이승만기념관이나 박정희기념관이 생긴다면 같은 의미일까? 온건한 독재를 20년 했다 하니 우리보다는 나을까?

지금 대만인의 인구분포를 보면 원주민의 비율은 2% 정도다. 98%는 한족(漢族)인데 ‘본성인’과 ‘외성인’으로 갈린다. ‘본성인(本省人)’은 명·청나라 시절 대만에 온 초기 이주자들로 인구의 84%다. ‘외성인(外省人)’은 장개석 국민당 정부와 함께 온 사람들로 인구의 14%다. 문제는 14%의 국민당 정부와 함께 온 사람들이 장기 집권하면서 기득권층으로 발전하여 84%의 본성인에 대해 심각한 차별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1947년 발생한 2.28 사건은 본성인과 외성인을 갈라놓아 버린 사건이다. 밀수담배를 팔던 한 여성이 단속공무원의 가격으로 중상을 입자, 2월 28일 분노한 군중들이 봉기하고, 군과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을 발사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3월 8일, 본토의 국민당 군대가 대만에 와서 유혈 진압을 하면서 3만 명의 본성인을 학살했다.

이런 국민당의 총통 장개석의 이름을 딴 중정공원은 1980년에 중국의 전통양식으로 지어졌다. 우아한 정문 양쪽으로는 아름다운 국립 극장과 콘서트홀 건물이 있다. 정문과 마주보고 있는 중정기념당에 장개석 동상이 있고 장개석의 일생을 사진으로 전시한 기념실도 있다.

▲ 정문
▲ 정문 양쪽으로 국립극장과 콘서트홀
▲ 아름다운 국립극장 앞에서 결혼기념 사진을 찍는 신랑신부
▲ 정문에서 마주 보이는 중정기념당
▲ 장개석 총통 동상

중정기념당은 높고 넓고 화려하긴 했지만 의외로 구식에 구석구석 관리가 허술했다. 우선 화장실에 가보고는 놀랐다. 쪼그리고 앉아서 볼 일을 보는 화장실이었다. 보수해야할 곳도 보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정권을 물려준 아들 장경국 시대가 끝나면서 장개석의 위세가 떨어져버린 걸까? 국민당 시대에서 민진당 시대로 넘어가서 그럴까?

▲ 보수가 필요한 중정기념당

중정기념당 안에는 무료 전시장이 있었다. 봄을 알리는 매화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늘 그림 보는 것을 즐기는 우리 가족은 실컷 눈호강을 했다. 각종 꽃이 그려진 燈도 아름다웠다.

▲ 매화전

다시 전철을 이용해서 용산사(龍山寺)에 갔다. 용산사는 대만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절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앞뜰에서 정말 열심히 기도를 한다. 간절히 기도할 것이 많은 듯하다.

▲ 용산사
▲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기도하는 사람들

절의 천장은 하루 종일 이어지는 촛불의 행렬 때문에 그을어서 검다. 그래 불도 났을까? 1738년에 처음 지어졌는데 여러 차례 불이 나서 다시 지었다고 한다.

▲ 염원의 촛불로 그을린 천장

국가 2급 고적이라 하는데 한국의 오래된 절에서 느낄 수 있는 고풍스러운 모습이라던가, 은은한 향기라던가, 고즈넉한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절은 속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만 사람들에게 절은 속상할 때 이웃집 가듯 찾아가 하소연하는 생활 속의 친근하고 익숙한 공간이 아닐까 싶다.

▲ 이웃집 마실 나온 사람처럼. 동네 도서관에 공부하러 나온 사람처럼 자리 잡고 책을 보는 두 사람

사람들은 용산사에 와서 미래도 점친다. 꽂혀있는 긴 나무 막대를 꺼내면 무슨 숫자가 나온다. 그 숫자가 가진 의미를 찾는다. 딸은 궁금하다며 다른 관광객의 도움으로 미래를 점쳤는데 ‘지금은 아니다‘라고 나왔다. 좀 실망한 듯하다. ㅎㅎㅎ

▲ 막대를 뽑아 그 숫자가 적힌 종이를 찾아서 또 그 종이에 적인 내용을 찾아서.. 미래 찾아 삼만리

 

참고기사 : [대만이야기 8] 대만의 슬픈 역사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13

참고기사 :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727415.html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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