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속도와 처리능력을 이야기할 때,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겠지만, 제일 중요한 건 램(ram)이다. 구형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램(ram)을 늘릴 수 있을 때까지 늘리는 일이다. 램은 쉽게 말하자면 컴퓨터를 켜는 순간 펼쳐지는 책상과도 같다.

작은 책상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려면 이 일 했다 치우고, 저 일 했다 치워야 하는데, 사실 요즘 컴퓨터 사용환경은 그럴 수 없다. 워드, 파워포인트, 엑셀 같은 일하기 위한 프로그램 하나 띄워놓고, 인터넷 창 여러개 동시에 떠 있고, 카카오톡 메신저 창도 띄워야 한다. 주인도 모르는 새에 자동으로 깔려 있는 프로그램들도 같이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램이 작은 컴퓨터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함께 돌리면 점점 느려지고 먹통이 되어 버린다. 너무 꽉 차서 일 할 수 없는 것이다.

램을 늘리면 책상이 넓어진다. 몇 배로 늘어난 넓은 책상에는 여러 가지 일을 같이 펼쳐놓고 일 할 수 있다. 비어 있는 곳이 늘어나면 속도가 빨라진다. 비어 있어서 쓸모 없는 것이 아니라, 비어 있어서 일을 더 빨리 할 수 있다.

하드디스크도 마찬가지다. 데이터와 프로그램으로 하드디스크 용량을 다 쓰게 되면 빨간색의 신호가 들어온다. 전문가를 찾아가면 평소 사용하던 하드디스크는 D로 만들어서 데이터 보관용으로 사용하고, C는 일을 빨리 빨리 처리하는 SSD로 교체하고 프로그램을 설치해준다. 물론 각각의 하드디스크에는 충분히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

▲ 아무리 빨리 정보를 입력한다고 해도 비어 있는 공간이 없으면 먹통이 되고 만다. 빈 곳이 필요하다. 비워야 한다.

컴퓨터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바빠도 모든 것이 꽉 찬 상태에선 일할 수 없다. 그럴 땐 쉬어야 한다. 컴퓨터가 먹통이 되어 버리면, 다시 재부팅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아무리 램을 늘리고 하드디스크를 SSD로 바꾼다 해도 한계는 존재한다. 결국, 좋은 컴퓨터 사용자는 언제나 자신의 컴퓨터 빈 공간을 생각하며 관리하며 살아가야 한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실행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허사다. 쉐프들의 멋진 요리는 깨끗하고 널찍한 주방이 있어야 하며, 무용가들의 아름다운 공연은 충분한 크기의 무대가 준비되어야 하는 것처럼.

노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세상 모든 이로운 물건들은 “있는 부분”으로 구성된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쓸모는 없는 부분에서 나오는 것을 꿰뚫고 있었다. 그릇은 예술품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 비어있는 부분에 무엇인가 담기 위한 목적에서 생겨났다. 잘 만들어진 바퀴가 수레나 자동차에 끼워질 수 있는 것도 바퀴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있기 때문이고, 창과 문이 뚤려야만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이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멍때리는 시간, 빈둥대는 시간, 산책하며 차분히 생각하는 시간들 없이 줄기차게 몰아치듯 일을 하면 언젠가는 심하게 아프게 된다. 어쩔 도리 없이 쉬어야 한다. 그런 신호들을 계속 무시하면 사람 몸은 영면을 선택하기도 한다. 과로사가 그런 것이다. 사람 관계에서도 간격이 필요하다.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인데 빠른 사람들 속도에 맞추다보면 결국 일도 안 되고 관계는 틀어진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 빠른 사람들 입장에선 속이 터질 일이지만, 느린 사람들 숙고를 잘 받아들이면 신중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된다. 그래서 다 필요한 것이다. 있음과 없음. 빠름과 느림. 길고 짧은 것. 각기 다른 속성들이....

 

老子 11章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으로 모일 수 있는 것은

비어 있기 때문이지.

有車之用;

그래서 수레가 굴러갈 수 있는 거야.

 

埏埴以爲器, 當其無,

찰흙을 이겨 그릇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비어 있기 때문이지.

有器之用;

그래서 그릇이 무엇을 담을 수 있는 거야.

 

鑿戶牖以爲室, 堂其無,

집에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 것은

비어 있기 때문이지.

有室之用.

그래서 방에 들어갈 수 있고, 내다볼 수도 있는 거야.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결국 있는 부분이 이로운 것은

없는 부분 때문에 쓰임이 있는 것이지.

 

* 원문 번역은 여러 번역본을 참고하면서도 원문이 주는 의미와 이미지에 충실하려 애쓰면서 조정미 나름대로 한 것입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조정미 주주통신원  neoech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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