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최운산 장군은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숨은 영웅이다. 그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승전의 주역이지만 김좌진, 홍범도 장군 등에 비해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7월 4일 최운산장군을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기념사업회는 “무장독립전쟁의 승리는 몇몇 부대장의 영웅 신화가 아니라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처절한 삶을 통해 이루어낸 일”이라며 최장군을 비롯하여 형님 최진동, 동생 최치흥 등의 활약을 발굴하고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글은 최운산 장군 손녀 최성주 주주통신원이 쓰는 글이다.

2015년 9월 봉오동 첫 방문 후 손자인 우리 형제들의 가슴에 꽁꽁 묻어두었던 진실의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 역사학자들과 함께 만주 항일무장독립전쟁의 역사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최운산 장군을 기억하며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의 진실을 찾아가는 일에 많은 분들이 마음을 내어 발기인으로 참여해주셨다. 할아버지의 순국일 7월 5일을 하루 앞둔 2016년 7월 4일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창립식을 열었다. 

▲ 참석자들

예상외로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셨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국민 할배 채현국 샘, 원로 언론인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과 박래부 전 언론재단 이사장, 안창호 평전을 쓰신 이태복 전 복지부장관, 목영주 강릉 한살림 대표, 제주 강정 지킴이 양윤모 감독을 비롯한 언론인, 학자, 변호사 등 100여 명이 역사적인 자리를 함께 만들어주셨다.

▲ 윤경로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은 역사학자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은 인사말을 통해 기념사업회 창립이 단지 개인 최운산을 기리는 일에 그치지 않고 최운산 장군처럼 엄혹한 시대 편안한 ‘현실의 길’을 스스로 거부하고 올곧은 ‘역사의 길’을 걸은 분들이 역사적으로 재조명되고 우대받는 사회, 그래서 실추된 역사정의와 민족정기가 바로 세워지는 그 날을 소망했다.

청와대 춘추관장을 지낸 김기만 선생이 발기인을 대표해 창립취지문을 힘차게 낭독했다. "최운산장군 기념사업회는 자신보다 민족을 위한 숭고한 삶을 택하고 실천한 최 장군의 삶을 기리고 전승하고자 한다. 그의 삶을 귀감으로 삼아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오늘날 우리사회에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그가 지녔던 공동체정신을 되살려 공존적 삶에 관심을 가지는 일에 앞장설 것이다. 더불어 최운산장군 기념사업회는 우리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역사왜곡에 맞서 역사의 진실을 찾는 일에도 일조하고자 한다."

▲ 취지문 낭독하는 김기만 교수

원로 역사학자인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님은 축사를 통해 "해방 70년이 지났으나 그동안 한국의 독립운동사 연구가 미진했다. 독립운동사 연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거대한 세력이 있다. 그 연장선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꾀하는 현 정부의 독립운동사를 축소하려는 지침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때 3.1독립운동의 성과와 더불어 민족적 자신감과 큰 희망이 되었던 1920년 간도지역의 무장 투쟁을 승리로 이끈 최운산장군과 그 형제들을 다시 기억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선생님은 그동안 독립군 양성의 물적 근거에 대한 질문과 연구가 부족했음 지적하고, 앞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 전체가 재조명되리란 기대까지 축사에 담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주셨다. 한국 역사학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원로 역사학자의 따뜻한 격려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동안 드러내어 표현하진 않았지만, 어릴 적부터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던 역사학계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다.

▲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종찬 이사장

봉오동전투를 함께 치른 홍범도 장군을 기념하는 홍범도기념사업회의 이종찬 이사장의 축사도 이어졌다.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던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이사장은 할아버지 이회영, 이시영 형제들처럼 최운산 장군 3형제가 함께 마음을 모아 이뤄냈던 일이라니 더 반갑고 마음이 간다고, 앞으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와 공동연구 공동사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감사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동안 홍범도 장군 중심으로 기억되고 있던 봉오동전투의 역사가 달라질 것을 우려하지 않는 격려가 감사했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사 연구자인 신주백 교수의 기념강연은 그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을 만주로, 무장독립전쟁의 현장으로 안내하면서 참석자들의 마음을 감동으로 채워주었다. 당시 국내의 상황, 간도에서 최운산 장군 형제의 역할, 세계사에 비추어 만주에서 무장독립전쟁을 치러낼 수 있었던 배경과 근거를 설명했다. 

▲ 기념강연 하는 신주백 교수

체코군이 탔던 시베리아 횡단열차 사진도 볼 수 있었다. 당시 러시아에서 1차 대전을 치르고 러시아대륙을 횡단해 고국으로 돌아가던 체코군은 경비가 필요했고 무기는 짐이 되었다. 우리 독립군이 무기를 살 수 있는 기회였다. 다행히 최운산 장군에게 그 무기를 구입할 경제력이 있었다. 이미 대한민국의 첫 군대 <대한군무도독부>로 재창설된 오랫동안 훈련 양성된 정예 독립군들이 있었기에 3.1운동 후 전국에서 불같이 모여드는 애국청년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뒤풀이 자리에서 많은 참석자들이 머리로만 이해하던 만주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의미가 신 교수의 강연을 통해 현실이 되어 가슴으로 들어왔다고 감사를 표했다.

▲ 남성중창단의 축하연주

노래를 잘 하셨다는 최운산 장군을 함께 기억하기 위해 남성 중창단 ‘THE PASSION’이 축하연주를 했다.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라는 젊은 성악가들은 힘찬 노래로 청중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었다. 창립식 마지막 순서로 최운산장군의 후손들이 함께 인사를 드렸다. 최운산 장군의 딸과 아들인 삼촌과 고모가 살아계셔서 정말 감사했다. 인사를 위해 마이크를 잡은 삼촌이 문화혁명 때 중국에서의 고생담 등 그동안의 소회를 이야기하다 감정이 격해지셨다. 행사가 늘어질까 잠깐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온갖 핍박과 부모 없는 설움을 견딘 막내딸과 막내아들이 아버지의 업적이 역사적으로 평가 받는 자리에서 축하를 받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 기념사업회 창립식에서 후손들의 인사

지난 1년 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 앞에 서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후손의 책임과 소명이라 생각하며 한 걸음씩 걸었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 물어볼 사람도 의논할 사람도 곁에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최운산 장군이 걸어가신 길을 생각했다. 조국의 독립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불가능해 보이는 그 길에서 40년 동안 단 한 순간의 의심도 없이, 흔들리지 않고 한길을 가신 할아버지 최운산장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생각했다.

최운산 장군은 이상주의자셨다. 공동체의 건강한 미래를 꿈꾸었고, 항상 이웃들과 함께 나누었고, 자신이 먼저 그 길을 열어 보여주시곤 했다. 일생동안 모두 여섯 차례의 투옥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순국하는 순간까지 그 길에서 멈추지 않으셨다. 이제 그 삶을 따라 걷고자 한다.

2016년 12월 28일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가 보훈처에 사단법인으로 등록 되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최성주 주주통신원  immacole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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