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결과」아닌 「훌륭한 과정」을 향해

이번 대선 국면의 화두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행복한 고민을 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물불 가리지 않는 네 편 내 편의 문제가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라는 결론도 내렸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경쟁 후보에 대한 자질을 가지고 대립해야 하는 부담에서 이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어느 평론가도 지적했듯이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난 정권처럼 끔찍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물론 후보 각자에게는 지금의 국면이 절실한 상황일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투표권을 쥔 국민들은 이제 그 문제에 있어서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이런 상황까지는 우리 국민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훌륭한 결과였다.

문제는 이후의 선거 과정에 있었다. 최근 각종 지표에서 보는바와 같이 언론이 언론임을 포기한 채 여전히 그들의 입지만을 위해 대선 후보들을 총알로, 방패막이로 이용하고 있음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선 때처럼 말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조기 대선의 장에서 한 표라도 아쉬운 후보의 심리를 이용하여 언론들은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선 판을 기획하고 그대로 몰아가고 있고, 그 불공정한 보도에 적당히 기대는 후보의 모습에서 정작 주체여야 할 시민은 소외되고 무장해제된 채 상황은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한다.

실제로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신문모니터위원회가’ 3월 23일 누리집에 올린 특정 후보 죽이기 통계를 보면 뭔가 상당히 불공정하게 왜곡되고 있다는 평소의 느낌이 단순한 느낌만은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조중동 사설, 두 달 동안 ‘문재인 싫다’만 외쳤다」라는 기사를 보면, 세 신문의 본색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조선일보>의 경우 최근 50여 일치 신문 사설 중 특정 정당이나 대선 주자들을 비판한 기사의 약 80%인 46건이 문재인·민주당 비판 내용이었고 <동아일보>는 35건, <중앙일보>는 23건으로 하루 평균 두 건 꼴이었다.

이처럼 우리가 만들어 낸 이 조기 대선 국면이 또다시 저급한 언론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설령 이런 언론의 행태로 수혜를 바라는 누군가가 적당히 이를 용인하여 당선된다 해도 그 결과는 누구의 것도 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이기고 지는 문제는 후보들의 자질과 역량에 맡겨도 될 단계에 와 있다. 그리고 설령 두 후보 중 자질에 있어 우열이 있었고 다소 자질이 떨어지는 후보가 당선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거기까지가 투표권을 가진 우리들의 실력이고 능력임을 인정하면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혹독한 겨울을 지나 꽃피는 봄이 오기까지 긴 시간 인내심을 가지고 촛불로써 이루어낸 그 과정의 정당성 기반이 채 굳지도 않았는데 다시 불공정 언론경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데 있다. 각자 원하는 후보를 열렬히 지지하는 대립구도를 교묘히 이용해 다시 분열을 책동하고 있으며, 차후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수월한 지지자에 대한 띄우기가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어떤 대선 후보는 죽이고 어떤 대선 후보는 띄우기 위해 추측보도와 정파적 보도를 남발하면서, 불편부당• 균형성• 적절성• 비당파성• 공정한 제안을 아예 외면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는데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다음과 같이 분석, 정리하고 있다(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모니터위원회).

TV조선의 느닷없는 안철수 띄우기(3월 28일)

본격화된 대선 국면, 가장 나쁜 보도는 단연 MBC의 ‘문재인 보복 보도(3월 28일)

‘문재인만 이기자!’ 반문 연대 야합 독려 나선 조선(3월 30일)

‘안철수, 루이 암스트롱 같다’, 채널A의 안철수 띄우기(3월 31일)

‘안철수 띄우기’에 전념한 조중동, 노골성에서는 동아가 압권(4월 3일)

3일간 8건···TV조선 ‘안철수 띄우기’ 올인?(4월 3일)

‘시사 예능 토크쇼’ 전성시대, TV조선과 MBN은 ‘수준 이하’(4월 3일)

‘안보 불안 부추기고 흑색선전 해라’-조선의 선거 팁(4월 4일)

문재인·안철수 대하는 방송사들의 태도, 달라도 너무 달라(4월 5일)

문재인 외 나머지, ‘닮은 발가락’이라도 찾아 ‘연대’하라는 동아(4월 5일)

중앙일보 페이스북, 노골적 편향성 드러내(4월 6일)

동아·조선, 문(재인)·안(희정)·이(재명) 갈라치기 나섰다(4월 6일)

지금 한반도 주변 상황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심각하고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많은 언론들의 작태는 이전과 한 치도 달라짐 없이 실로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박근혜 후보의 자질과 역량을 문제 삼고 끊임없이 검증하려 했지만 당시 보수 언론들은 너무도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그 인물됨을 조작해내고 띄우기에 열을 올렸으며 결국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했던 지난 대선 때 모습이 연상될 정도이다. 이런 언론들의 저급한 놀음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상황이라 해서 이런 행태를 묵과하거나 편승한다면 우리의 촛불은 더 이상 의미도 빛을 발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현 상황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지난 대선과 같은 치명적 상황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며, 적어도 그런 상황은 우리가, 촛불 민심이 이끌어 온 덕분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 우리가 마음을 모아 지켜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공정한 레이스에 대한 감시일 것이다. 공정한 경쟁과 그에 대한 감시는 우리가 싸워왔던 보다 본질적이고 오랜 이유일 것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후보가 당선되어야 함이 항상 우리의 바람이었지만, 공정한 경쟁 과정과 감시가 공포정치와 무력, 언론의 왜곡에 막혀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기에 우린 과거 독재자들을,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키고 말았다. 우리가 촛불을 들었던 이유도 무작정 좋은 세상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 공정한 과정이 보장되는 사회를 바랐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정한 과정이 보장된다면 결과가 다소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다소 미흡한 결과는 우리의 시야를 교란하는 외부 장애물이 아닌 우리 자신들의 선택 능력의 한계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는 스스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통해 점차 개선해갈 수 있는 문제일 뿐이다. 공정한 과정이 보장된 환경에서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사회, 그것은 우리가 무엇보다 원하던 든든한 민주주의의 근간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이 시대의 훌륭한 당선자가 아닐 것이며 그래서도 아니 될 것이다.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은 시대를 초월해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그 누구도 우리의 판단을 가로막고 교란할 수 없는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는 환경이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 그런 시스템의 작동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는 많은 경우 잘못된 판단을 했고 후회를 반복해 왔다.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라면 우린 언제라도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고 그 합리적 판단의 결과를 수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설령 일시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더라도 이전처럼 고질적인 장애물이 없기에 우린 곧 합리적인 판단으로 회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스템의 작동을 줄곧 가로막아 온 언론의 행태는 우리가 만들어낸 지금의 대선 국면에서도 지속되고 있으며, 마치 자신들이 주인인양 무대를 장악하고 있는 모양새다.

데이터저널리즘 기관인 서울대 폴랩(Pollab)이 지난 1월 1일부터 4월 6일까지 네이버 뉴스에서 각 후보자 검색 시 등장하는 93개 언론사의 20만 3750여 개 기사를 분석했는데 문재인 후보에 대한 보수 언론의 부정적 보도,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문 후보에 비하면 보수·진보 양쪽에서 긍정적인 보도가 이뤄졌다고 보도하고 있다(미디어오늘 2017.4.10).

언론이 특정 후보를 띄우고 있다는 지적은 최근 시민사회에서도 나오고 있는데, 김언경 민주언론 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지난 7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안철수 후보가 떠서 언론이 따라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고 반대로 언론이 안철수 후보를 띄우고 있다는 말이 있다’며 ‘대선미디어감시연대가 보기에는 언론이 안철수 후보를 띄우고 있다’고 말한다(미디어오늘 2017.4.10).

김 처장은 ‘종편 같은 경우 안 후보 홍보영상 같은 수준의 재미난 영상들을 시사토크쇼에서 계속 보여주고 있다’며 목소리를 멋지게 각색했다는 등의 영상을 쏟아내는 등 보수 언론과 종편의 ‘안철수 띄우기’는 분명한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만든 이 조기 대선 국면은 언론이 아닌 주권자인 국민의 즐거운 파티가 되어야 마땅하다. 우리가 쌓아 올린 이 역사의 현장에서 그동안 기득권에 기대어 수많은 적폐들을 양산해 온 언론들이 종횡무진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곤란하다. 언론은 이 대선 국면의 주인이 아니다. 그저 정확하고 공정한 사실 보도만이 그들의 역할일 뿐이다. 나머지 판단은 우리 국민의 몫이고 선택의 결과 역시 국민의 몫이다. 지난 대선을 방불케 하는 언론의 작태에 대해 양쪽 지지자 모두 냉철하게 바라보고 더 이상 언론의 놀음에 합류하는 것을 멈추어야 하는 이유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그동안 싸워왔던 우리의 지난한 세월이 또다시 어디로 향하게 될지 생각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그 오랜 세월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는 긴장된 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적어도 적폐 세력의 행태를 모방하거나 의존하는 것만은 지양해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지난 적폐 세력의 행태로는 지금 한반도가 처한 상황들을 헤쳐 나갈 수 없음을 질리도록 보아오지 않았는가.

우리가 직시해야 할 분명한 목표는 「훌륭한 결과」가 아니라 「훌륭한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훌륭한 결과는 단 1회로서 만족할 뿐이지만, 훌륭한 과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적용되는 성숙한 원리로서 민주주의 근간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ꠛ

* 정확한 사실 보도에 충실한 일부 언론도 있었으며 그에 감사드립니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김진희 주주통신원  kimjh1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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