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수록(어머니의 노래)

 어머니께서 생전에 자주 부르시던 노래가 있었다. 1991년에 작고하셨으니 노래 음률은 아련하고 가사도 가물가물하였다. 간절한 마음으로 70대 중반이 되신 누님들께 전화로 여쭈었더니, 수화기를 통해 나지막한 노래와 가사가 들려왔다. 누님들이 부르시는 노래와 함께 어머니의 모습도 안개처럼 뿌옇게 다가왔다. 어머니가 그리워질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이들 노래들다.

이들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우수에 젖고 마음과 가슴이 촉촉해진다. 노래는 조용하면서도 애잔하다. 누님들 말씀으로는 이들 노래 말고도 많은 노래를 가르쳐 주셨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렸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내아이라 그랬을까, 배운 적이 없고 들은 기억만 어렴풋이 난다. 노래제목은 임의적으로 붙였고 다음과 같다.

<기차는 떠나간다.>

1절: 기차는 떠나간다, 구슬 비를 헤치며

정든 땅 뒤에 두고 떠나는 임이여!

2절: 간다고 아주 가고 아주 간들 잊으랴.

밤마다 꿈길 속에 울면서 살아요.

3절: 임이여 술을 걸러 아픈 마음 달래라.

공수래공수거가 인생이 아니냐.

 

위 노래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으리라.

<만남은 떠남을 기약하고, 떠남은 만남을 기약하는 것일까? 가지 말라고 부슬부슬 비까지 내리는데 무정한 임은 비도 소용없이 가신다. 사랑하는 임은 붙잡을 수도 없는 기차를 타고 야속하고 매정하게 떠나신다. 그렇다고 아주 간 것은 아니겠지, 언젠가는 돌아오시겠지, 지금 간다고 영영 떠나는 것은 아니겠지 하고 자위해 보지만, 잠 못 이룬 숫한 밤은 계속되고, 쓸쓸한 이불 속에서 여린 몸을 뒤척이며, 긴긴 밤을 눈물로 지새운다. 맨 정신으로는 살 수 없어, 허공에 잔을 들고 ‘임이시여! 술이나 한잔 하자’ 소리쳐 불러 보지만 메아리조차 없다. 임이여! 이런 저런 핑계야 많겠지만 그게 다 무슨 대수인가? 인생은 어차피 공수래공수거가 아니던가? 임이여! 다 버리고 빨리 내게로 돌아오시라.>

<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는 1976년 작고하셨고,어머니는 1991년 작고하셨다.

      <강원도 산골짝>

강원도 산골짝은 들어 갈수록 깊어지고,

우리네 부부 정은 살아갈수록 깊어진다.

아리 아리 스리 스리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를 잘도 넘어 간다.

 

<여보하고 부르면>

1절: 여보하고 부르면 여보하고 대답하네.

우연히 엿본 여관 즐거운 표정

여보세요 날 보세요 왜 그래요

하늘은 푸른 하늘 우리들은 젊은이

2절: 날 좀 봐요 부르면 날 좀 봐요 대답하네.

온천으로 신혼여행 정다운 풍경

날 좀 봐요 날 좀 봐요 멀 그래요

바람은 맑은 바람 우리들은 젊은이

3절: 이리와요 부르면 이리와요 대답하네.

온천으로 신혼여행 그리운 풍경

이리와요 저리와요 왜 그래요

다음은 말 못해 우리들은 젊은이

 

주로 바느질을 하시거나 홀로 앉아서 찬거리를 다듬으실 때 흥얼거리시던 노래 가락이다. 노랫말에서처럼 구슬비가 내리는 날에는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고, 어머니 노래 가락과 함께 칙칙폭폭 꽥~ 꽥~ 울리는 기적소리는 몸과 맘을 더욱 스산하고 쓸쓸하게 했다. 1950~60년대는 환경이 청정해서였는지 지금보다 기적소리가 더욱 컸고 멀리까지 들렸다. 우리 마을은 기차 길에서 직선거리로 약 2~3km 내외였지만, 비올 때는 바로 옆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보리밭 사잇길로 달리는 증기기관차.

살아갈수록 삶은 팍팍하고 녹녹치 않았을 것이다. 살다보면 조금이라도 더 수월해지고 살만해질 줄 알았는데... 부부간의 사랑도 깊어지고 정도 돈독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시집살이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식구는 늘어나고 일은 더 복잡해졌을 것이다. 생각과 현실이 일치할 경우가 어디 있던가. 시부모님과 시댁형제자매들과의 관계, 친지들과 이웃들까지 챙겨야 하는 등, 새롭게 맺어야할 인간관계가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운 친정은 생각조차 할 수 없고... 자식들 돌봄과 일군들의 뒤치다꺼리 그리고 집안 살림과 논밭 일까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대서 오는 부담과 스트레스를 어찌 감당하였겠는가? 이들을 풀고 달래는 데는 노래만큼 적절하고 효과적인 게 없었을 것이다.

어릴 때는 어머니께서 그냥 심심해서 흥얼거리시는 노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삶이 답답하고 복잡하실 때마다 이러한 노래를 부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달래셨던 것 같다. 듣기에 거북하지는 않았지만 다소 서글프고 구슬픈 음조였다. 삶의 구석구석에서 오는 여인의 외로움과 고달픔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노랫말과 가락 같지만 이 속에는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철학이 있었고, 인생을 대하는 슬기와 혜안이 담겨 있었다. 고달픔과 한을 노래 속에 녹이고, 슬픔과 아픔도 노래에 실어 보냈던 것이다. 노래를 부르시면서 만인에 대한 서운함을 달래시고, 만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해소하셨던 것이다. 피곤해진 몸과 맘도 추스르고 다졌을 것이다.

노래제목은 잘 모르겠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노래를 배우려고 한 적도 없고 배우지도 않았다. 하지만 수시로 들었던 것이므로 귀와 몸에 배어 있어 익숙하고 친근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생각날 때면 나도 모르게 입과 몸에서 저절로 새어나왔다. 하지만 노래를 정확히 몰라 아쉬웠는데, 누님들을 통해 가사를 받아 적고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오늘도 그때 그날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나는 어머니의 노래 속에서 그렇게 커왔고, 지금도 그 곳에 머물러 있다. 아마 숨이 멈출 때까지 그러지 않을까? 목메어 불러보는 우리 어머니~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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