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30분에 4대강사업저지를 위한 시국기도회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길거리에서 열렸다. 4대강사업은 진짜 해서는 안 되는, 후손들에게 죄를 짓는 사업이라 생각했기에 추운 겨울에도 미사에 빠지지 않고 갔다. 성탄전야 미사도 밤 9시, 여의도 길거리에서 열렸다. 영하 19도의 날씨였다. 얼마나 추웠는지 미사를 보면서도 이가 딱딱 부딪치도록 떨었다.

이전 글에도 쓴 적이 있지만 몸이 약한 나는 유난히 손발이 차서 추운 곳에 오래 있으면 몸이 꽁꽁 얼고 반드시 감기에 걸린다. 성탄전야 미사 후 나는 열이 펄펄 나서 끙끙댔고, 같이 가준 남편도 감기에 걸렸다. 남편은 나보다 열은 덜했지만 감기가 귀로 갔는지 염증이 생겨 귀에서 피고름까지 났다. 둘 다 기침도 심하고 음식도 잘 먹지 못했다. 아주 죽을 맛이었다.

평소에 아들과 나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한 시간 정도 통화를 했다. 연초 일요일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계속 기침이 나오고 목소리가 쉬어 아들이 걱정할 것 같아 바로 “아빠가 너와 이야기하고 싶대.” 하고 남편을 바꿔주었다. 남편과 한참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나서 아들이 엄마와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눈치 없는 남편은 “엄마가 많이 아파서 누워있어” 했다. 내가 얼른 일어나 전화를 바꿨는데 아들은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왜 또 아파? 내가 겨울에는 조심하라고 했지? 추운데 나가지 말라고 했지? 열은 얼마나 났는데? 아빠가 찬물수건은 해줬어?”

아빠가 찬물 수건 다 해주었다 하니까 한참을 속상하다고 궁시랑 대더니 아빠를 바꿔달라고 했다. 아마도 엄마 잘 간호해달라고 당부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아빠도 감기로 귀에서 피고름이 나서 지금 응급실에 가려 한다고 했더니 아들은 너무 속이 상한지 “엄마는 왜 병원에 안 가는데?”라며 한참을 펄떡거리며 닦달을 하다가 빨리 쉬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일주일 후 아들과 메신저를 했는데 아들이 “아.. 엄마.. 그런데.. 어제.. 아냐.. 아냐..” 라고 두 번이나 했다. 아들은 무슨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일 때 꼭 저렇게 말을 시작한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구나. 궁금해. 얘기해줘” 라고 했더니 아들이 술술 다 불었다.

“엄마, 나 진짜 2년 만에 엉엉 운 것 같아. 어제 4시에 교회 가야 되는데 친구들이랑 운동하다가 5시 넘어 갔거든? 가니까 예배는 끝났고 ‘오늘 말씀’에 대해 기도하고 말하는 시간이더라고. 근데 난 늦게 가서 ‘오늘의 말씀’이 뭔지도 모르니까 엄마 아빠 위해서 기도한다고 했어. ‘형편이 좋지도 않은데 피땀 흘려 누나와 날 유학 보내주시는 엄마, 아빠. 그런데 요즘 엄마 아빠가 아프다고 합니다. 아빠는 귀에서 피고름이 나온다고 하고 엄마는 열이 심하게 난다고 합니다.’ 눈감고 그렇게 기도하는데 갑자기 그 장면이 캡처가 되는 거야. 아빠 귀에서 피고름 나오고 엄만 열나서 침대에서 누워 있고... 갑자기 눈이 삥 돌면서 눈물이 나는 거야. 멈출 수가 없었어. 말을 못하겠어서 한 10초 동안 가만있다가 그냥 울면서 말했어. ‘우리한테 건강이 최우선이라고 말하는 엄마, 아빠가 정작 자신의 건강은 안 챙기는 것 같아요. 우리들 공부시키느라고’ 그러면서 ‘제가 한국에 있었으면 차가운 물수건을 이마에 얹어드리는데 못해서 미안해요. 하느님이 보살펴주세요.’ 그렇게 말했어.’ 근데 아 쪽 팔렸어. 울 생각 아니었는데. 커서 남 앞에서 그렇게 운 거 처음이야."

“울 아들이 그렇게 엄마 아빠 생각해주니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다 나네.”

"내 차례 끝나고 옆에 학생 기도하는데 계속 눈물 나와서 그냥 화장실로 뛰쳐나갔어. 아 쪽팔려. ㅋㅋ 내가 4번째 기도였는데.. 그 전까진 다른 아이들은 그냥 하느님 알게 해주세요. 말씀 감사드리고요 그런 말 하는데, 난 그냥 엄마, 아빠 기도한 거야. 화장실에 집사님이 쫒아 오셔서 함께 손잡고 기도해주셨어.“

“얼마나 진솔한 기도를 한 건지. 하느님께서 참 예쁘게 봐주셨을 것 같아.”

“아 몰라. 하느님이 있는 지도. 그냥 한 거야. 속에 담고 있기 좀 그래서”

“그래, 그게 진짜 기도인거야. 간절한 바램. 네가 간절히 바란 거잖아.”

“그렇지. 난 아직도 하느님, 예수님 있다고 안 믿어. 근데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지. 기도는 뭐 누굴 믿거나 말거나 해도 되는 거잖아.”

아들과의 메신저 내용을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감정표현이 부족한 남편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걱정이 가시지 않았는지 아들은 3일 후 이런 이메일을 보내주었다.

“엄마 열은 좀 어때? 다 나았어? 아빠는 좀 어떻고? 내가 한국에 있었으면 찬물수건으로 미지근해지면 계속 바꿔줄 텐데.. 아빠도 회사 가서 못해줬을 거고 엄마 혼자서 그냥 앓았을 생각하니깐 미안하고 슬퍼.

그때 교회 늦게 가서 할 말이 없어서 엄마, 아빠를 위해서 기도할 때, 엄마가 열이 나서 앓고 있고 아빤 귀에서 피고름이 나오는 게 상상이 되서 울었지 뭐야.. 남자 놈이.., 여기 와서 그렇게 슬펐던 적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울 엄마 아빠 죽을 병 걸린 줄 알았나봐 ㅋㅋㅋㅋㅋㅋ 난 입안 헌 것,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 감기는 아예 다 나았고. ㅎㅎ 난 젊어서 금방 나니까 걱정하지 말고.

엄마 제발 좀 건강하게 살아. 밥 제대로 제때 먹고, 운동 하고, 야식 하지 말고, 잠도 최소 8시간 자고.. 알겠지? 아빠도 제발 일만 너무 하지 말고, 휴식 가지면서 운동도 하고, 그렇다고 너무 무리한 산행은 하지 말고.. 진짜 잘하면 심하게 다친다니깐?

엄마 아빠가 말했잖아. 건강이 최고라고, 근데 엄마 아빠는 정작 건강을 최고로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아. 오직 누나와 날 위해서 땀 흘리며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제발 좀 안 그랬으면 좋겠어. 엄마, 아빠 건강도 생각하면서 살아.

엄마. 나 보고 싶어도 벌써 반이 지났으니깐 반 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편지 쓰니깐 엄마 아빠 더 보고 싶다. 호스트 맘이 위에서 저녁 먹자고 불러. 그만 쓸게. 바이바이“

엄마 아빠 하나밖에 없는 수렁에서 건진 아들이.

크~ 수렁에서 건진 아들이란다. 자식들이 주는 맛이 다르다고... 딸은 고민거리가 있다거나 새로운 뭔가를 터득하면 나를 찾는다. 딸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머리로 마음으로 쑥쑥 커간다는 것을 느낀다. 빡빡한 교육과정에 힘들어 하면서도 곧잘 해내고 있고, 그런 성취에 스스로 뿌듯해한다. 다양한 성격, 인종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친구가 되는 것을 보면서 ‘참 잘 보냈구나.’ 생각한다. 새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시콜콜 빼놓지 않고 이야기해주어 딸과의 대화는 늘 활기차고 즐겁다.

아들은 그런 맛을 주지 않는다. 아직 어려서인지 아들은 감성적인 호소가 많다. 엉뚱방뚱 웃기는 이야기를 어쩌다 해줄 때도 있지만 속상한 것, 힘든 것, 먹는 것, 배고픈 것, 빡치는(?) 것 등이 대화의 절반 정도가 된다. 비슷비슷한 이야길 한참 듣고 있으면 하루에 쓸 에너지 반은 소모된 듯 지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간절한 기도와 편지는 한방에 모든 것을 잠재워준다. 감성이 더 세다고 두고두고 생각하며 뭉클하게 해준다.

엄마를 인생고민의 상담자로 생각해주는 딸도 고맙고, 아이들 학비를 위해 피땀(?ㅠ.ㅠ) 흘려 돈을 버는 남편도 고맙다. 비록 ‘밥’ 때문에 교회에 갔지만 그런 기도의 기회를 준 교회의 모든 분들에게도 무척 고맙다. 무엇보다도 행여 마마보이로 비칠까... 마음 약한 남자로 보일까... 감정표현을 자제했던 아들이 자연스럽게 자기감정을 드러내주는 것도 고맙다. 스스로 수렁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하는, 이 세상에 처음 나온 영혼이 조금씩 진화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도 될까?

 

2010년 할로윈 파티 때 교회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니 남자 녀석이 왜 귀여운 토끼를?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바자회를 연 적이 있다. 아들이 사온 것은 헝겊 동물인형 2개였다. 놀림 받았나 싶어 “다른 남자아이들은 뭘 샀어?” 물었다. 아들은 “몰라!!!”라고 단칼에 내 물음을 잘랐다. 내가 잘못했지... 남자가 인형을 사면 뭐 어떻다고...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키워드

#순둥이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