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우엘벡의 <소립자>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는 밀려드는 신물결 속에 소외된 개인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68혁명 이후, '성의 자유'에 매료되어 혼란한 서구사회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이부형제의 인생을 그려낸다. 이들의 아픔을 묘사하고, 성, 사랑, 경쟁, 가족, 종교에 대한 통찰과 비판까지 보여준다. 미셸 우엘벡은 자칫하면 낙오자의 인생으로 치부될 이부형제의 인생을 외면하지 않고 전달해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하고 씁쓸함 마저 불러일으킨다.

▲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


<소외로 가득찬 삶>

<소립자>의 주인공들 브뤼노와 미셸은 이부형제로 탄생의 순간부터 축복받지 못하고 소외된다. 자닌 세칼디와 세르주 클레망 사이에서 태어난 브뤼노 클레망은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외가에 맡겨진다. 자닌에게 출산은 단지 여성으로서 한번쯤 경험해 보는 것일 뿐이고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 부부에게 양육이란 개인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었다. 자닌 세칼디와 마르크 제르진스키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 미셸 제르진스키 또한 자닌이 ‘성의 자유’라는 공동체에 매료되고 마르크가 일에만 열중하자 자연스레 친가에 맡겨진다. 가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최초로 소외되는 순간이다.

성장기 또한 순탄치 않다. 브뤼노는 자신을 길러준 조부모가 사망한 뒤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는데, 또래 남자 아이들에게 따돌림과 신체적, 성적 학대를 당한다. 미셸은 독서와 공부에 몰두하는 우등생이었지만, 브뤼노와 마찬가지로 또래와 어울리지 않고 고립된다.

소외와 결핍으로 가득한 성장기는 비정상적인 성생활로 이어진다. 브뤼노가 또래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 오메가 수컷으로서 겪었던 좌절감이 이성 관계와 성생활에서의 자신감 부족으로 이어지고, 늙어서까지 클럽이나 사교 커뮤니티를 전전하는 신세가 된다. 미셸도 비정상적인 성생활로 이어지는데, 브뤼노와는 다르게 무성욕자로서 무미건조하고 외로운 삶을 보낸다. 특히, 브뤼노는 첫사랑 아나벨과 갔던 캠프에서 아나벨이 다른 남자와 섹스한 사실을 알게 되고 망연자실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을 괴롭게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시대 그 자체였다.

 

<우리는 그저 휩쓸릴 뿐>

두 형제의 성장기는 바야흐로 <연애 감정의 황금시대>였다. 색정적인 소비와 선정적인 풍조가 확산되며 1960년대, 특히 68혁명 이후 <성 해방> 이념이 문화적으로 대중에게 스며든다. 하지만 미디어가 부추겼던 사랑은 불안정하고 허황된 면이 강했다. 이들이 형성한 문화는 젊은이들의 수준보다 나을 것이 없었고, 젊은이들을 지배하고 있는 섹스에 대한 욕망을 변호하고 색정적 소비로 이용하는데 급급했다.

"참된 사랑과 불장난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은 1960년대 내내 잠복해 있다가, 1970년대 초에 본격적으로 불거져 나왔다. (…) 이 잡지들은 정치적인 관점에서는 반(反)자본주의를 표명하고 있었지만, 유대·기독교적 가치를 파괴하고 젊음과 개인의 자유를 예찬한다는 점에서 오락 사업과 한통속이었다." 

섹스가 사랑의 결실이 아닌 젊은이들의 무한 경쟁 속 승리의 트로피로서 여겨진 것인다. 특히 미셸의 첫사랑이었던 아나벨은 성의 개방이라는 신물결에 직면해 있지만, 무지로 인해 상처 입는 여성을 대표한다.

"그녀는 이튿날 수술을 받고 하룻밤 더 호텔에서 머문 다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3주 전부터 그녀는 밤바다 다비드의 텐트에 갔었다. 처음엔 조금 아프더니 횟수가 거듭되면서 쾌감이 느껴졌다. (…) 하지만 그 남자에 대해서는 어떤 애정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가 곧 다른 여자와 동침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십중팔구는 그녀가 수술을 받으러 와 있다는 그 순간에도 다른 여자와 함께 있을 터였다." 

"오늘날에는 열일곱 살의 여자가 아나벨처럼 순진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날에는 열일곱 살의 여자가 사랑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리라"

이들은 그저 사랑이란 이름 아래 섹스, 자유, 경쟁에 놓여 휩쓸릴 뿐이었다.

 

<소외된 자의 유토피아>

중년이된 브뤼노와 미셸에게 크리스티안과 아나벨은 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사랑의 가능성으로 나타나 조금이나마 사랑의 이미지를 맛보게 해준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시대적 상황 아래 사랑을 가장한 섹스에 상처입었으며, 때문에 사랑이 낯설었다. 또한 크리스티안과 아나벨은 젊은 시절 무한 섹스 경쟁 속에서 노후된 신체로 비극적인 죽음을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일말의 사랑조차 상실하며 마지막으로 소외되는 순간이다.

브뤼노와 만남을 이어가면서, 아나벨의 죽음을 겪으면서 미셸은 욕망이 모든 불행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일랜드로 떠나 연구에 착수하는데, 연구를 진행하던 도중 논문 하나만을 남기고 어느날 홀연히 실종된다.

"그의 내면에는 지독한 슬픔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내 평생 그렇게까지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어쩌면 슬픔이라는 말로는 모자랄지도 모르겠어요.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완전히 황폐해진 상태였다고나 할까요? 나는 늘 그가 삶을 버거워한다는 인상을 받았아요. 생기나 활기하고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요. 내가 보기에 그는 자기 연구에 꼭 필요한 시간만 견뎌 낸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애를 썼을지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지요."

이런 미셸의 연구를 이은 이는 프레데릭 허브체작으로 '인류는 사라지고 인류 대신 새로운 종이 생겨나야 한다'고 옹호하고 작업에 착수한다. '인류 대신 무성 생식을 하고 영원히 죽지 않는 새로운 종, 개인성과 분리와 생성 변화를 극복한 새로운 종'을 위해.

소외로 가득찼던 삶을 걸어 온 미셸이 꿈 꾼 유토피아는 무성생식과 성적 쾌락의 보장이다. 성차와 개별성의 소멸하는 것이다. 이런 유토피아는 과연 유토피아라 할 수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미셸 우엘벡은 진정한 사랑과 그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같다. 평생 소외되어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브뤼노 형제,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통해 사랑과 가족에 대한 남녀의 차이를 보여주며 섹스로 둔갑한 사랑이 아닌, 무한 경쟁에 내몰린 사랑이 아닌, 남녀의 차이 관용하며 서로를 보듬는 그런 사랑을 말이다.

편집: 이다혜 객원편집위원

한주해 대학생 기자  wngogk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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